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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힙합 배우고 드럼 연습…입시 아닌 꿈 향해 달려요

등록 2013-11-24 20:27

전남 곡성 공립 대안고등학교인 한울고 학생들이 지난 7월 본관동 3층 세미나실 벽에 달과 별을 따는 광경을 묘사한 실내벽화를 완성한 뒤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한울고 제공
전남 곡성 공립 대안고등학교인 한울고 학생들이 지난 7월 본관동 3층 세미나실 벽에 달과 별을 따는 광경을 묘사한 실내벽화를 완성한 뒤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한울고 제공
[호남 쏙] ‘개교 2년’ 공립 대안학교 한울고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2%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들에게 길을 열어줄 대안교육은 사립학교의 영역처럼 여겨져왔다. 전남 영광 영산성지고, 담양 한빛고, 전북 완주 세인고, 무주 푸른꿈고, 김제 지평선고…. 공립인 곡성 한울고가 합류해 개교 2년째를 지나고 있다.

친구들과 함께 노래를 배우던 정우정(18·2년)양은 3년 전 전교생 1200명인 여고에서 자퇴했다. “똑같이 행동하고 하나뿐인 길로 가는 게 너무도 힘들었어요. 생각은 해도 행동하지 못하는 일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여기선 생각을 곧바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고 했다. 건축가를 꿈꾸는 정양은 “판에 박은 집 말고,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창의적인 집을 지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1학년 때만 해도 뒤로만 숨던 정양은 개성 있고 적극적인 친구들을 만나면서 행동파로 바뀌었다. 신문 기사를 읽고서 홍익대 교수인 이탈리아 건축가 시모네 카레나를 만나러 서울로 찾아갈 만큼 달라졌다. 영어 공부에도 정성을 들인다. 지난 8월엔 부산해양박물관이 연 영어 말하기 대회에서 입상도 했다. “목표와 방향을 정하면 이 학교에서 얻을 게 많아요.”

황인철(18·2년)군은 기숙사 방에서 이어폰을 꽂은 채 리듬을 타고 있었다. 황군은 하루 세 시간씩 드럼을 연습한다. 다른 학교 같으면 엄두도 내지 못하겠지만, 이 학교에선 좋아하는 일에 몰두할 수 있다. 황군은 올해 곡성군과 전남대가 연 음악제에서 잇따라 수상하자 드럼으로 인생을 개척하겠다는 마음을 굳혔다고 했다.

인권활동가를 지망하는 주영택(18·2년)군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토론한다. 활동 무대를 제한하지 않고 전국의 회원들과 소통한다. 인권활동을 잘하려고 컴퓨터 실력과 동영상 만들기를 전문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학교 기계가 고장나면 척척 고쳐낼 정도에 이르면서 ‘공익요원’, ‘주사님’이라는 유쾌한 별명도 얻었다.

이날 저녁 급식실에서 만난 학생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밝았다. 행동과 차림새가 자유로웠고, 교사들에게도 의견을 거리낌 없이 표현했다. 식사를 마친 학생들은 저마다 좋아하는 일들을 찾아 체육관, 생활관, 도서관 등지로 흩어졌다. 당구장에 모여 솜씨를 겨루는가 하면, 체육관에서 탁구·배드민턴으로 땀을 흘리기도 했다. 외부 강사한테 홀로 클래식 기타를 배우는 학생도 보였다.

공립 대안학교인 한울고의 설립은 장만채 전남도교육감이 해마다 학교에서 중도탈락하는 전남지역 고교생이 전체의 2%인 1500명에 이르는 상황을 타개하겠다며 공약사업으로 추진했다. 학업을 중도에서 포기하거나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학생들을 교육하는 공간으로 만든 것이다. 중도탈락 학생들이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성장하도록 지원하고, 학교폭력 등 위기가 발생한 학교의 숨통을 열어주는 양면의 기능을 하도록 설계됐다.

