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절반쯤 끝난 기분이에요. 큰 매듭을 풀고 나니 지난 세월이 꿈만 같아요.”
사상 처음으로 비리 사회복지법인의 인가 취소를 이끈 광주 인화학교 성폭력 대책위원회의 김용목(48·목사·사진) 상임대표는, 예상과 달리 24일 오후 광주 홀더공부방에서 만났을 때도 홀가분해 보이지 않았다. “불가능해 보이던 1차 목표는 이뤘어요. 하지만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으로 제2, 제3의 ‘도가니’를 막고, 피해자들이 건강한 시민으로 생활하도록 지원하는 일들이 남았어요. 심리적 압박감이 가시지 않은 탓인지 얼굴에 뭐가 자꾸 돋아나네요.” 41개 시민단체들이 꾸린 대책위를 이끄는 김 상임대표의 휴대전화는 인터뷰 도중에도 바쁘게 울어댔다. 영화 <도가니> 개봉 직후에는 하루 수백통씩 걸려왔는데, 요즘은 그래도 꽤 줄었단다.
소아마비를 앓아 걷기가 불편한 김 상임대표는, 2006년 여름 인화학교 사건이 세상에 알려질 당시 장애인의 이동권과 교육권을 확보하려고 싸우고 있었다. 수화통역사 자격을 갖고 있던 그는 곧바로 인화학교 대책위로 달려갔다. “12살, 13살 장애인 학생들한테서 교직원들의 몹쓸 짓을 수화로 전해들었을 때, 수화를 배운 것이 후회스럽다 싶을 만큼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쁜 어른들을 혼내주려 싸움을 시작했지요.”
그러고 6년5개월 동안 장애인들과 더불어 끈질긴 비폭력 합법 투쟁을 펼쳤다. 농성 377일, 기자회견 100회로 집약되는 이 험난했던 투쟁은 ‘나비효과’를 일으켜 소설이 되고 영화가 되더니 마침내 ‘도가니의 카르텔’을 무너뜨렸다. “한참 싸우다 보니 언제 끝날지 앞을 내다볼 수 없어 막막하고 지쳐 있을 때였어요. 영화가 개봉됐고 싸움을 끝낼 수 있다는 확신을 느꼈습니다. 공분한 국민들이 결론을 내려줬지요. 이런 나쁜 법인은 없어져야 한다고….”
인화학교 대책위는 애초 세 가지를 목표로 활동해왔다. 성폭력 가해자의 처벌, 공립 특수학교 설립, 사회복지법인 공공성 강화였다. 가해자 처벌은 재판을 통해 교직원 4명이 형사처벌을 받고, 경찰 재수사로 14명이 추가 입건되는 것으로 매듭지어졌다. 솜방망이 처벌의 근거가 됐던 법률의 공소시효와 항거불능 조항도 ‘도가니법’으로 고쳐졌다. 학생 고발과 교명 세탁 등 온갖 꼼수를 부리던 인화학교 재단인 사회복지법인 우석도 여론의 십자포화에 문을 닫게 됐다. 2013년에는 청각장애 학생들이 공부할 공립 특수학교가 들어선다. 세 목표 가운데 두 가지는 열매를 거둔 셈이다.
사회복지법인의 공공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과제는 아직 남아 있다. 김 상임대표는 “공익이사제 도입이 핵심”이라며 “2007년엔 한나라당과 복지법인들의 반대로 무산됐지만 이번에는 여야가 합의한 만큼 개정안이 통과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세 가지 목표에 도달하는 것과 함께, 무엇보다 인화학교 피해 학생 23명이 건강한 시민으로 지낼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는 과제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피해자들의 고통에 둔감했어요. 사건 초기 피해자들을 15개월 동안 가해자들과 함께 지내도록 방치했지요. 늦었지만 피해자들이 심리치료를 받고 사회적기업을 만들어 자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이 시급합니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국가기관들을 상대로 제기할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기대를 나타냈다. 피해자들이 성폭력에 시달리고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는데도 이를 감독하지 못한 국가기관들이 책임을 다하지 못했으니, 마땅히 피해 배상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김 상임대표는 “광주가 문제를 덮는 데 급급하지 않고 인권도시답게 해결해내서 자랑스럽다. 함께 분노하고 걱정해준 <문화방송> 피디수첩과 소설가 공지영씨를 비롯한 착한 이웃들한테 감사드린다”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광주/글·사진 안관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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