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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시골장 퇴출…추억은 어디서 사나?

등록 2013-03-12 20:27

전남, 기준미달한 곳 폐지 추진
100년 된 ‘함평 나산장’ 존폐위기
도 “선택·집중”…주민 “신중해야”
“장터에 물건 사러 나오나. 친구들도 만나고 막걸리도 마시러 나오지.”

함평 나산장에서 2대째 생업을 이어온 이영배(70·함평군 나산면 삼축리)씨는 ‘전통시장 구조조정’ 소문에 화들짝 놀랐다. 이씨는 “5일장은 물건만 사고파는 장소가 아니라 농사일을 배우고, 남정네들은 남정네끼리 아낙네들은 아낙네끼리 한바탕 어울리는 곳”이라고 말했다.

함평 나산장은 1907년에 세워진 유서깊은 공설시장이다. 일제 때엔 읍내보다 전기가 먼저 들어오고, 금융조합도 먼저 생겼다. 5일장 장터 주변에 여관이 5곳에 이를 정도로 번성했던 곳이다. 1970년대 이후 급격한 이농 탓에 면민이 1만명에서 3000여명으로 줄자 5일장도 명맥을 겨우 잇고 있다. 장터의 점포 27곳 가운데 영업을 하는 곳은 7~8곳에 그치는 형편이다. 지난해 시장 평가에선 5단계의 바닥인 이(E) 등급을 받았다. 지원마저 끊길 위기를 맞았다. 김광호 면 산업진흥담당은 “다달이 장옥세(5일장 이용료)로 들어오는 수입이 4만원에 그쳐 화장실 청소비도 안 된다. 시장 활성화가 주민들의 오랜 숙원인 만큼 여러 대책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전남도는 12일 “4월까지 전통시장 126곳 중 이용도가 낮은 77곳의 실태를 2차례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조사 대상은 지난해 시장경영진흥원의 평가 결과 4단계인 디(D) 이하 판정을 받은 곳들이다. 도는 이번 조사에서 시장이 형성되지 않거나 점포가 10곳에 미달하는 시장은 시장등록 폐지와 관리 대상 제외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순천 송광, 나주 문평, 고흥 대서, 영광 염산, 완도 고금, 진도 의신 등지 기능을 상실한 면 단위 시장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1964년 개설된 해남군 현산면의 해남월송장도 점포 15곳 중 4곳만 문을 열어 퇴출 위기를 맞았다. 이곳에서 40여년 동안 식품·사료 등을 팔아온 장기순(66)씨는 “20년 전 소전이 없어지면서 장사가 안되니 문닫는 거야 어쩔 수 없지. 운전을 못하는 70대 어른들만 서운하고 불편할 거야”라고 전했다.

도 일자리창출과 송기옥씨는 “전통시장도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는 방침이다. 시·군이 시장의 등록과 폐지 등 권한을 갖고 있어 협의를 통해 추진하겠다. 퇴출한 공설 장터엔 특산품판매장, 주민휴식공간 등을 조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농민 김성훈(37·해남군)씨는 “장터는 학교처럼 경제논리로만 봐서는 안 된다. 주민의 생활에 활력을 주고, 향우의 추억이 깃든 5일장을 인위적으로 구조조정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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