전남 첫 인성중심 특성화고
중도탈락·부적응 학생 품어
공동체교육·체험 위주 수업

소통 중시하는 자율적 환경속
학생들 스스로 자기계발 나서

전남도교육청은 2005년 폐교된 옛 목사동중 터에 125억원을 들여 기숙사·체육관 등 시설을 갖췄다. 설립 2년째를 맞은 한울고엔 6개 학급에 학생 100명이 다닌다. 교직원은 30명인데, 상담 인력이 다른 학교보다 많은 4명이다. 한 해 운영비는 10억원 안팎이다. 교장은 공모를 통해, 교사는 희망자를 뽑았다. 1~2학년 학생 76명이 일반학급에, 원래 학교로 돌아갈 24명이 가변학급에 편성됐다. 학생들은 모두 기숙사에서 지낸다.

이종태 한울고 교장은 “천편일률적인 대학입시 준비에서 벗어나 일반교과 50%, 자율교과 50%로 체험과 인성 위주의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자율교과는 제빵·미용 등 직업 가운데 하나, 음악·영화 등 예술 가운데 하나에다 지속적이고 주도적으로 관심을 갖도록 짜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학생들이 존중·감사·나눔·협력의 가치를 배울 수 있는 ‘마음일기’ 쓰기, ‘한울 가족 회의’, 또래조정 활동 같은 프로그램으로 공동체 문화를 가꿔가고 있다. 현장체험과 개별상담을 통해 세상과 역사는 어떠하고 자신은 누구인가를 살피는 기회를 주려 한다고 했다.

하지만 가정환경과 성장 배경, 학력 수준과 생활태도가 천차만별인 학생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목표에 이르기가 무척 어렵다고 했다. 선휘성 교무기획 부장교사는 “교과수업 참여가 저조하고 전자기기 사용도 허용하고 있어, 종종 힘들다”고 말했다. 교사 1명이 학생 5명과 경험을 공유하는 ‘이끔이-따름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겉돌거나 자퇴·전학하는 학생도 있다. 개교 첫해인 지난해엔 18명이, 올해는 12명이 학교를 중도에 떠났다. 그래도 선 부장교사는 “1학년 때는 천방지축이지만 2학년이 되면 훌쩍 성장하고 많이 달라져서 학교에 정착하기 때문에 조급해하지 않고 기다린다”고 말했다.

학부모들 가운데 체험과 인성 위주의 대안교육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어가고 있다고 학교 쪽은 전했다. 이 학교에 형제나 남매를 나란히 입학시키는 학부모도 있다. 2학년생 영택군의 아버지 주경진씨는 “올해 중학교를 졸업할 동생이 ‘형이랑 다니겠다’며 이 학교에 원서를 냈다. 틀에 짜인 길이 아닌 길을 걷겠다고 스스로 선택했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은숙 상담교사는 “대부분의 학교가 입시라는 좁은 길로 아이들을 몰아가니까 자살자가 생기고 부적응이 속출한다. 사방이 꽉 막혀 힘들어하는 학생들한테는 이 학교가 한줄기 빛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가변학급 운영을 두고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 기도서 전남도의회 의원은 “위탁교육 기간이 들쭉날쭉하고 1~2학년밖에 없는데 3학년생이 교육받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 대처할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는가? 격리가 아니라 교육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학교를 중도탈락 학생이나 학교폭력 관련 학생들이 모인 곳처럼 바라보는 잘못된 눈길도 걸림돌이다. 장경미 한울고 교감은 “학교 부적응은 입시교육이나 교육과정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 경우도 많은데, 재학생들을 학교폭력에 연루된 학생들로만 보는 편견이 퍼져 있다. 흔들리며 피는 꽃들을 애정을 갖고 지켜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선입견이 학교 이미지에 영향을 준 탓에 신입생 수는 2012년 28명, 올해 36명으로 정원 40명을 채우지 못했다. 설립 추진 과정에서는 지역 주민들 사이에 반대 여론이 돌기도 했다.

정미자 전남도교육청 대안교육 담당은 “대명고와 태봉고도 초기엔 이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다. 대안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나름의 학교문화가 정착되면 외부의 인식도 차츰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어둠이 깃든 학교를 돌아본 뒤 교사들과 학생들은 ‘꼭 읽어보라’며 자료를 건넸다. 나태주 시인의 아름다운 시 ‘풀꽃’이 담겨 있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곡성/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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