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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2차피해 막을 구체 지침 있으면 좋을텐데…”

등록 2012-09-04 20:16수정 2012-09-04 22:17

‘나주 성폭행’ 이후 주변 표정
학교 “어떻게 해야할지 큰 부담”
학생들에 호루라기 나누어 줘
아이들, 낯선 사람엔 뒷걸음질
가족들은 살던 집서 이사 채비
4일 오후 3시께 전남 나주의 성폭행 피해 어린이 ㄱ(7·1학년)양이 다니던 초등학교 앞.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책가방에 손톱만한 직육면체 호루라기가 대롱거렸다. “선생님이 오늘 호루라기를 나눠줬어요. 위험한 일이 생겼대요. 뭔지는 잘 모르겠어요.” 1학년 김아무개(7)군은 호루라기를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낯선 기자가 나타나 물어보자 뒷걸음질치던 김군은 학교 앞 문구점 앞에 승용차가 멈춰서자 “엄마~” 하고 차 속으로 뛰어들었다. 승용차는 이웃 아이들까지 네 명을 싣고는 주택가 쪽으로 사라졌다. 교문 앞에서 서성이던 학부모들은 뉘집 자녀를 불문하고 ‘집에 가지 않고 뭐하느냐’며 채근했고, 아이들은 차 안으로 빠르게 몸을 던지곤 했다. 학부모 문아무개(41·여)씨는 “학교에서 ‘낯선 사람을 조심하고, 문단속 잘하라’는 통신문이 왔다. 어쩌다 이런 지경이 됐는지 답답할 뿐”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피해 어린이가 다니던 학교는 지난 3일 개학했다. 첫날 교장은 “사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프다”며 교직원들에게 ‘함구령’을 내렸다. 서둘러 학교 누리집에 성교육 동영상을 올렸다. 이날은 나주시교육청이 보낸 상담교사 2명이 교직원 40명과 1~2학년 학생 100여명에게 영상과 그림, 애니메이션을 보여주며 ‘심리 안정 및 외상후 스트레스 극복을 위한 방안’ 등을 설명했다.

교장은 “이런 사건이 터졌을 때 학교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지침이라도 있으면 한결 부담이 덜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ㄱ양의 담임교사는 “아이들은 ㄱ양이 아파서 학교에 못 나온 줄 알고 있다”며 “다른 아이들한테 불안이 확산되지 않기만을 기도할 뿐”이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교사는 “어디서 사건이 터져도 학교와 학생만큼은 2차 피해가 없도록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피해 어린이가 다니던 지역아동센터도 불안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센터 교사는 “ㄱ양과 함께 공부하던 아이들이 아직도 두려워하는 표정을 짓는다”며 “분위기가 진정되도록 외부인을 들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대응 매뉴얼 같은 것이 없는 탓에 ㄱ양의 언니(12·초등 6년)와 오빠(11·초등 5년)는 사건 당일인 지난달 30일, 동생이 납치된 현장인 집에서 아버지와 함께 밤을 보냈다. 이날 언니와 오빠는 현장을 찾은 수사진과 취재진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다. 이들은 다음날인 31일에야 나주의 공공시설로 옮겨졌다. 이들을 사흘 동안 돌본 이 공공시설의 강은숙 원장은 “언니는 처음에는 한참 동안 울먹였고 오빠는 굳어 있었다”며 “아이들을 범행 장소와 주변 사람들로부터 일단 빨리 벗어나게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런 경우를 처음 겪었다는 강 원장은 “그대로 뒀으면 심각해질 수 있었는데 다행히 집에서 벗어나 시간이 흐르자 표정이 밝아졌다”며 “2차 피해가 우려되는 어린이들을 위한 에스오에스(SOS) 시설을 지역별로 운영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ㄱ양 가족은 머지않아 광주광역시로 이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먼저 ㄱ양의 언니와 오빠는 4일 광주의 학교로 전학했고, 거처도 광주의 아동보호 전문센터로 옮겼다. ㄱ양의 아버지(41)는 ‘사건이 발생한 집에서 더는 살아가기가 힘들다’고 주위에 이야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남해바라기아동센터 관계자는 “부모 의견을 존중하면서 보호자와 형제자매도 트라우마(심리적 상처)를 치유할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나주/안관옥 정대하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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