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l 사건 50여일…끝나지않은 고통
“그들이 살겠다니 떠날 수밖에…”
한양 아버지 매일 소주 2~3병
딸 물건 아직까지 방에 그대로
술에 취하면 이름 부르며 찾아
지자체 지원에도 치유 ‘역부족’
“그들이 살겠다니 떠날 수밖에…”
한양 아버지 매일 소주 2~3병
딸 물건 아직까지 방에 그대로
술에 취하면 이름 부르며 찾아
지자체 지원에도 치유 ‘역부족’
경남 통영시에서 지난 7월16일 납치돼 살해된 초등학생의 가족들이 결국 그동안 살던 통영 마을을 떠나기로 했다.
같은 마을의 성범죄 전과자 김아무개(45)씨가 성폭행하려고 끌고갔다가 숨지게 했던 한아무개(10·초등 4년)양의 가족들은 6일 “김씨가 구속됐다고 하지만, 그 가족들을 마을에서 수시로 마주치는 상황이 너무도 견디기 힘들다”며 “그들이 이 마을에서 그대로 살겠다 하고 김씨도 돌아올 것이니, 우리가 떠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가족들은 고향인 경북 문경으로 이사하기로 하고, 최근 통영시 산양읍 집을 내놨다.
한양이 살해된 지 50여일이 흘렀지만, 가족과 친구들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었다. 지방자치단체, 교육청 등이 신경쓰고 있다지만, 이들의 상처를 치유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였다. 가족들은 지난 7월24일 강력범죄 피해자들을 상담하는 경남지방경찰청 범죄피해자 케어팀의 상담을 받았다. 일요일마다 집에서 1시간씩 법무부 산하 법인인 범죄피해자지원센터의 상담사와 만나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통영시와 범죄피해자지원센터 등은 한양의 장례비를 지원했다.
하지만 한양의 아버지(58)는 충격에서 벗어나기는커녕 갈수록 깊은 시름에 빠져들고 있다. 한양 집에서 사는 한양의 올케는 “딸을 그렇게 보낸 이후 아버님이 날마다 혼자서 소주 2~3병을 마시고, 술에 취하면 그때마다 죽은 딸 이름을 부르며 찾는다”고 말했다. 한양의 큰고모(65)가 한양의 물건을 모두 불태우려 마당에 꺼냈으나, 아버지는 다시 한양의 방에 가져다 예전처럼 재정리했다. 지난 2일 한양의 유골을 안치한 경북 포항의 절에서 치른 49재 때에도 아버지는 일기장과 스케치북, 옷 1벌, 인형 1개만을 태우고 나머지 물건들은 그대로 남겨뒀다. 한양의 올케도 “나도 상담을 받으면 잠시 마음이 후련해지지만, 혼자 집에 있으면 여전히 답답하고 무서운 생각이 든다”고 착잡해했다.
동료 초등생들도 충격 남아
전교생 76명 상담치료 받지만
일기장에 “혼자 있으면 무섭다” 한양이 다니던 ㅅ초등학교 학생들도 불안을 털어내지는 못한 듯했다. 한양의 담임을 맡았던 안아무개 교사는 “겉으로는 아이들이 충격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도 일기장에 ‘집에 혼자 있으면 무섭고 슬프다’라고 쓰는 학생들이 있다”고 걱정했다. 전교생 76명은 한양의 장례기간이던 지난 7월 말 학년별로 2시간씩 통영시교육청 전문상담사의 상담치료를 받았다. 학교 쪽은 여름방학 때도 2주일 동안 상담실을 가동해 희망하는 학생·학부모들에게 심리상담을 했다. 통영지역 보건교사들은 방학 직후 이 학교를 찾아가 전교생에게 3시간 동안 성폭력 예방교육을 했다. 이 학교 박성욱 교장은 “가족 아닌 사람의 차량을 절대 타지 말고 등교할 때는 되도록 통학버스를 이용하라고 강조한다”며 “그러나 심리 상담과 치유, 예방교육 말고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위해 특별히 할 수 있는 게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안 교사는 “상담이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혼자 있는데 아는 사람이 접근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처럼 구체적인 대처법을 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통영/글·사진 최상원 기자 csw@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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