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희(43·맨왼쪽)씨
20년째 재개발 지역 공부방 지켜온 손영희씨
24살부터 광주 ‘어울림…’ 운영
과로로 신경마비 증세까지 겪어
행정기관 지원 안받고 자율 고수
24살부터 광주 ‘어울림…’ 운영
과로로 신경마비 증세까지 겪어
행정기관 지원 안받고 자율 고수
“초창기 때 가르친 아이들이 어른이 돼서 공부방을 다시 찾아오니 정말 뛸 듯이 기쁩니다.”
광주광역시의 한 재개발 예정지에서 어울림 공부방을 운영하는 손영희(43·맨왼쪽)씨는 11일 20년 전 제자들을 만나는 즐거움을 감추지 못했다. 손씨는 전날 밤 인근 성당에서 공부방 1~18기 학생들과 재개발 예정지 주민 등 200여명이 함께 하는 어울림 한마당을 마쳤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탁아나 여성운동을 하기로 마음 먹었어요. ‘지역 속으로 들어가자’는 선배들의 권유로 공부방을 시작했는데 벌써 20년이 지났네요.”
손씨는 1992년 겨울 광주 도심의 재개발 예정지인 남구 방림동에서 공부방을 시작했다. 24살 사회 초년생이었다. 당시 인근 초등학교의 한 학년 학급수는 9~10개반일 정도로 인구가 넘쳐나 공부방 학생수도 50명이 넘었다. 할 일은 많았고 의욕도 넘쳤다. 몸이 부서져라 열심히 일했다.
그러다 94년초 과로 탓에 신경이 마비되는 증세로 공부방을 잠시 쉬었다. 넉달 만에 몸을 추스려 돌아온 이후 그는 방림동과 공부방을 한번도 떠나지 않고 지켜왔다.
“이렇게 오래 공부방을 할 줄 꿈에도 몰랐어요. 병상에 누워있는데 드나드는 아이들, 걱정해주는 주민들이 눈물나게 소중하게 느껴졌어요. 아! 이곳이 사람 사는 세상이구나, 다시 돌아가야지!”
손씨는 주변의 재개발을 지켜보며 해마다 많게는 50명 적게는 20명의 아이들과 부대꼈다. 그 사이 재개발지의 아파트와 주택가에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기면서 공동체 의식도 점차 흐릿해져 갔다. 외지에서 아파트로 이사오는 사람과 높은 분양값을 감당하지 못해 떠나는 원주민이 교차하면서 이질감도 커졌다. 주변 초등학교의 학급수는 3~4개반으로 눈에 띄게 줄었다. 공부방도 날로 높아지는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려워 네번이나 이사를 해야 했다.
현재 공부방에는 초등 1학년부터 고교 2학년까지 20여명이 다닌다. 주요 과목 공부에서 풍물·연극·벽화 등 예능까지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활동가·교사·봉사자 등 15명이 아이들을 돕는다. 이제는 공부방 출신 대학생이나 선배들이 프로그램을 맡거나 봉사자로 일하는 명예스런 전통을 세우고 있다.
어울림 공부방은 행정기관에서 전혀 지원을 받지 않는다. 지원기관의 기준에 맞추다보면 학생들한테 소홀해질 수 있다는 소신 때문이다. 대신 학부모들한테 월 3만원의 운영비를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손씨는 늘 빈손이나 마찬가지다.
7년 전 결혼한 손씨는 “자발적으로 선택한 가난”이라며 “30대에 접어든 초창기 제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임을 만들어 배운 것을 돌려주려는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부자’라고 느낀다”고 말했다.
광주/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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