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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작업중 지진 나 쇠창살에 찔릴뻔 하기도…”

등록 2013-10-04 21:08

일본 근로정신대 할머니들 ‘눈물의 법정’
강제 노동의 실상 광복 68년만에 증언
“가지 않으면 부모님 가만두지 않겠다” 겁박
일제강점기 징용 피해를 당한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이 강제 노동의 실상을 광복 68년 만에 법정에서 증언했다.

광주지법 제12민사부(재판장 이종광)는 4일 근로정신대 피해 당사자들과 유족 등 5명이 일본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각각 2억원씩을 요구한 손해배창 청구소송의 4차 공판을 열었다.

이날 양금덕(85) 할머니 등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은 어린 시절 일본으로 끌려가 가혹한 노동과 폭행에 시달렸던 사실을 직접 공개했다.

양 할머니는 “돈도 주고 중학교에 보내주겠다”는 일본인 교장과 헌병의 말에 속아 일본 나고야 미쓰비시중공업 항공기제작소에서 일했지만 68년이 지났어도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울먹였다. 이어 ”일본에 가지 않으면 부모님을 가만두지 않겠다는 말에 겁을 먹고 끌려가 비행기 외부에 페인트칠을 하는 일을 맡았다“며 ”페인트의 독성으로 지금까지도 눈이 불편하다“고 했다. 또 ”공장에서 주는 반찬이라고는 된장국와 매실장아찌, 단무지가 전부였다“며 ”작업 중 지진이 나 쇠창살이 몸을 뚫고 들어가면서 죽을 뻔 하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양 할머니는 1944년 5월30일 전남 나주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다가 일본으로 끌려가 1945년 10월20일에야 고국으로 돌아왔다.

양 할머니는 일본인 교장과 헌병의 강요와 협박에 어쩔 수 없이 일본에 가게 된 사정, 일본에서의 참혹한 생활,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현재까지의 과정 등을 한맺힌 목소리로 이어갔다.

특히 고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일본군 위안부로 오해받아 자신은 물론 부모와 형제, 자녀들까지 심각한 고통에 시달린 사정을 토로했다. 일본에서 일을 하고 왔다는 이유만으로 남편이 자신을 떠난 슬픈 사연도 전했다.

양 할머니 등 피해자 쪽의 본인 신문이 이어지는 동안 일본에서 온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의 일본인들과 청소년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재판을 지켜봤다. 방청객들 일부는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재판부도 특별한 증언에 나선 할머니들을 배려해 심리를 진행하기 전에 이례적으로 언론의 사진 촬영을 허락하기도 했다.

광주/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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