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녀 출신 중국동포 김순덕(89·지린성)씨
김순덕씨, 70여년 만에 제주해녀축제 초청 고향방문
‘위안부’ 피하려 중국인과 결혼…지린성서 6남매 키워
‘위안부’ 피하려 중국인과 결혼…지린성서 6남매 키워
“제주도에서 해녀를 알아주니 눈물밖에 나지 않습니다. 이런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제 아흔이 되는 사람이 무엇을 더 말하겠습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휠체어에 앉은 제주해녀 출신 중국동포 김순덕(89·사진·지린성)씨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감격에 겨워 얼굴마저 상기돼 있었다. 그를 부축하던 딸 진향란(65)씨가 대신 어머니가 걸어온 길을 얘기하며 함께 눈물을 흘렸다. 김씨는 제주도의 초청을 받아 지난 15~16일 제주시 구좌읍에서 열린 제주해녀축제에 왔다. 15일 축제 개막식에서 연단에 오른 김씨에게 제주의 해녀들은 따뜻한 박수를 보냈다.
제주 성산포 출신인 김씨는 17살 되던 1939년 돈을 벌려고 무작정 함경도 청진으로 가는 발동선에 올랐다. 물질을 잘하는 어린 해녀에게 붙이는 ‘애기 상군’이라는 별명을 듣던 그였다. 김씨는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마저 병으로 고생하자, 9살 때부터 남의 집 살이를 하며 힘든 나날을 보내던 중이었다.
청진항 주변에서도 물질을 하다 19살에 중국인과 결혼했다. 17살 넘는 처녀들은 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아의 일본군 부대로 끌려갈 때여서, ‘시집 가면 끌려가는 걸 피할 수 있다’며 친구가 소개해준 사람이었다.
“청진에는 제주도 해녀가 많았어요. 30명 이상이 한꺼번에 물질하는데, 전복 해삼 성게가 많아 언제나 풍년이었어요. 해산물을 채취한 덕분에 쌀 배급도 많이 받았어요. 지금도 청진에는 나처럼 나이 많은 해녀는 죽었겠지만 그 자식들은 있을 거예요.”
날씨 좋은 날에는 바다에 들어가고, 궂은 날에는 남의 집이나 밭에서 일하며 6남매 뒷바라지를 했다. 62년엔 일본에서 북송선을 타고 온 제주도 출신 해녀를 만나 오사카에 산다는 큰오빠 소식을 들었고, 작은오빠는 부산에 살았다는 소식도 들었다. 두 오빠 모두 지금은 고인이 됐다.
67년 남편의 고향인 중국 지린성으로 건너갔다. 자식들을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정말 열심히 일했다. 그 덕분인지 66년 평양예술대학(현 평양음악무용대학)을 졸업한 장녀 향란씨는 지린성 가무극원 예술학교 교장을 맡고 있고, 다른 자녀들도 의사나 공무원, 무역회사 사원 등으로 일한다고 했다.
“나라 잃은 설움이 얼마나 큰 줄 알아요? 나라가 없는 백성은 죽는 것보다도 못해요. 이처럼 축제에 초청해주니 기뻐서 눈물만 납니다.”
70여년 몸에 지니고 다닌 ‘족은눈’(물안경)을 지금도 보물처럼 여긴다는 그는 “힘들 때마다 족은눈을 보며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제주/글·사진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70여년 몸에 지니고 다닌 ‘족은눈’(물안경)을 지금도 보물처럼 여긴다는 그는 “힘들 때마다 족은눈을 보며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제주/글·사진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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