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대전 평화아파트 옥상 텃밭에서 김갑수(오른쪽)씨가 김남만씨가 준 상추를 맛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현장 쏙] ‘우리 동네 공동체’ 바람 분다 ③ 늘어나는 커뮤니티 공간
주민들 오손도손 모여 ‘원두막좌담’
농사비법 나누고 가족안부 물으며
고향 동네처럼 훈훈한 이웃사이 돼 텃밭은 제비뽑기를 해 임자를 정했다. 텃밭 하나당 월 800원씩 물값을 낸다. 흙상자에선 고추, 상추, 부추, 쪽파, 가지가 자란다. 호박과 옥수수, 고구마 줄기도 보인다. 바람도 선선해 얼추 가을 풍경이다. 아파트 주민자치회장인 김남만씨의 텃밭에선 하얀 꽃이 소금 뿌린 것 같은 메밀이 자란다. “강릉에서 태어나 영월에서 자랐어요. 고향에 지천이던 메밀을 심었죠.” 그는 “나이가 들면서 고향 생각이 많이 난다. 바람에 하늘거리는 메밀꽃을 바라보면 다른 걱정도 잊는다”며 메밀꽃을 쓰다듬었다. “큰아빠 오셨어요?” 아파트 부녀회장 박상미(49)씨가 김갑수씨에게 인사말을 건넸다. 상추 따 겉절이하려고 들른 참이었다. 주부들은 채소를 키운다. 박씨는 옥상 텃밭에 반대한 몇 안 되는 주민 가운데 한명이다. 좋은 줄은 알지만, 물이 새거나 아파트 뼈대가 흙 무게를 못 이겨 금이라도 갈까 싶어서였다. “지금은 걱정 안 해요. 텃밭 생기고 주민들 사이가 얼마나 좋아졌게요. 이웃과 나눠 먹고, 그래도 남아서 삼겹살 파티를 한다니까요.” “엄마 빨리 와.” 이초롱(31)씨 손을 끌고 올라온 강민찬(7)·서윤(5) 남매가 재촉하더니, 익숙하게 텃밭에 물을 주었다. 이씨는 먹는 재미보다 기르는 재미가 더 좋다고 했다. “우리 가족이 아파트 주민 중 막내일 거예요. 옥상에 올라오면 어르신들이 아이들도 예뻐해주시고 반겨주셔서 친정 동네에 온 거 같아요.” 4층 동건이 할머니가 옆 8층 텃밭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파가 좋죠? 농사 박사님이라 뭘 심어도 잘돼요.” 이내 텃밭 주인 김완기(67)씨가 “집사람이 하도 보채서 저녁밥도 안 먹고 올라왔다”고 맞장구쳤다. 원두막에 앉은 그는 신바람 농사 강의를 했다. “이거 때문에 안 하던 인터넷도 하잖아. 어제 본 건데 계피 담근 식초를 물에 타서 뿌리면 진드기가 안 붙는다네.” 비법 강의가 이어졌다. “옥상은 지상과 달라요. 바람도 세고 햇빛도 강한데다 상자에서 키우니 고구마나 무 같은 뿌리식물은 키우기 어려워요. 나 봐. 먼저 장뇌삼 심었다가 다 죽었잖아.” 여기저기서 ‘킥킥’ 웃음이 터졌다. 주민들은 이야기꽃을 활짝 피웠다. 원두막 좌담은 두달 뒤 생겨난 새 풍속도다. 옥상 텃밭이 가져다준 선물은 이뿐만이 아니다. 토박이 주민들은 아파트가 지어진 지 17년 동안 지금처럼 오순도순 지내는 건 처음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눈인사 정도에 그치던 주민들은 “잘 키웠네” 칭찬 한마디에 어깨가 으쓱해져 형님, 동생 사이가 됐다. 먹을거리를 나누고 아이들이 이웃 아저씨, 할머니에게 놀러 다닌다. 어르신들은 연륜과 경험을 알려주니 젊은 세대가 어르신 대하는 태도도 바뀌었다. 어르신들에게 옥상 텃밭은 산책길이자 운동길이기도 하다. “그동안 일부러 친해지려고 해도 잘 안됐는데 텃밭의 힘은 정말 무궁무진한 것 같아요.” 부녀회장 박씨의 말이다. 회의 열면 15명 모일까 말까 했는데, 텃밭 생긴 뒤에는 40~50명씩 모인단다. 올여름에 단합대회 명목으로 삼겹살 파티도 두 차례나 했단다. 내년 봄에는 아욱 같은 국거리, 나물거리를 심기로 했다. 자매결연을 한 대전 유성구 송정동 선창마을(농촌체험마을)에 가서 나물 잘 키우는 방법을 배우고 퇴비도 얻어올 계획이다. 11월 선창마을에서 주민 공동 김장을 할 때는 올해 첫 텃밭 농사를 자축하는 잔치도 열 참이다. 대전/글·사진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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