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와 ㈜희망하우징 등이 쪽방촌 주거환경 개선 사업에 나선 가운데 5일 작업자들이 영등포역 앞 골목길 쪽방촌의 비좁은 방을 새로 도배하고 장판도 교체하며 단장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서울시 제공
영등포 쪽방촌은 지금 단장중
서울 영등포역 앞 ‘쪽방촌’ 비좁은 쪽방들이 ‘대변신’ 중이다. 이곳은 서민들의 열악한 주거공간을 상징한다. 주민들을 밀어내지 않고 설득과 동의를 바탕으로 바꿔가고 있다는데, 도심 주거환경 개선의 새 모델이 될 수 있을까?
서울의 대표적 쪽방 밀집지역인 영등포 쪽방촌. 지난 2일 오후 지하철 1호선 영등포역 6번 출구를 나와 몇 걸음 옮기자, 가을 햇살을 쬐며 길 위에 잠들어 있는 노숙자들이 눈에 띄었다. 쪽방촌에서도 밀려났을까, 아니면 쪽방촌의 ‘예비 주민’일까? 주변은 대규모 쇼핑몰·백화점이 늘어서 빌딩 숲을 이뤘는데, 쪽방촌 일대는 시계가 멈춘 듯 1960~70년대 풍경처럼 허름한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이곳에 500여 주민들이 한 명 누우면 꽉 찰 법한 5㎡(1.5평) 안팎 쪽방들에서 산다.
쪽방촌 골목 안에 들어서니 누군가 움직이고 있었다. 서울시가 지난해 초부터 이곳 441개 쪽방 가운데 295개에 대해 ‘주거 재생 사업’을 벌이고 있다. 낡은 건물을 죄다 밀어버리고 아파트 등을 짓는 개발 방식이 아니라, 주민들의 동의를 바탕으로 사람이 살 만한 공간으로 되살려내는 사업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1년 10월27일 취임 첫날 찾아가 “취약지역 거주자의 주거 안전을 최우선으로 챙기겠다”고 말했던 곳이 바로 여기다.
쪽방촌 주거 개선은 산 넘어 산이었다. 무허가 건축물이어서 도면이 남아 있을 까닭이 없다. 현장 실측조사를 통해 임시 도면을 만들었지만 공사 도중 거듭 도면을 고쳐야 했다. 한 건물에선 슬레이트 지붕 등에서 법적 기준치를 초과하는 석면이 발견돼 철거해야 했다. 기울어진 벽을 보강하느라 공사가 늦어지기도 했다.
사업 모든 과정에 서울시와 영등포구, 에스에이치(SH)공사, 공공건축가, 쪽방상담소, 사회적 기업 ㈜희망하우징, 서울주거복지사업단 등이 힘을 모았다. 수요일마다 현지에 마련한 사랑방에서 리모델링 추진 상황과 현안을 점검하는 현장회의를 78차례 열면서 실타래처럼 얽힌 문제를 풀어왔다. 희망하우징은 리모델링 일자리를 만들어 주민들의 자활을 도왔다. 도배, 장판 교체, 이사에 쪽방 주민들을 참여시켰다.
도배·난방·소방시설 교체 등
쪽방 295개 ‘주거개선사업’ 진행 건물주·세입자 등 조정 어려움
공사 동의 얻으려 지방 출장도
주민들 공사 참여 ‘일자리 창출’
재단장 뒤엔 다시 살던 집으로 정돈된 전기선·깨끗해진 화장실
“쪽방생활 24년, 이런 환경 처음” 프랑스 건축사 출신으로 재능기부를 통해 설계도면을 만들며 전체 공정을 이끌어온 한영근(50) 영등포 쪽방촌 리모델링 사업 추진단장은 “지난해 이곳을 돌아보고서 대한민국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고 말했다. 리모델링 동안 주민들이 머물 임시 거주 시설도 마련해야 했다. 영등포 고가도로 아래에 컨테이너 20개를 쌓아 방 36개, 샤워실, 공동주방 등을 갖췄다. 주민들이 얘기하고 쉴 수 있는 사랑방도 들였다. 쪽방 주민들은 방을 고치는 동안 이곳에 옮겨와 두세 달 지낸다. 가장 어려웠던 숙제는 건물주, 관리인, 세입자(쪽방 주민)들의 서로 다른 요구를 조정하고 설득해 동의를 얻어내는 일이었다. 영등포 쪽방촌에선 대개 한 건물에 2.5~5㎡ 크기 쪽방이 5~10개 있으며, 건물주는 관리인을 두고 쪽방을 관리한다. 건물주는 관리인한테서 임대료를 받아가고, 관리인은 세입자한테서 20만원 안팎 월세를 거둬가는 ‘이중 임대차 구조’여서 이해관계가 서로 엇갈린다. 건물주들은 주거 개선보다 재개발에 촉각을 기울이고, 세입자들은 주거 개선을 원하면서도 임대료가 오르지 않을까 불안해한다. 