분단으로 타국적 인생 살아온
카자흐 망명음악가 정추 박사
카자흐 망명음악가 정추 박사
“내 노래가 통일 조국의 애국가로 불릴 수 있다면….”
망명 음악가 정추(86·전 알마티 국립대 교수) 박사가 최근 고향 광주광역시를 찾았다. 그는 지난 21~24일 광주문화재단의 아시아문화포럼에서 강연하고, 학창시절을 보낸 광주제일고를 방문하는 등 바쁜 일정을 보냈다. 고향의 품 안에서 나흘을 보낸 그는 서울의 친척집으로 옮긴 뒤 추석 무렵 출국할 예정이다.
“민족 분단으로 65년 동안 타향을 떠돌고 있어요. 통일된 조국으로 돌아와 고향에 묻히고 싶다는 게 마지막 바람이지요.”
그가 작곡한 ‘뗏목의 노래’는 세계 최초의 유인 우주선 성공 축하무대에 오르고, 60여곡이 카자흐스탄 교과서에 수록될 정도로 그의 음악적 성취는 뛰어나다. 이런 업적으로 그는 카자흐스탄의 공훈예술인 반열에 올랐고, 고려인들 사이에선 ‘카자흐스탄의 윤이상(1917~95)’으로 불린다. 하지만 그는 한국에선 월북자로, 북한에선 반체제 인사로 찍혀 존재가 묻혀 있었다.
떠돌이로 살아온 정 박사는 평생 조국애를 주제로 창작의 열정을 불태웠다. 58년 차이코프스키 음대 졸업 땐 전통 5음계로 교향곡 ‘조국’을 작곡해 수석 졸업했다. 2000년 전후에도 통일 조국의 애국가가 됐으면 하는 소망으로 ‘내 조국’, 연해주 이주민의 아픔을 그린 ‘1937년 9월11일 17시40분, 스탈린’ 등을 작곡해 조국을 그리는 마음을 절절하게 노래했다.
광주 양림동에서 태어난 그는 18살이던 광주고보(광주제일고 전신) 3학년 때 조선어 사용을 고집하다 퇴학을 당했다. 이후 양정고보를 거쳐 일본대학 음악부 작곡과를 졸업했다. 46년엔 좌익계 영화인이던 형 정춘재의 영향으로 월북해, 53년 평양음대 교수 신분으로 소련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 음대로 유학을 떠났다. 유학중이던 57년 그는 모스크바에서 ‘김일성 우상화’에 반대하는 집회를 주도했다. 이를 계기로 그의 운명은 소설처럼 기구하게 바뀌고 말았다.
이듬해 카자흐스탄 알마티로 유배당한 그는 17년 동안 무국적자로 30㎞ 안으로 거주 제한을 받으며 살았다. 이후 74년부터는 소련인으로, 90년부터는 카자흐스탄인으로 쓰라림을 맛봐야 했다.
이런 비운 속에서도 그는 음악가로서 관심을 갖고 있던 민요 채록을 지속했다. 20여년 남짓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의 전래민요 1068곡을 채보했다. 79년 이를 집대성한 ‘소비에트 한인의 가요문화’를 발표해 레닌그라드 음악영화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가운데 500여곡은 악보, 400여곡은 녹음을 확보했다. 특히 ‘심방곡’ ‘질라래비노래’ ‘창덕궁가’ 등은 한국에선 이미 사라진 노래들이다.
“고려인들은 상상 속의 조국을 그리며 한글로 노래를 불러왔어요. 강제 이주를 경험한 이들이어서 이별 노래가 많고, 입으로 전승돼 가사가 유연하다는 특징이 있지요. 우즈벡·카자흐·위구르 등 여러 음악과 접촉했지만 고유의 선율을 유지했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답니다.”
광주/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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