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무극 1인자 뇌출혈 쓰러진 뒤 기력마저 쇠약
문화재 지정 못받아…전수조교 없어 단절 위기
문화재 지정 못받아…전수조교 없어 단절 위기
“다들 (나보고) 문화잰줄 알아….” 지난달 30일 오후 전남 영광군 영광읍 교청리 공옥진(74)씨 댁을 찾았다. 공 선생은 뇌출혈로 쓰러져 투병 끝에 가까스로 건강을 회복했지만, 기력이 예전같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자신의 예술세계를 설명할 때는 선한 눈매에 강렬한 빛이 났다. 이른바 ‘병신춤’으로 유명한 그는 ‘한국 창무극 제1인자’로 불린다. 그에게는 항상 “걸쭉한 소리와 뒤틀린 춤사위로 한과 흥을 토해내는 창무극의 명인”이라는 찬사가 따라 붙는다. 그의 창무극은 미국·영국·일본 등지의 세계적 무대에서도 큰 호평을 받았다. 그렇지만 정작 그는 창무극으로 문화재 기능 보유자로 지정받지 못했다. 물론 문화재 지정 여부가 예술적 가치를 평가하는 잣대는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전수 조교를 둘 수 없어 예술세계가 제대로 전승되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전남도는 2003년께 공씨의 1인 창무극을 도지정 무형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해 상정했지만, 도 문화재위원들이 찬반 논란 끝에 부결시켰다. 공씨의 1인 창무극을 문화재로 지정하자는 쪽에선 “조선시대에도 재담·소리·춤이 섞인 1인 재담극이 존재했다는 기록이 있어 공씨의 춤이 전승의 가치가 크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공씨가 당대에 춤을 즉흥적으로 창조한 측면이 더 크다”며 반대하는 목소리에 묻혀 부결됐다. 이에 대해 문화 전문가들은 “공씨를 판소리 기능보유자로 문화재로 지정해 예술혼을 잇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공씨는 1948년 고창 대회에서 장원을 할 정도로 뛰어난 소리꾼 자질을 보였다. 그의 아버지 고 공대일 명창은 <흥보가>로 전남도 지방문화재가 됐었고, 화순 출신 공창식·공기남 명창과도 같은 집안이다. 공씨는 <흥보가>를 아버지 공대일 명창한테서, <심청가>는 아버지와 고 김연수 명창한테서 배웠다. 임방울, 박녹주씨 등 우리나라 대가들한테 소리를 받았다. 목청이 좋았던 공씨는 춤을 배웠던 터라 발림이 남달랐다. 해방 후 ‘임방울 창극단’ ‘김연수 우리국악단’ 등에서 각종 창극에 출연하면서 예술적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1978년 1인 창무극으로 서울 춤판에 서기까지 여성으로서 고난한 삶을 살았다.
손태도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은 “(창무극의 문화재 지정 찬반 논란을 떠나) 공 선생의 예술적 세계와 그 에너지는 누구나 다 인정하고 있는 것 아니냐”며 “공 선생을 판소리 기능보유자로 문화재로 지정해 1인 창무극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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