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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 키워드로 본 ‘5·18의 진실’

등록 2013-05-19 20:11수정 2013-05-19 22:49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5·18 광주민주화운동 33주년 기념식’에서 합창단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동안 자리에서 일어서 있다. 박 대통령은 노래를 따라 부르지 않았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5·18 광주민주화운동 33주년 기념식’에서 합창단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동안 자리에서 일어서 있다. 박 대통령은 노래를 따라 부르지 않았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솔직히 잘 몰랐어요. 대학 4학년 때 근현대사를 배우면서야 5·18을 알게 됐어요. 고교 때 <한국지리>를 선택해 <근현대사>를 안 배웠거든요.”

지난 17일 오후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만난 충남대생 이주리(23·중문4)씨가 한 말이다. 영화 <화려한 휴가>나 <26년>을 통해 간접적으로 80년 5월을 접한 젊은 세대는 ‘5·18과 8·15를 구분하는 것도 헷갈린다’고 말한다. 일부 종합편성채널에선 탈북자들이 5·18을 북한군이 일으킨 폭동이라고 주장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5·18 민주화운동의 진실은 무엇인가.

약속…5·18의 도화선 전남대

“계엄이 확대되면 교문에서 모이자고 했지요. 18일 아침 교문에 갔더니 군인들이 완전 무장한 채 진을 치고 있더라고요.” 전남대 3학년생이던 이재의(58)씨는 1980년 5월18일 오전 전남대 정문 앞으로 갔다가 깜짝 놀랐다. 전두환 등 신군부는 전날인 17일 비상계엄령을 제주까지 전국으로 확대한 뒤 광주에 7공수여단 33대대와 35대대를 투입했다. 작전 명령은 ‘화려한 휴가’였다. 전남대생 200여명은 “계엄해제”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소총에 대검을 꽂은 공수부대원들은 집이나 상가까지 학생들을 쫓아가 구타·연행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옛 전남도청이 있던 금남로로 향했고 시내에서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5월18일 하루에 연행자 405명에 이르렀다. 광주를 관할하는 2군사령부 계엄상황 일지엔 중태자 12명으로 기록돼 있다. 정호용 특전사령관은 18일 11공수여단의 증파를 결정했다.

18일 금남로에서 공수부대원들에게 구타당한 김경철(당시 28살)씨가 19일 새벽 3시 병원에서 숨졌다. 첫 사망자였다. 공수부대에 의한 대표적인 과격진압 사례였다. 청각장애로 말을 할 수 없던 김경철씨는 귀가하던 중이었다. 광주적십자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뇌출혈로 이튿날 새벽 결국 숨졌다.

5·18 민주화운동 33돌 기념식에서 정부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거부한 것에 항의해 5·18 관련 단체 회원들과 광주시의원, 학생·시민 등 1000여명이 18일 오전 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동 옛 5·18 묘역에서 따로 기념식을 열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5·18 민주화운동 33돌 기념식에서 정부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거부한 것에 항의해 5·18 관련 단체 회원들과 광주시의원, 학생·시민 등 1000여명이 18일 오전 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동 옛 5·18 묘역에서 따로 기념식을 열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야만에 대한 저항

공수부대의 첫 발포는 5월19일 오후 4시50분께 동구 계림동에서 발생했다. 조대부고생 김영찬(당시 19살)군이 최초로 총상을 입었다. 11공수 673대대 작전장교 차아무개 대위가 M16 소총을 발포했지만, 이 사실을 은폐했다. 본격적인 발포는 20일 밤부터였다. 5·18 역사를 연구하는 정수만(67)씨는 “5월20일 계엄군에게 실탄을 배포한 것 자체가 발포 명령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20일 밤 11시 광주역 부근에서 발포해 노동자 김만두(당시 36살)씨 등 4명이 숨졌다. 21일 아침 시민들은 3공수여단이 전남대로 철수한 뒤 광주역에서 발견한 주검 2구를 손수레에 싣고서 태극기로 덮어 금남로로 진입했다.