서울시는 건물주한테 ‘건물을 수리한 뒤 5년 동안은 임대료를 올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서 공사를 벌였다. 건물주들의 동의를 끌어내는 일은 김형옥(43) 영등포쪽방촌 상담소장이 맡았다. 그는 건물 주인을 만나러 대전까지도 갔다. 부산·대구·광주 등에 사는 건물주들은 올라올 때 만나 동의를 구했다. 건물주가 끝내 동의하지 않은 건물 2채는 결국 공사를 시작하지 못했다. 임대료가 오르거나 쫓겨날까 걱정하는 쪽방 주민들의 불안감을 달래는 데도 그가 나섰다. 그는 “쪽방촌 사람들이 협력해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며 공을 주민들에게 돌렸다. 1년6개월 남짓 진행된 사업에 쪽방 주민들은 대체로 만족감을 나타냈다. 이곳에서 24년째 산다는 이아무개(79) 할아버지는 “생활공간이 깨끗해지고 화장실도 나아졌다. 이만큼이라도 고쳐진 건 24년 만에 처음”이라고 말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이아무개(57)씨는 “거미줄처럼 얼기설기 엉켜 있던 전기선이 가지런해졌다. 외벽 방수로 습기도 줄었다”며 반겼다. 그는 “술 먹는 사람들도 좀 줄어든 것 같다. 예전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119차량과 경찰이 오는 등 난장판이었는데, 동네가 좀 조용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건물 안쪽에 바람이 통하지 않고 햇볕도 들지 않는 ‘먹방’에 사는 신아무개(40)씨는 “한뼘 크기 창문이라도 달아줬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강아무개(56)씨는 “여닫이문과 벽의 틈이 벌어져 있어, 찬 바람 부는 겨울이 걱정”이라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착공한 4층 건물 95개 쪽방의 리모델링이 올해 1월 마무리됐고, 지난 7월까지 36개 방을 더 고쳤다. 이달 중순엔 63개 방이 말끔하게 단장된다. 쪽방촌 리모델링 공사는 법규와 예산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바깥 구조물보다 내부 수리에 집중했다. 도배를 새로 하고 장판, 창호, 문을 바꿨다. 공동화장실과 공동부엌도 손질했다. 난방·단열·방수도 보완했다. 화재에 대비해 소방·전기 시설도 교체했다. 시가 들인 예산은 11억8000만원이다. 한영근 추진단장은 공사 현장을 가리키며 “이 사업의 의미는 단순히 저 건물을 고쳤다는 게 아니라 주민들의 생활권을 유지하면서 주거환경을 개선할 방법을 제시했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정태우 기자 windage3@hani.co.kr
재입주 보장안해서
개선사업뒤 쫓겨나기도 중구·용산구 등에 3200명 거주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 뒤인 지난해 12월25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 쪽방촌을 찾아가 직접 만든 도시락을 홀몸 노인들에게 건넸다. 선거철이면 쪽방촌이 술렁인다. 후보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민생 행보의 상징으로서, 이른바 사진 찍기 좋은 장소다. 그러나 선거철이 지나면 쪽방촌의 열악한 주거환경은 그대로 남는다.
서울시내 쪽방 밀집지역은 종로구, 중구, 용산구, 영등포구 등 4개 구에 있다. 큰 구역으로 나눠보면 돈의동, 창신동, 남대문경찰서 뒤, 동자동, 영등포역 주변 등 5곳에 3200명가량이 산다. 기초생활수급자는 1396명이고, 장애인은 586명, 65살 이상 홀몸 노인은 766명으로 추정된다.
2.5~5㎡ 쪽방에 사는 기초생활수급자는 매달 46만8000원을 정부에서 받아 20만원 안팎을 임대료로 낸다. 영등포역 근처 109㎡ 규모 아파트 전셋값은 3억3000만원 선이다. 전셋값을 월세(전환 이자율 10% 적용)로 계산해 견줘보면, 주거환경은 훨씬 더 열악한데도 단위면적당 임대료는 쪽방이 더 비싼 셈이다.
