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마당
가을 풍경은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황금물결 들녘을 봐도, 꽃 같은 가을 단풍을 봐도 눈물이 납니다. 저는 7월18일 충남 태안 사설 해병대 캠프 참사로 세상을 떠난 공주사대부고 이병학의 아버지입니다. 꼭 100일 전 다섯 아이가 떠났지만 유족들은 여전히 아픕니다. 무엇 하나 바람대로 된 게 없어 비통한 심경으로 호소합니다.
먼저 제대로 다시 수사해야 합니다. 해경은 사고의 직접적 사실관계만 수사했고, 검찰은 태안군과 해경 등 사고 유발자들에게 면죄부를 줬습니다. 법원은 엉뚱하게도 이번 참사를 공사장에 적용되는 법(원청과 하청의 책임) 판례로 해석해 캠프의 실제 운영 주체인 안면도 해양유스호스텔에 업무 정지 2개월, 대표는 무혐의 처분했습니다. 법이 이러니 어쩔 수 없다고 합니다. 유족들은 대통령과 대검찰청에 사고 원인을 밝힐 현장검증과 재수사, 정부 차원의 예방 대책을 요구했지만 아직도 대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자식이 죽어도 ‘유전무죄 무전유죄’인가요?
또 교육부가 주도한 사고대책본부는 ‘해준다’는 약속만 하고 이를 지키지 않아 유족들을 두번 울립니다. 사고 뒤 재발을 방지하겠다며 내놓은 대책은 형식적입니다. 태안군청의 부당한 행정은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태안군은 공유수면 점·사용 허가와 캠프 숙소인 청소년 수련시설 및 여관의 인허가 기관입니다. 허가 뒤 관리·감독을 소홀히 해 사고를 막지 못했습니다. 인허가 과정에 의혹도 제기되지만 태안군은 문제 될 게 없다며 유족들의 항의방문을 귀찮아 합니다.
태안해경의 미숙한 업무는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입니다. 사고에 앞서 현장점검 시 공유수면 점·사용 허가의 조건인 계류장을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고 엉터리 해석을 했습니다. 계류장이 있었다면 육지와 연결돼 있고 구조용 장비들이 갖춰져 아이들을 구할 수 있었을 겁니다. 공주사대부고 동창회의 태도 또한 참을 수 없는 고통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학교 활동에 참여했다가 변을 당했습니다. 동창회 쪽은 “동문의 온정을 모아 유족에게 전달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이들이 (졸업하지 않아) 동문이 아니므로 약속을 지키기 어렵다고 합니다. 가슴이 베인 듯 쓰라립니다.
태안 참사는 박근혜 정부가 안전한 나라를 만든다며 안전행정부를 출범시킨 직후 발생했습니다. 치명적인 인재였지요. 그런데 기관들은 다시 이런 비극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유족들의 요구를 ‘이유 없다’고 묵살합니다. 이것이 국민의 안전을 지킨다는 대한민국의 현실인가요?
태안 참사의 피해자는 모든 학부모입니다.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언제든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사고이기 때문입니다. 사고의 간접적인 원인을 바로잡아야 위험 요인이 줄어듭니다. 이는 당연히 국가의 의무입니다.
태안 참사로 희생된 다섯 아이의 유족들은 이런 비극은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정부와 관계 기관에 요구합니다. 진상을 규명해 관련자를 처벌하고 대책을 세워 비극을 막아주십시오. ‘안전교육헌장’을 제정해 아이들 묘지 앞에 추모비와 함께 세워 아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해주십시오. 유족들이 일상으로 돌아가 아픔을 묻고 살아가도록 힘을 모아주세요. 다섯 아이의 명복을 빌며.
이후식(충남 태안 사설 해병대 캠프 참사 유가족)
<한겨레>는 매주 한 차례 지역의 주요 의제를 다룬 기고를 싣습니다. igsong@hani.co.kr
이후식(충남 태안 사설 해병대 캠프 참사 유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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