“정오에서 오후 1시 사이였다. … 공수부대가 도청 앞에서 화분대를 바리케이드로 쳐놓고 총을 쏘고 있었다. 금남로 쪽에서 머리에 흰 띠를 두르고 태극기를 든 남자가 타이어 달린 장갑차를 타고 상체를 밖으로 내민 상태에서 도청을 향해 달려왔다. 곧바로 그 남자는 공수부대원이 쏜 총에 맞고 쓰러졌다.”(1990년 정해민씨의 증언)

옛 전남도청 앞에서 시민들과 공수부대가 대치했다. 낮 12시까지 철수하기로 했던 공수부대들이 물러나지 않자 저지선은 금남로1가 전일빌딩 앞까지 좁혀졌다. 당시 1공수여단은 중대장 이상까지 실탄을 분배했고 일부 하사관들에게도 분배됐다. 21일 오후 1시 도청 앞 스피커에서 애국가가 흘러나오면서 집단 발포가 시작됐다. 그 자리에서 54명이 숨지고 수백명이 다쳤다.

시민군의 무장

당시 11공수여단 63대대 8지역대 무전병 1명이 군 장갑차에 깔려 숨졌다. 11공수여단 63대대 9지역대 소속이던 이경남 목사는 <당대비평>(1999년)에서 “군인이 죽은 것은 당시 우리 여단에서 몰고 다니며 사격을 하던 군인 장갑차가 급히 퇴각하면서 군인들을 덮쳤다. 나는 지금도 장갑차의 무한궤도 밑에 하반신이 깔린 그 병사의 상체가 위로 들려지며 입에서 붉은 피를 쏟아내던 처참한 장면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고 썼다.

군은 21일 오후 1시부터 시민들이 무장한 뒤 군인들이 먼저 부상을 입어 자위권을 발동했다는 논리를 펴왔다. 군의 발포 사실을 정당화하기 위한 조작이고, 거짓이다. 시민들의 무장은 5월21일 전남도청 앞 공수부대의 집단발포 이후였다. ‘보안사 505부대 광주 사태시 상황일지’엔 오후 1시부터 광산 하남, 화순광업소 무기고 등이 털렸다고 기록돼 있다. 21일 계엄군은 퇴각했다.

주먹밥의 시민공동체

5월22일부터 시내 질서는 시민군에 의해 유지됐다. 지난 18일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5·18 민주화운동 33돌 기념식에서 안중현 광주지방보훈청장은 5·18 민주화운동 경과보고에서 “5월21일부터 27일까지 치안부재 상황에서 광주 시민들은 성숙한 시민자치의 공동체를 이뤘다”고 밝혔다. 당시 시민들은 동네마다 솥을 걸어 주먹밥을 만들어 시민군에게 건넸고, 헌혈하겠다는 사람이 줄을 섰다.

항전…새벽의 마지막 불꽃

이후 시민·학생 대표들이 수습대책위원회를 꾸려 계엄군과 협상을 시도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5월26일 밤 최후까지 투쟁을 결의한 항쟁지도부에 합류한 이는 150여명(고교생·여학생도 포함)에 이르렀다. 계엄군은 27일 새벽 전남도청 진압 작전에 3공수여단 11대대의 1개 지역대를 투입했다. 광주권 진압 작전은 20사단, 31사단이 맡았다. 27일 동이 터오기 전 진압 작전이 완료됐다. 이날 새벽 시민군 14명이 희생됐다.

5·18민주유공자회 집계 결과, 80년 5월18~27일 항쟁 당시 사망자는 165명이다. 부상 후유증 등으로 숨진 이는 473명이고, 실종자는 67명이다. 부대간 오인 사격으로 군인 12명이 숨지는 등 군인 19명과 경찰관 4명이 숨졌다.

광주/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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