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주민자치위원회 위원들이 5일 오후 주민 80가정이 공동 경작하는 아파트단지 뒷산 한새봉 아래 ‘개구리논’에서 활짝 웃고 있다. 광주광역시 제공
[현장 쏙] ‘우리 동네 공동체’ 바람 분다 ① 아파트, 벽을 무너뜨리자
아파트들이 담장으로 둘러싸이더니, 자동문들로 이웃한 건물끼리도 떨어져 간다. 그런데 담벽을 헐어 이웃 단지와, 동네와 소통하려는 이들이 있다. 골목마다, 마을마다 꽃피었던 모둠살이의 정겹던 정경이 되살아날 것인가?
“왜, 담장을 헐려고 하세요?”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도시농부 공동체 ‘한새봉두레’ 사무실에서 지난 5일 오후 만난 주민들에게 불쑥 질문을 던졌다. 일곡지구 20개 아파트단지 사이 담을 일부 허물고 길을 트는 ‘아파트 마실길’ 사업을 광주시와 북구가 이달부터 시작한다는 소식을 듣고서다.
“일곡지구에 공원이 3곳 있는데, 제1근린공원엔 축구장이 있어요. 주민들이 운동을 많이 해요. 찻길 말고 아파트단지 사이로 마실 가는 길을 내자는 것이지요.” 마실이란 마을의 사투리로, 전라도에선 집 밖에 놀러 나갈 때 “마실 간다”고들 한다. 이처럼 택지개발지구 안 20개 아파트단지 사이의 경계를 허물어 보행로를 만드는 것은 드문 일이다.
광주 일곡동 아파트 20개 단지
서로 잇는 ‘마실길’ 조성 시동 환경생태 관심 가진 주민들
도시농사 지으며 마음 모아 “솔직히 이웃 잘 모르잖아요
벽 헐면 소통 더 되지 않을까요” 일곡두레마을 주민협의회 이성진(57) 사무국장은 “마실길이 연결되면 아이들이 등하교할 때, 일곡도서관을 갈 때 멀리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최미옥(45) 아이쿱빛고을생협 이사장은 이사 오기 전 살던 광주 광산구 첨단지구 아파트 5곳의 담장을 튼 뒤 경험을 들려줬다. “큰길로 나가지 않아도 되고, 아이들도 미로 같다며 좋아해요. 마치 숲길을 걷는 느낌이 들어요.” 일곡지구는 1996년 택지개발에 들어가 98년부터 입주하기 시작했다. 아파트단지와 자연마을 등에 1만954가구 3만5000여명이 산다. 아파트단지 주변에 한새봉 등 낮은 산들이 병풍처럼 싸고 있어 경관이 아름답다. 초등학교 4곳, 중학교 5곳, 고등학교 2곳이 있어 교육 여건도 괜찮은 편이다. 토박이인 노향자(60)씨는 “일곡지구에는 모텔도, 전봇대도 없다. 안온한 느낌을 주는 지형도 주민 소통에 한몫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곡지구 아파트 마실길 조성 사업에는 일곡동 ‘아줌마’들의 마을공동체 운동이 큰 힘이 됐다. 주부 20여명이 2009년 한새봉 생태를 보호하자며 모였다. “어떤 식물과 곤충이 사는지를 관찰하러 산을 갔던 어느날이었어요. 누군가가 ‘아, 논이다! 농사 한번 지어보면 재미있지 않을까’ 그래요. 도시농업의 시작이었죠.” 도시농사와 자연체험을 내건 한새봉두레의 박선화(49) 대표의 이야기다. 때마침 논 주인 노현채(78) 어르신이 건강 문제로 혼자서 농사를 짓기 힘들어했다. 어르신의 논 600여평과 문중 논 200평을 빌려 탄생한 것이 ‘개구리논’이다. 처음엔 녹색연합과 푸른광주21 등 환경단체가 농사를 짓고 주민들은 농사 체험을 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다 3년 전부터 월 5000원, 연 6만원을 회비로 낸 80가정과 함께 공동 경작을 해왔다. 이들 가정은 농사체험도 하고, 햅쌀도 맛본다. 박 대표는 “회원들 배당을 뺀 모든 수익은 지역 소외단체를 후원하는 데 쓴다”고 말했다. 농부학교를 열어 도시농부들을 돕고, 최근 밭 1000평에 주민농원도 운영하고 있다. 김성수(49·아파트 자치회장)씨는 “논농사도 함께 짓고 텃밭을 함께 가꾸면서 이웃들과 인맥이 넓어졌다”고 말했다.
일곡지구 주민들을 소통으로 이끄는 또 하나의 무대는 와우마당이다. 동네에서 아이들이 안심하고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어보자고 ‘엄마’들이 제안했다. 지난 3월부터 다달이 한 차례 연다. 재활용 장터를 연다. 안전한 먹거리를 팔고, 공예품도 판다.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어렸을 적 즐겼던 전래놀이도 알려주고 함께 뛰논다. 아이들이나 동호인들이 참여하는 동네 콘서트도 연다. 최근엔 인디밴드나 가수, 국악인도 초청했다.
일곡두레마을 주민협의회는 마실길 사업이 마무리되면 아파트단지 주변 대로변 담을 허무는 사업도 추진할 참이다. 협의회엔 일곡지구 아파트 자치위원회, 시민환경단체 대표, 주민들이 참여하고 있다. 광주시가 지원한 창조마을 사업비 8000만원, 국토교통부의 도시활력 증진지역 개발사업비 5억원을 투입하는 프로젝트다. 아파트 담장을 헐어낸 뒤 목제 데크로 통행로를 단장하고 경사진 곳에는 계단을 만든다는 구상이다. 광주 북구는 9일 주민들을 초청해 처음으로 용역 방안을 공개하고 의견을 모을 예정이다.