쪽방촌의 주거환경 개선 사업은 지방정부의 ‘예산과 관심의 부족’ 말고도 재개발을 기다리는 건물주의 비협조가 겹쳐 풀어내기가 만만치 않다. 쪽방촌 주거환경을 개선하겠다며 벌인 일이 되레 주민들을 떠나게 하는 결과를 낼 수 있다. 지난 6월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리모델링 사업은 쪽방 주민들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 미흡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창현 동자동사랑방 대표는 “건물 2곳을 리모델링했는데, 원래 살던 주민의 재입주를 제대로 보장하지 않았다. 쫓겨나듯 떠난 10여가구는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정태우 기자 windage3@hani.co.kr
서울 영등포역 앞 쪽방촌에 주거환경 개선 사업을 벌이기 이전의 한 쪽방 내부 모습.(위) 주거환경 개선 사업 뒤 말끔하게 변모한 쪽방 모습.(아래)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서울시 제공
쪽방 295개 ‘주거개선사업’ 진행 건물주·세입자 등 조정 어려움
공사 동의 얻으려 지방 출장도
주민들 공사 참여 ‘일자리 창출’
재단장 뒤엔 다시 살던 집으로 정돈된 전기선·깨끗해진 화장실
“쪽방생활 24년, 이런 환경 처음” 프랑스 건축사 출신으로 재능기부를 통해 설계도면을 만들며 전체 공정을 이끌어온 한영근(50) 영등포 쪽방촌 리모델링 사업 추진단장은 “지난해 이곳을 돌아보고서 대한민국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고 말했다. 리모델링 동안 주민들이 머물 임시 거주 시설도 마련해야 했다. 영등포 고가도로 아래에 컨테이너 20개를 쌓아 방 36개, 샤워실, 공동주방 등을 갖췄다. 주민들이 얘기하고 쉴 수 있는 사랑방도 들였다. 쪽방 주민들은 방을 고치는 동안 이곳에 옮겨와 두세 달 지낸다. 가장 어려웠던 숙제는 건물주, 관리인, 세입자(쪽방 주민)들의 서로 다른 요구를 조정하고 설득해 동의를 얻어내는 일이었다. 영등포 쪽방촌에선 대개 한 건물에 2.5~5㎡ 크기 쪽방이 5~10개 있으며, 건물주는 관리인을 두고 쪽방을 관리한다. 건물주는 관리인한테서 임대료를 받아가고, 관리인은 세입자한테서 20만원 안팎 월세를 거둬가는 ‘이중 임대차 구조’여서 이해관계가 서로 엇갈린다. 건물주들은 주거 개선보다 재개발에 촉각을 기울이고, 세입자들은 주거 개선을 원하면서도 임대료가 오르지 않을까 불안해한다. 서울시는 건물주한테 ‘건물을 수리한 뒤 5년 동안은 임대료를 올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서 공사를 벌였다. 건물주들의 동의를 끌어내는 일은 김형옥(43) 영등포쪽방촌 상담소장이 맡았다. 그는 건물 주인을 만나러 대전까지도 갔다. 부산·대구·광주 등에 사는 건물주들은 올라올 때 만나 동의를 구했다. 건물주가 끝내 동의하지 않은 건물 2채는 결국 공사를 시작하지 못했다. 임대료가 오르거나 쫓겨날까 걱정하는 쪽방 주민들의 불안감을 달래는 데도 그가 나섰다. 그는 “쪽방촌 사람들이 협력해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며 공을 주민들에게 돌렸다. 1년6개월 남짓 진행된 사업에 쪽방 주민들은 대체로 만족감을 나타냈다. 이곳에서 24년째 산다는 이아무개(79) 할아버지는 “생활공간이 깨끗해지고 화장실도 나아졌다. 이만큼이라도 고쳐진 건 24년 만에 처음”이라고 말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이아무개(57)씨는 “거미줄처럼 얼기설기 엉켜 있던 전기선이 가지런해졌다. 외벽 방수로 습기도 줄었다”며 반겼다. 그는 “술 먹는 사람들도 좀 줄어든 것 같다. 예전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119차량과 경찰이 오는 등 난장판이었는데, 동네가 좀 조용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건물 안쪽에 바람이 통하지 않고 햇볕도 들지 않는 ‘먹방’에 사는 신아무개(40)씨는 “한뼘 크기 창문이라도 달아줬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강아무개(56)씨는 “여닫이문과 벽의 틈이 벌어져 있어, 찬 바람 부는 겨울이 걱정”이라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착공한 4층 건물 95개 쪽방의 리모델링이 올해 1월 마무리됐고, 지난 7월까지 36개 방을 더 고쳤다. 이달 중순엔 63개 방이 말끔하게 단장된다. 쪽방촌 리모델링 공사는 법규와 예산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바깥 구조물보다 내부 수리에 집중했다. 도배를 새로 하고 장판, 창호, 문을 바꿨다. 공동화장실과 공동부엌도 손질했다. 난방·단열·방수도 보완했다. 화재에 대비해 소방·전기 시설도 교체했다. 시가 들인 예산은 11억8000만원이다. 한영근 추진단장은 공사 현장을 가리키며 “이 사업의 의미는 단순히 저 건물을 고쳤다는 게 아니라 주민들의 생활권을 유지하면서 주거환경을 개선할 방법을 제시했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정태우 기자 windage3@hani.co.kr
재입주 보장안해서
개선사업뒤 쫓겨나기도 중구·용산구 등에 3200명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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