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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학생인권조례에 소금 뿌리는 보수

등록 2013-01-28 21:45

김병우 충북교육발전소 상임대표
김병우 충북교육발전소 상임대표
울림마당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라는 제명으로 국내에도 번역 출간된 앨버트 허시먼의 <반동의 수사학>(The Rhetoric of Reaction)을 보면, 보수주의자들이 개혁에 저항하며 내세우는 세가지 어법이 나온다. ‘역효과 명제’와 ‘무용 명제’, ‘위험 명제’가 그것인데, 이를 요즘 교육개혁 담론들을 둘러싼 공방에 대입해보면 어찌 그리도 딱 들어맞는지, 실로 무릎을 칠 만하다.

첫째는 ‘역효과 명제’다. 변화를 향한 노력이 도리어 환경을 악화시킬 거라는 딴죽걸기. 이를테면 찬물 끼얹기나 재 뿌리기 어법이다. 무상급식을 하자고 하면 급식의 질이 떨어질 거라고 초를 치고, 학생인권조례를 만들자면 교권이 추락할 거라며 다리를 건다. 학생인권조례로 학생인권조차 도리어 짓밟힐 거라며 입에 거품을 문다. 무슨 소리일까. 일탈학생의 인권을 보호하려다 보면 그 때문에 더 많은 일반학생들의 인권과 학습권이 침해될 거란다.(<동아일보> 사설). 그들의 믿음에는 아직, 다수의 안녕을 위해서라면 소수의 인권은 짓밟아도 된다는 파시즘의 미련이 남아 있다.

둘째는 ‘무용 명제’다. 변화를 꾀해 봤자 별로 달라질 게 있겠느냐는 어깃장. 말하자면 김 빼기와 물타기다. 해봐야 별거 없다며 효과에 김을 빼고 필요성에 물을 탄다. 무상급식을 ‘부자급식’으로 이름 붙이고 부잣집 애들까지 왜 공짜 밥을 먹이느냐며, 고양이가 쥐 생각하듯 그 돈으로 차라리 어려운 아이들을 더 돕는 게 낫다고 한다. 아이들은 미숙하고 배우는 존재라 기본권쯤 제한해도 마땅한데 인권조례가 대관절 무슨 소용이냐며 혀를 찬다. 인권조례 없이 학교학칙만으로도 학생인권은 충분히 존중된다는 딴청부리기야말로 ‘무개념을 장착한’ 무용론의 전형이다.

셋째가 ‘위험 명제’다. 변화나 개혁에 드는 출혈이 너무 커, 전통적인 가치마저 붕괴될 거라는 겁주기. 이를테면 고춧가루 뿌리기나 소금 뿌리기다. 무상급식에 세금폭탄을 들먹이거나 ‘배급제 급식’ 딱지를 붙이며 레드 콤플렉스를 부채질하는 것도 같은 코드다. 대학 반값 등록금은 자기 노후연금을 빼먹는 바보짓이라며 빈정대고, “공짜 치즈는 쥐덫 위에나 있다”는 딴 나라 속담까지 들먹이며(오세훈), 보편복지 확대도 거지근성과 복지병을 만연시킬 포퓰리즘이라고 몰아붙인다. 이런 겁박은 학생인권조례에도 어김없이 동원된다. 학생들에게 표현의 자유를 주자면 “홍위병으로 만들려는 불순한 의도”(<조선일보> 사설)라며 눈을 부라리고, ‘성적(性的) 지향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에 대해서는 동성애와 에이즈를 들먹이며 침을 뱉는다.

보수와 진보 두 진영으로부터 공히 그 권위를 인정받는다는 허시먼. 그의 이런 명제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는 적지 않다. 주변의 개혁 담론들 앞에 놓인 돌부리들도 훤히 비춰준다. 그 돌부리는 딱히 수구집단의 기득권 옹호론만도 아니다.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모든 진영에 변화를 겁내는 수구적 아집들은 있다. 학생조례제정 운동이 성사 여부를 떠나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역사적 의미’들 중 하나다.

김병우 충북교육발전소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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