“혼자 사는 노인이 갑자기 보이지 않으면 돌아가신 게 거의 맞아요. 아파트에서 친한 사이가 아니면 이웃 노인이 돌아가셔도 잘 모르지요. 아파트의 꽉 막힌 단절을 트고 조금이라도 소통하려는 겁니다.” 일곡두레마을 주민협의회 이성진 사무국장은 “담까지 없어지면 동네가 더 훤해지고 사람들 마음도 더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건축사인 이 국장도 아파트 일엔 관심 없이 지내다가 2010년 자치회장에 선임된 뒤 동네 일에 뛰어들었다. 아파트 내부 관리가 너무나 허술한 것을 보고서 그냥 있을 수는 없었다. “생업에 쫓겨 신경을 못 썼어요. 관리비만 잘 내면 되지, 그렇게 여겼죠. 건축사라는 직업상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 싶은 게 보이잖아요. 아는 범위에서 봉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광주/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우리나라 주택 1487만7000호 가운데 아파트가 867만1000호로 58.3%에 이른다. 연립·다세대주택 등까지 공동주택은 71%나 된다.(통계청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 특히 인천(85.3%), 경기(82.9%), 서울(82.8%) 등 수도권에선 80%를 웃돈다.
비좁은 국토에 급속한 도시화, 부동산 개발 열풍, ‘내 집 소유’ 욕망이 빚어낸 모습이다. 주변과 떨어져(apart) 사생활을 누리는 편리함은 고독과 단절을 수반한다. 이웃 얼굴도 모른 채 아파트 관리비만 내고서 지내는 이들이 태반이다. 층간소음, 관리비를 둘러싼 갈등이 격렬하게 표출되곤 한다.
그러나 동시에, 아파트 등 공동주택을 더는 삭막한 콘크리트 건물이 아니라 사람의 온기가 감도는 공동체로 바꾸려는 실험들이 꾸준히 시도돼왔다. 아파트 담장을 헐어 길을 내고, 옥상에 텃밭을 가꾸고, 동네 축제도 열고, 작은도서관·카페도 함께 운영하고, 마을신문·잡지도 펴내고, 누리집도 열고…. 아파트 모둠살이, 마을공동체에 쏟는 관심이 폭발하는 양상이다. 재산 증식 수단보다는 공동주거 공간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는 것 같다. 부동산 경기 침체 여파로 지나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한겨레>가 아파트와 마을을 공동체로 가꾸려는 전국 곳곳의 현장을 찾아갔다.
서로 잇는 ‘마실길’ 조성 시동 환경생태 관심 가진 주민들
도시농사 지으며 마음 모아 “솔직히 이웃 잘 모르잖아요
벽 헐면 소통 더 되지 않을까요” 일곡두레마을 주민협의회 이성진(57) 사무국장은 “마실길이 연결되면 아이들이 등하교할 때, 일곡도서관을 갈 때 멀리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최미옥(45) 아이쿱빛고을생협 이사장은 이사 오기 전 살던 광주 광산구 첨단지구 아파트 5곳의 담장을 튼 뒤 경험을 들려줬다. “큰길로 나가지 않아도 되고, 아이들도 미로 같다며 좋아해요. 마치 숲길을 걷는 느낌이 들어요.” 일곡지구는 1996년 택지개발에 들어가 98년부터 입주하기 시작했다. 아파트단지와 자연마을 등에 1만954가구 3만5000여명이 산다. 아파트단지 주변에 한새봉 등 낮은 산들이 병풍처럼 싸고 있어 경관이 아름답다. 초등학교 4곳, 중학교 5곳, 고등학교 2곳이 있어 교육 여건도 괜찮은 편이다. 토박이인 노향자(60)씨는 “일곡지구에는 모텔도, 전봇대도 없다. 안온한 느낌을 주는 지형도 주민 소통에 한몫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곡지구 아파트 마실길 조성 사업에는 일곡동 ‘아줌마’들의 마을공동체 운동이 큰 힘이 됐다. 주부 20여명이 2009년 한새봉 생태를 보호하자며 모였다. “어떤 식물과 곤충이 사는지를 관찰하러 산을 갔던 어느날이었어요. 누군가가 ‘아, 논이다! 농사 한번 지어보면 재미있지 않을까’ 그래요. 도시농업의 시작이었죠.” 도시농사와 자연체험을 내건 한새봉두레의 박선화(49) 대표의 이야기다. 때마침 논 주인 노현채(78) 어르신이 건강 문제로 혼자서 농사를 짓기 힘들어했다. 어르신의 논 600여평과 문중 논 200평을 빌려 탄생한 것이 ‘개구리논’이다. 처음엔 녹색연합과 푸른광주21 등 환경단체가 농사를 짓고 주민들은 농사 체험을 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다 3년 전부터 월 5000원, 연 6만원을 회비로 낸 80가정과 함께 공동 경작을 해왔다. 이들 가정은 농사체험도 하고, 햅쌀도 맛본다. 박 대표는 “회원들 배당을 뺀 모든 수익은 지역 소외단체를 후원하는 데 쓴다”고 말했다. 농부학교를 열어 도시농부들을 돕고, 최근 밭 1000평에 주민농원도 운영하고 있다. 김성수(49·아파트 자치회장)씨는 “논농사도 함께 짓고 텃밭을 함께 가꾸면서 이웃들과 인맥이 넓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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