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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재판
법원이 민사소송에 앞서 피해자가 주장하는 피해액과 보상 주체가 제시한 배상금을 검증해 배상금 수준을 결정하는 일종의 중재 절차다. 피해자나 보상 주체가 이의를 제기하면 민사소송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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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충남 태안 앞바다를 검게 뒤덮었던 유조선 기름 유출 사고가 일어난 지 5년1개월 만인 16일 법원이 전체 피해 금액을 7341억원으로 산정했다. 손해배상의 첫걸음을 뗀 결정이다. 그러나 법원의 손해 인정액이 주민들의 기대에 못 미치는데다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IOPC·국제기금) 사정액보다는 많아, 양쪽이 이후 민사소송에서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대전지법 서산지원 민사2부(재판장 김용철)는 이날 유류오염 손해배상 책임제한 절차개시 사건에 대한 사정재판을 열어, 삼성중공업 크레인선이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를 들이받아 원유 1만900여t이 유출된 사고에 따른 전체 피해 신고액 4조2271억원 가운데 7341억여원(17.37%)을 손해액으로 결정했다. 이 가운데 주민 피해액은 신고 금액 3조4952억여원의 11.84%인 4138억여원으로 인정했다. 정부·지방자치단체의 해양복원사업 비용은 2174억여원으로 결정했고, 나머지는 민간 방제비용이다.
이는 국제기금이 자체 평가한 전체 피해액 1844억여원보다는 4배가량, 주민 피해액 829억여원보다는 5배가량 많은 금액이다.
특히 증빙자료가 거의 없어 피해액 신고에도 애를 먹었던 맨손어업의 경우, 법원은 국제기금 사정액 177억여원보다 13배가량 많은 2367억원을 인정했다. 이는 맨손어업 주민들이 신고한 피해 9만249건, 1조2178억여원의 19.51%에 해당한다. 또 연소득 2400만원 이하 주민들 가운데 3000여명은 같은 업계의 매출액·임금 수준 등을 고려해 모두 46억원의 손해를 인정했다.
법원이 결정한 주민 피해액 가운데 수산 분야는 3676억여원, 관광업 등 비수산 분야는 461억여원이다. 보령·서산·태안의 어민들은 수백억원에서 많게는 1000억원 넘게 배상액이 늘어났다. 이에 견줘 손해 인정액이 적은 비수산 쪽 주민들은 반발했다. 상가 등이 몰려 있는 태안읍 지역은 손해 인정액이 ‘0원’인 것으로 전해졌다.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에서 민박집을 하는 신아무개(44)씨는 “사고 나던 해 여름에 민박을 수리한 자재비·인건비 등 1370만원을 청구했지만 결정액이 0원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사고 발생 초기에 정부가 방제작업에만 치우쳐 피해 규모나 주민들의 어업 현황 등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김용철 서산지원장은 “주민 피해와 관련한 기초자료를 구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이 때문에 주민들이 적절한 피해 보상을 못 받은 점이 아쉽다. 유사한 피해 발생에 대비한 매뉴얼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태안군 유류피해민 대책연합회 문승일(46) 사무국장은 “어이없는 결정이다. 사법부가 피해 주민들을 다시 버린 것이다”라며 반발했다. 지역별 피해 대책위는 법률적 쟁점 등을 검토한 뒤 대책을 마련할 참이다. 다음달 초 손해 결정에 불복하는 민사소송 건수가 대략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법원 결정문이 전달된 뒤 14일 안에 주민들과 허베이스피리트호 선사, 국제기금 어느 쪽이라도 이의를 제기하면 민사소송이 시작된다. 법원 결정대로 손해액이 확정된다면, 허베이스피리트 쪽 1458억여원을 포함해 3298억여원까지 국제기금이, 삼성 크레인 선사는 56억여원을 부담하고, 나머지는 정부가 배상한다. ‘허베이스피리트호 유류오염사고 피해주민의 지원 및 해양환경의 복원 등에 관한 특별법’은 확정된 배상액을 정부가 주민들에게 먼저 지급한 뒤 국제기금 등으로부터 해당 금액을 받을 수 있도록 돼 있다.
서산/전진식 송인걸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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