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고문 후유증에 생활고…민주화 인사들 스러지는데
지난 10년새 44명 목숨 끊어 ‘전과’ 탓 민주묘역 못가기도
‘치유센터 설립 시급’ 지적에 정부선 “공법단체 설립 먼저”
지난 10년새 44명 목숨 끊어 ‘전과’ 탓 민주묘역 못가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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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동안 5·18 민주화운동 유공자 44명이 부상 후유증과 생활고로 잇따라 목숨을 끊었으나, 아무런 대책이 세워지지 않고 있다.
5·18구속부상자회는 24일 사흘 전 자살한 회원 조동기(51)씨의 장례를 치르고 유해를 광주 영락공원 납골당에 안치했다. 조씨는 지난 22일 저녁 8시30분께 광주 서구 자신의 집에서 연탄 유독가스에 숨진 상태로 발견됐다. 기초생활수급자였던 조씨는 어머니 앞으로 ‘먼저 가서 죄송하다’는 유서를 남겼다.
조씨는 5·18 민중항쟁 당시 시민군으로 활동했고, 이후에도 진상 규명 투쟁에 앞장서다 부상당하고 가정이 파탄나는 등 이중의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조씨는 유공자가 되기 이전의 ‘전과’ 때문에 국립 5·18 묘지에 묻히지 못하는 비운을 맞았다.
앞서 지난 3월2일엔 5·18부상자회 회원 김요한(52)씨가 광주 광산구 한 아파트에서 약물 과다 복용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김씨는 5·18 당시 옛 전남도청 앞에서 계엄군의 발포로 목에 총상을 입어 척추가 마비되는 큰 부상을 당했다. 이후 휠체어에 의지해야 했던 김씨는 부상에 따른 고통을 줄이려 약물치료를 지속적으로 받아왔다.
지난해 9월14일에는 5·18구속부상자회 회원 지삼번(56)씨가 광주 광산구 광주보훈병원 주차장에서 농약을 마시고 목숨을 끊었다. 5·18 때 목포에서 붙잡혔던 지씨는 헌병대 등에서 심한 고문을 받았고, 이듬해 삼청교육대에 끌려가기도 했다. 지씨는 이후 고향인 전남 여수에 정착했지만 고문에 따른 후유증으로 우울증·불면증·신경통 등을 앓아왔다. 지씨는 후유증 치료에 진전이 없자 “꿈에도 군인들이 나타난다. 고문 후유증으로 살 수가 없다. 오직 한명뿐인 아들을 도와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렇게 5·18 당시 겪은 고문·부상의 후유증과 이후 경제적 궁핍에 따른 생활고를 비관해 자살을 선택한 5·18 유공자는 2002년 5·18 관련자를 국가유공자로 인정한 이후 10년 동안 44명에 이른다고 5·18 단체들은 집계했다. 하지만 국가보훈처를 비롯한 정부는 5·18 민주유공자의 복지·자활 등 정책의 시행을 민주유공자 공법단체 설립 뒤로 미룬 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김공휴 5·18민주유공자회 설립추진위원회 대변인은 “국가폭력에 희생된 5·18 유공자들이 국가와 사회의 무관심 속에 하나둘 쓰러지고 있다”며 “트라우마 치유센터를 서둘러 설립하고, (보상이 55살까지 이뤄진 만큼) 56살이 넘은 유공자한테는 생활연금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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