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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십년 넘게 못오는 아들아…

등록 2012-01-20 16:49수정 2012-01-20 21:46

한글 깨친 82살의 노모
눈물로 쓴 생애 첫편지
보고 싶은 아들을 떠올리니 가슴이 아려왔다. 지난 18일 오전 전남 영암군 영암읍 학송리 반송마을에 사는 박아무개(82) 할머니는 연필을 꼭 쥔 채 눈을 감았다. 그는 이날 마을회관 한글교실에서 난생처음으로 편지를 썼다. 한글교실 박문규(77) 선생님은 ‘설에 찾아올 자식과 손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편한 마음으로 써보시라’는 과제를 냈다. 올해 쉰여덟 되는 둘째아들에게 보내는 노모의 첫 편지….

“문○○ 아들에개
내일 모레가 설이구나
십년 넘게 집에 내려오지 않으니
궁금하고 보고 십은 마음뿐이다
너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와서
잠이 안온다. 형편이 그래도
다음 명절에는 꼭 오너라
엄마가 기다린다
2012년 1월18일

박○○ 씀”

박 할머니는 자신이 쓴 편지를 읽다가 눈물이 났다. 누가 볼까봐 손으로 얼른 훔쳤지만, 굵은 손마디에 눈물이 툭 떨어졌다. 2남1녀 가운데 둘째아들은 1990년대 후반 아이엠에프(IMF) 구제금융 때 사업이 망하면서 다리를 다쳐 장애인이 된 뒤 십수년째 고향에 오지 못하고 있다. 직장도 못 잡던 아들은 최근 서울의 한 장애인복지단체에서 승합차를 운전하며 어렵사리 지낸다. 15년 전 세상을 뜬 할아버지와 네 마지기 논농사를 지으며 어렵게 자식들을 키웠는데…, 천식으로 고생하는 박 할머니는 올해도 혼자 쓸쓸히 설을 보내야 할지 모른다. 미국으로 간 장남(61)과 딸도 사정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반송마을 할머니 26명은 2008년 1월부터 한글을 배우고 있다. 53가구 95명이 사는 반송마을엔 65살 이상 노인 51명 가운데 38명이 여성이다. 영암군은 5년째 농한기마다 5개월 과정으로 마을 268곳에서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키우는 ‘문해교실’을 열었다. 한글을 몰라 마을로 가는 버스를 찾지 못했던 노인 4600여명이 ‘까막눈’을 벗었다. 영암군은 이번 설을 맞아 한글교실에 동화책 10여권씩을 지원했다.

문순례(76) 할머니는 “설에 오면 내가 동화책을 읽어주겠다”고 쉰여섯살의 큰아들에게 편지를 써 약속했다. 이날 반송마을 한글학교 어머니들이 자식들과 손자들을 생각하며 삐뚤삐뚤하게 쓴 편지엔 애틋하고 따뜻한 어머니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마을 신아무개(76) 할머니도 조그마한 식당을 운영하는 아들(51)에게 편지를 썼다.

“아드래개 하는 말
○○야 금연해 건광하고
잘살기 바란다 엄마는
너이들 부자대기만 바란다
그리고 엄마도 겅광하다
걱정마라 신○○

2천12년 1월18일”

광주/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사진 전남일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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