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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조심 하라”던 쌍둥이 형, 주검으로 돌아왔다

등록 2012-05-17 20:32수정 2012-05-18 11:15

1980년 5월27일 옛 전남도청에서 5·18 항쟁 마지막날까지 저항했던 쌍둥이 형제의 형 이강수씨의 고교 시절 모습(위 왼쪽)과, 당시 함께 싸우다 총상을 당했던 동생 이강준씨의 요즘 모습(위 오른쪽). 이강준씨의 큰딸 이 초등 3학년 때 쓴 2000년 5월19일 일기(아래).  이강준씨 제공
1980년 5월27일 옛 전남도청에서 5·18 항쟁 마지막날까지 저항했던 쌍둥이 형제의 형 이강수씨의 고교 시절 모습(위 왼쪽)과, 당시 함께 싸우다 총상을 당했던 동생 이강준씨의 요즘 모습(위 오른쪽). 이강준씨의 큰딸 이 초등 3학년 때 쓴 2000년 5월19일 일기(아래). 이강준씨 제공
‘반쪽’을 떠나보낸 이강준씨의 오월
5·18항쟁 32돌
도청에 가니 형이 있었다
진압 전야 “몸조심” 당부
마지막 만남이 될줄이야

형은 총 맞고 두개골 함몰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와
마지막 모습 자주 생각나

 5분 먼저 세상에 나온 형은 그의 반쪽이었다. 이강준(51·광주 북구 두암동)씨가 일란성 쌍둥이 형을 잃은 건 1980년 5월이었다. 형 강수씨는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중 18일부터 시위에 참여했다. 당시 토목공사장에서 일하던 동생 이씨도 22일부터 시위대에 합류해, 시민군 지도부가 있던 옛 전남도청에 들어가 무기고를 지키다가 형을 만났다. 이씨는 “형은 광주통합병원에서 산소통을 가져와 전남대병원 등에 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신군부의 피의 진압이 시작되기 바로 전날인 5월26일 밤, 쌍둥이 형제는 서로 “몸조심하라”고 당부하며 헤어졌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이튿날 새벽 4시께 머리띠를 한 계임군이 도청 안으로 진입하며 총을 난사했다. ‘무기고로 쓰던 숙직실 유리를 뚫고 거울에 튕긴 유탄’에 맞은 이씨는 얼굴 광대뼈가 부러지고 코밑까지 파편이 박혔다. 피범벅이 돼서도 형 생각이 났다. 새벽 6시나 됐을까? 두 손을 결박당한 채 광장에 엎드려 있던 시민군들 틈에서 “재수생입니다”라고 답변하는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살아 있구나….’

하지만 형은 6월 초 싸늘한 주검이 돼 돌아왔다. 오른쪽 가슴에서 겨드랑이 사이로 총알이 관통했다. 이씨는 형이 ‘27일 새벽 옛 전남도청에서 사망했다’는 조사 결과를 믿을 수가 없었다. 1997년 형의 주검을 망월동 옛 묘역에서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하기 직전 법의학자에게 사망 원인을 밝혀달라고 의뢰했던 것도 진실을 밝히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씨는 “형의 두개골이 함몰돼 있었는데, 전문가들도 무슨 자국인지를 밝히지 못했다”며 “상무대 영창에서 고문을 받다가 (문제가 생겨) ‘위장 사살’을 당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당시 도청 안 식당으로 주먹밥 먹으러 가다 보면 신원 확인이 안 된 시신이 많았어요. 목이 잘린 주검도 있었고요. 화가 치밀었죠. 볼 때마다 기도하고…. 울면서 밥 먹으러 갔어요. 그래서 (군인들이 진압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집에 돌아간다는 생각을 안 했어요. 끝까지 남아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그랬지요. 죽을 때까지 싸운다는 생각으로 남아 있었어요.”

이씨는 국군통합병원에서 치료받다가 상무대 군 영창으로 옮겨졌고 그해 9월 광주교도소에서 기소유예로 나왔다. 형을 잃은 상실감과 영창 안 고문의 상처를 애써 덮고 ‘오월’과 비껴 살았다. 대학을 마치고 토목업을 시작해 사업에 크게 성공하기도 했던 이씨는 9년 전 큰 시련을 겪었다. 이씨는 지금은 필리핀에서 광업 사업을 하며 재기의 발판을 다지는 중이다.

“마지막 모습이 자주 생각나요. 꿈에서도 자주 보이고요. 꿈에 형이 웃으면 좋은 일이 있어요. 아무 말도 안 하면 안 좋고요. 그러면 딸에게 전화해 큰아빠 묘지에 갔다 오라고 해요.”

 이씨의 큰딸(22·ㅇ대 3년)은 어려서부터 전해들은 아버지와 큰아버지의 애절한 사연에 5월만 되면 가슴이 무거워진다고 했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자취하는 그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연희동 집 근처를 지날 때면 (가해자들이) 잘살고 있는 것에 화가 난다”며 “아직도 5·18을 꾸며진 이야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서운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아버지를 따라 5월 묘역에 자주 갔던 그는 그때의 기억을 일기에 남겼다. “큰아빠 모습은 어떻게 생겼을까? 지금의 아빠랑 똑같은 쌍둥이니까 지금도 똑같을까?”(2000년 5월19일 일기·사진)

2003년 초등학교 6학년 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광주지부가 연 ‘5·18 글짓기 한마당’에서 최고상(초등 산문)을 받은 글에도 아빠와 큰아빠의 슬픈 이별을 기록했다.

 “5·18이 일어난 지 22년이 지난 지금에도 형님의 묘지 앞에 엎드려 통곡하는 동생에게 누가 위로에 말을 해 줄 것 입니까? … 형제를 갈라놓은 사람은 목숨을 다 바쳐 사죄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죄의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 사람에게 묻고 싶습니다. … 난 두분이 역사의 큰일에 뛰어든 용기를 배울 것이며… 혹시라도 이 마음이 흔들릴 때 망월동 민주 성지를 찾아 가슴속 깊이 민주화의 꽃을 심으렵니다. 그리고 부끄럽지 않은 두분의 딸이 되겠습니다.”(맞춤법은 원문대로 둠)

광주/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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