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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 멍석 깔자 학생·학부모·교사 ‘행복한 교실’ 의기투합

등록 2013-06-02 21:08

2012년 혁신학교로 지정된 광주 북구 광주지산초등학교 학생들이 농사 체험으로 텃밭에서 무를 가꿔 수확하고 있다.  광주시교육청 제공
2012년 혁신학교로 지정된 광주 북구 광주지산초등학교 학생들이 농사 체험으로 텃밭에서 무를 가꿔 수확하고 있다. 광주시교육청 제공
[호남 쏙] 변화 선도하는 혁신학교
호남지역에 ‘혁신학교’로 지정된 초·중·고교가 등장한 지 3년째다. 전북은 84곳(전체의 11.2%), 전남 51곳(6.1%), 광주 18곳 (5.9%)이다. 이들 학교에선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수업 땐 손도 들지 않던 아이들이 똑 부러지게 발언하는 걸 보고 놀랐어요.”

지난달 22일 광주시 남구 광주방림초등학교 강당. 5학년생 90여명 모두가 모였다. 올해 혁신학교로 지정된 이 학교는 사전에 틀을 짜지 않은 다모임을 처음으로 열었다. 천편일률적인 방식으로 짜증을 불렀던 학급회의 대신 연 것이다. 안건은 누군가 제안함에 넣은 ‘슬리퍼를 신고 싶은 사람은 신어도 되는가’였다. 교사 4명도 학생과 똑같은 발언권을 갖고 참여했다.

“시원하고 냄새도 덜 난다. 선생님은 신는데 우린 왜 안 되냐”는 찬성 주장이 이어졌다. “절벅절벅 끄는 소리가 난다. 미끄러져 다칠 수도 있다”는 반대 의견도 섞였다. 활발한 토론 뒤 거수로 표결했다. 80%가 찬성 쪽에 손을 들었다.

이어 슬리퍼 착용 이후 지켜야 할 사항들을 스스로 논의했다. “복도와 계단에서 뛰지 말자”, “더러운 슬리퍼는 가져오지 말자” 등 갖가지 의견이 나왔다. 교사는 “처음엔 조마조마했다. 그런데 멍석을 깔아주니 신기하게 잘해내더라”며 반겼다.

이런 방식을 체험한 혁신학교 학생들은 인권의식이 높아 두발·복장의 자유에 민감하고, 스스럼없이 의사를 표현하며 배려와 자율을 배운다. 김영미 광주 수완중 교장은 “3월에 부임했더니 빨간 염색 머리가 눈에 보였다. 가슴이 철렁했다. 그런데 금세 다른 머리 모양을 하더라. 스스로 알아서 하는 것에 학생도 교사도 익숙해지고 있다”고 학교 분위기를 전했다.

학부모들의 자발적인 참여도 눈에 띈다. 수완중의 교실 반칸 크기 학부모 카페엔 지난달 30일 그림동아리 학부모들이 모였다. 일주일에 세번씩 카페에서 강사 등에게 수채화를 배운다. 한두해 학교 일로 대화하고 취미활동도 함께하다 보면 친분이 쌓인다고 했다.

학생들은…
스스럼없이 자기 표현하면서도
친구들 배려하고 자율 높아져

교사들은…
눈높이 맞춤식 교육 열정
학생들 변화보면서 보람 늘어

학부모들은…
자발적 참여 눈에 띄게 늘어
동아리·강좌 만들어 함께 공부

학부모 백희정(42)씨는 “첫째가 1학년 때는 혁신학교에 대해 뭘 몰랐고, 2학년 땐 반감도 있었고, 3학년이 되니 이해가 가더라. 둘째가 이 학교로 배정됐을 때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수완중엔 그림·세밀화·영화·독서·텃밭·퀼트 등 6개 학부모 동아리에 70~80명이 활동중이다. 독서모임 학부모 8명은 수요일마다 기초학력 부진 학생들에게 ‘책과 친구하기’도 진행한다.

지난 4~5월엔 화요일 저녁마다 ‘자녀와 부모’를 주제로 학부모아카데미교실이 열렸다. 2010년에 시작해 7회째다. 강좌가 거듭되면서 학부모들은 혁신학교의 철학을 공유하고, 자녀의 학교를 평생교육의 마당으로 삼게 된다고 했다. 학부모들은 수업 참관과 수업연구회 참가, 수업모니터링단 구성 등까지 ‘수업 혁신’에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혁신학교를 이끄는 끌차는 교사들이다. 교사들은 ‘배움의 공동체 방식’, ‘주제통합 방식’ 등을 시도하며 수업을 공개한다. 교사들의 열정과 헌신이 학생들과 학부모, 나아가 지역사회로 차츰 전염되는 것이다.

2011년 혁신학교로 첫발을 내디딘 전북 전주우림중은 배움의 공동체 방식을 도입했다. 다달이 한국 배움의공동체연구회 대표인 손우정 박사를 초청해 컨설팅을 받았다. 학생 1명도 수업에서 소외시키지 않겠다는 목표를 걸었다. 장경덕 교사는 “공개수업과 교육과정 워크숍 등으로 솔직히 힘은 들지만, 학생들이 변해가는 걸 보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광주 수완중도 학생들이 서로 활발하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책상을 ‘ㄷ’자형으로 배치하고, 책상을 맞대는 4명 중에는 성적 우수 학생과 부진 학생을 안배해 ‘협업 수업’을 시도해왔다.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2011년 6.32%에서 2012년 2.86%로 줄어든 것도 그 영향이라고 했다. 학교폭력이 2011년 22건에서 2012년 18건으로 줄고 올해는 아직 한 건도 발생하지 않은 데도 영향을 줬다고 말한다. 이운규 교사는 “혁신학교로 지정되자 이른바 ‘노는 아이’들이 몰렸고, 해마다 100명씩 전학오는 바람에 어수선했다. 자율성을 존중하되, 학교폭력에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자 폭력 건수가 줄어든 것 같다”고 전했다.

폐교 위기에 몰렸던 전남 농어촌의 작은 혁신학교인 ‘무지개학교’들은 학생이 다시 불어나 지역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교사들과 주민의 협력으로 순천시 별량면 송산초등학교는 2007년 11명에서 올해 125명으로, 해남군 송지면 송지초교 서정분교장은 2003년 5명에서 올해 79명으로 늘어 폐교 위기를 넘겼다.

임기 동안 혁신학교 100곳을 운영하겠다고 공약한 김승환 전북도교육감은 “혁신학교란 ‘뭔가 뒤집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모든 학교에 혁신의 바람이 일어나면 혁신학교란 용어가 필요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관옥 박임근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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