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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히말라야 휴머니스트’ 삶과 열정 기억했으면

등록 2013-06-27 19:20수정 2013-06-27 22:09

박명환씨
박명환씨
산악인 ‘윤치원 평전’ 낸 친구 박명환씨
2010년 마나슬루봉서 조난
주검 못 찾고 산에 잠들어
박씨 “미안한 마음 담았다”
“당신의 숭고한 정신을 영원히 기억하며 사람들에게 전하겠습니다. 윤치원은 하얀 산을 꿈꾸며 순백색으로 살다가 구름처럼 흩어졌다고….”

2010년 히말라야 마나슬루봉 등반 도중 조난당한 후배를 구하려다 히말라야에 영원히 잠든 산악인 윤치원씨가 산악인 친구 박명환(44·사진)씨의 <부러진 피켈-영원한 산악인 윤치원 평전>을 통해 우리 곁으로 되돌아왔다.

윤씨는 고등학교 1학년 때인 1985년 경남 진해산악회에 가입하고 같은 해 여름 경남산악연맹 지리산등산학교 하계반 1기로 들어가면서 산악인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는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산악인은 아니지만 2000년 케이2(8611m), 2004년 가셔브롬2봉(8035m), 2007년 에베레스트(8850m), 2008년 로체(8516m), 2009년 마칼루(8463m)와 낭가파르바트(8126m) 등 히말라야의 8000m급 봉우리 6개를 올랐다. 돈과 명예를 추구하지 않고, 조급해하지 않지만 멈추지 않는 그를 두고 동료 산악인들은 ‘히말라야의 휴머니스트’라고 불렀다.

고 윤치원씨
고 윤치원씨
그는 2010년 4월 한국도로공사 마나슬루(8163m) 원정대에 외부대원으로 참가해 해발 8000m까지 진출했으나, 갑작스런 기상난조와 동료대원들의 건강악화로 정상 등정을 포기하고 하산을 시도했다. 하산 도중 원정대의 막내인 박행수씨가 쓰러지자, 그는 다른 대원들을 먼저 내려보내고 혼자서 박씨를 부축해 내려오다 결국 함께 쓰러져 ‘영혼의 산’ 마나슬로에 잠들었다.

그해 5월10일 윤씨의 고향인 경남 진해에서 열린 영결식에는 영정 앞에 그가 신던 등산화가 놓였다. 이 자리에서 윤씨의 친구인 산악인 박명환씨는 “반드시 고향으로 데려와 주겠다”고 약속했다.

2011년 4월 박씨는 윤씨의 주검을 찾기 위해 마나슬로로 향했다. 앞서 3월에 원정대가 떠났으나, 경남도교육청 직원인 그는 두달간의 장기 휴가를 내지 못해 뒤늦게 원정대에 합류했다. 원정대는 4월28일 해발 7600m 지점에서 박행수씨의 주검을 발견했으나, 윤치원씨의 주검은 끝내 찾지 못했다. 결국 박씨는 네팔 카투만두에서 박행수씨의 주검만 화장해 유골함을 안고 귀국했다.

박명환씨는 “친구를 반드시 고향으로 데려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기에, 그 약속을 대신하기 위해 윤치원의 삶과 히말라야에 대한 그의 열정을 담아 산악인 전기를 펴냈다”고 말했다.

창원/최상원 기자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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