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압 피한 망명·구직 등 인적사항 담겨
일 주둔 영연방점령군 작성…호주에서 보관
일 주둔 영연방점령군 작성…호주에서 보관
제주4·3사건 당시 일본으로 밀항했던 제주도민들의 인적사항을 구체적으로 기록한 문서가 처음으로 발견됐다.
제주4·3연구소(소장 이규배)는 최근 오스트레일리아 문서기록보관소에 있는 4·3사건 관련 당시 일본 밀입국자 가운데 일부 명단과 제주도 시찰기록, 당시 신문기사 등 관련자료를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 교수로부터 입수했다고 23일 밝혔다.
특히 그동안 제주4·3사건 관련 각종 자료는 미국의 국립문서기록보관소 등에서만 발견됐으나 오스트레일리아 문서기록보관소에서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에 주둔했던 영연방점령군이 1948년 10월25일 작성한 자료에는 밀입국자의 인적사항과 직업, 밀입국 목적 등이 자세하게 기록돼 있다.
이 자료를 보면 48년 6~8월에 일본 에히메현 니시우와군 카와노이시 항구로 들어온 한국인들의 밀입국 건수는 7건으로 전체 290명이며, 이들 가운데 다른 지방 출신이거나 불분명한 경우를 제외한 제주 출신자는 모두 281명으로, 남자는 115명, 여자는 75명이고, 20살 미만의 10대 청소년들과 유아들도 68명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한림 196명 △애월 37명 △대정 25명 △안덕 18명 △제주읍 4명 △중문 1명 △기타 9명 등이다.
이들은 4·3사건 당시 탄압을 피하거나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일본으로 밀입국한 것으로 판단된다.
주일미군이 군정을 담당한 반면, 오스트레일리아, 영국, 인도, 뉴질랜드 등으로 구성된 영연방점령군은 46년부터 52년까지 일본군의 비무장화와 일본 군수산업의 해체를 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입수한 문서 가운데는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회 오스트레일리아 대표가 제주도를 시찰한 뒤 1957년 8월 본국 외무성으로 보낸 문서도 있다. 이 문서에는 “제주도에서 중요한 것은 제헌의회 선거 기간과 그 이후의 48년과 51~55년의 간헐적인 시기로, 정부가 정치 소요와 반란을 진압하기 위한 수단을 채택하였던 것”이라며 “많은 주민들이 게릴라들을 은닉하거나 지원해준 혐의로 사살되었으며, 도민들은 이를 잊지 않고 있고, 잊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기록돼 있다. 이와 함께 이번에 같이 입수한 48년 4월29일치 <뉴욕헤럴드트리뷴>은 “경찰의 야만성이 4·3사건의 주요 원인”이라는 제주도 현지 외국인 신부들의 발언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기사는 또 4·3사건 당시 이른바 ‘4·28 평화협상’이 성사된 다음날인 48년 4월29일 딘 군정장관만이 제주도를 방문한 것이 아니라 미 제6사단장인 워드 소장도 동행했던 사실을 밝히고 있다. 또 이들이 경비행기를 타고 경비대가 마을을 포위해 18살 이상의 모든 남성들을 조사하기 위해 체포하고 있는 중산간지역을 시찰했다고 밝힘으로써 전날의 평화협상 이후에도 미군정과 경비대의 작전이 계속 이뤄졌음을 보여주고 있어 평화협상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제주4·3연구소는 “이번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문서기록보관소에 4·3관련 자료가 있다는 데 대해 놀랐다”며 “당시 유엔 위원단 일원으로 한국에 왔던 캐나다와 영국 등에도 관련자료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이번에 입수한 문서 가운데는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회 오스트레일리아 대표가 제주도를 시찰한 뒤 1957년 8월 본국 외무성으로 보낸 문서도 있다. 이 문서에는 “제주도에서 중요한 것은 제헌의회 선거 기간과 그 이후의 48년과 51~55년의 간헐적인 시기로, 정부가 정치 소요와 반란을 진압하기 위한 수단을 채택하였던 것”이라며 “많은 주민들이 게릴라들을 은닉하거나 지원해준 혐의로 사살되었으며, 도민들은 이를 잊지 않고 있고, 잊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기록돼 있다. 이와 함께 이번에 같이 입수한 48년 4월29일치 <뉴욕헤럴드트리뷴>은 “경찰의 야만성이 4·3사건의 주요 원인”이라는 제주도 현지 외국인 신부들의 발언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기사는 또 4·3사건 당시 이른바 ‘4·28 평화협상’이 성사된 다음날인 48년 4월29일 딘 군정장관만이 제주도를 방문한 것이 아니라 미 제6사단장인 워드 소장도 동행했던 사실을 밝히고 있다. 또 이들이 경비행기를 타고 경비대가 마을을 포위해 18살 이상의 모든 남성들을 조사하기 위해 체포하고 있는 중산간지역을 시찰했다고 밝힘으로써 전날의 평화협상 이후에도 미군정과 경비대의 작전이 계속 이뤄졌음을 보여주고 있어 평화협상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제주4·3연구소는 “이번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문서기록보관소에 4·3관련 자료가 있다는 데 대해 놀랐다”며 “당시 유엔 위원단 일원으로 한국에 왔던 캐나다와 영국 등에도 관련자료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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