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규홍 카이스트 전산학과 07학번
울림마당
오늘 카이스트(KAIST)에서는 신입생을 맞이하는 ‘새로 배움터’와 강성모 신임 총장의 취임식 행사가 함께 열린다. 6년 전 오늘 ‘서남표 1세대’라 불리며 대학 생활을 시작했던 나에게는 새로운 시작을 앞둔 카이스트에 이제야말로 과거에 엿볼 수 있었던 학생과 학교의 신뢰가 자리잡았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처음 카이스트 선배를 만나 느꼈던 가장 큰 충격은 아무도 공부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데 있었다. 90년대 학번의 한 선배는 심지어 카이스트인의 디엔에이(DNA)는 공부 안 하고 딴짓하기에 있다고까지 말했다. 다들 동아리며 연구 따위에 매진했다. 이래도 되나 싶어 선배에게 물으면 언제나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공부는 때가 되면 한다는 것.
예전 카이스트의 학사 제도는 전과나 복수전공, 재수강 같은 재도전의 기회를 끝까지 허락했다. 이로 인해 나태와 방종을 일삼는 선배도 있었지만 다수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재기에 성공하고 훌륭한 학자로 성장하곤 했다. 그것이 카이스트 학생사회가 20년간 유지해온 정체성이었다.
하지만 지난 6년간 서남표 총장의 개혁에는 그러한 정체성을 지탱해온 학생들에 대한 신뢰가 부재했다. 기존의 학생문화는 나태로 낙인찍혔고 낮은 학점과 연차 초과, 재수강에는 큰 대가가 따르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학생들 사이에는 기준에 미달하지 않으려는 끝없는 경쟁, 이른바 ‘무한 비하향 경쟁’이 시작되었다. 카이스트는 각종 지표에서 분명히 성장했지만 학생을 더는 신뢰하지 않는 학사 제도가 구성원 간의 분열과 반목을 불러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지난해 세계은행 총재로 임명된 김용씨는 미국 다트머스대 총장으로 부임한 직후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요즘 하는 일은 수없이 학생을 만나며 이 학교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라고 했다. 새로운 대학을 만드는 것은 쉽지만, 이미 있는 대학을 바꿔 나가는 것은 그 문화의 본질과 역사의 맥락을 이해하고 구성원의 감동을 이끌어야 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횟수로만 본다면 서남표 총장 또한 구성원과 수없이 많은 소통의 기회를 가졌다. 다만 카이스트에 이어져온 신뢰의 문화가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시간이 있었는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소통의 대가라는 이름답게 강 신임 총장은 오늘도, 내일도 학생 대표와 여러 차례 간담회와 만찬을 할 예정이다. 그러한 만남이 단순한 만남에 그치지 않고 서로의 역사와 맥락을 이해하며 서로를 믿을 수 있는 장이 되기를 바란다. 조금 더 욕심을 부리자면, 결국엔 공부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학생들의 디엔에이를 강 신임 총장 또한 믿어주었으면 좋겠다.
변규홍 카이스트 전산학과 07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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