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금덕씨 등 5명 광주지법에
“일본에서 일하다가 손가락이 잘려 한평생 남 앞에 손을 내놓지 못했고, 지진이 나 넘어지면서 발목뼈를 다쳐 절름발이로 살아왔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조선여자근로정신대’로 끌려가 일본 나고야 미쓰비시중공업㈜에서 일하고도 임금을 받지 못했던 김성주(84·경기도 안양시)씨는 24일 광주광역시의회 브리핑실에서, 이날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국내 법원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기까지 67년 설움을 털어놓았다. 전남 순천 남초등학교를 졸업한 직후인 1944년 5월 미쓰비시중공업에 동원됐다. 고국에 돌아와 결혼했지만, 근로정신대라는 명칭 때문에 ‘일본군 위안부’로 오인받아 정신적 고초를 겪었던 그는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습니까?”라고 말하다가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양금덕(84·광주광역시 서구 양동)씨 등 5명은 이날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근로정신대 피해자 6명이 입은 정신적 피해를 보상하라며 광주지법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대법원이 지난 5월24일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한 판결을 내린 뒤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국내 법원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것은 처음이다.
이들은 13~15살이던 1944~45년 근로정신대로 동원돼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제작소 등지에서 일하고도 임금을 받지 못했던 피해자 6명에게 ‘1인당 1억100만원씩을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피해자 6명 가운데 숨진 2명의 유족 1명이 원고로 참여했다. 이 소송을 맡은 이상갑 변호사는 “손해배상 위자료는 정신적 고통을 입은 것과 지급받지 못한 임금을 현재 가치로 환산해 청구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하지만 받지 못한 임금을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소송이 길어지는데, 피해자 대부분이 고령인 점을 고려해 먼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손해배상만 요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권 인정 판결 당시 소송을 맡았던 최봉태 변호사는 “2008년 일본 최고재판소도 양씨 등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은 살아있지만, 재판을 통해 구제할 방법이 없다고 판결하면서 일본 기업이 자발적으로 구제를 하도록 권유했다”며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일본최고재판소와 우리 대법원 판결의 취지가 다르지 않기 때문에 승소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광주/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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