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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위한 ‘재능기부 잔칫상’ 참 푸짐하죠∼

등록 2013-12-08 20:37수정 2013-12-08 22:08

99살 생일을 맞은 김연화 할머니 단 한 사람을 위한 음악회가 열린 4일 오전 광주 남구 주월동 다문화가정 지원센터 그루터기에서 재능기부에 나선 오카리나 합주단원들이 공연을 마치고 처음 만난 김 할머니에게 절을 하려고 나란히 섰다. 단원들이 “큰딸이에요”, “저는 막내딸”이라며 꼭 안아주자, 김 할머니는 “워매, 여기가 천국이구만” 하며 눈시울을 훔쳤다.
99살 생일을 맞은 김연화 할머니 단 한 사람을 위한 음악회가 열린 4일 오전 광주 남구 주월동 다문화가정 지원센터 그루터기에서 재능기부에 나선 오카리나 합주단원들이 공연을 마치고 처음 만난 김 할머니에게 절을 하려고 나란히 섰다. 단원들이 “큰딸이에요”, “저는 막내딸”이라며 꼭 안아주자, 김 할머니는 “워매, 여기가 천국이구만” 하며 눈시울을 훔쳤다.
[현장 쏙] 나눔문화 키우는 광주재능기부센터
소소한 재능도 꼭 필요한 사람에겐 소중할 수 있다. 봉사하고 싶은 사람들과 그 손길을 기다리는 이들을 연결하는 플랫폼이 바로 광주재능기부센터다. 지식, 경험 같은 무형의 재능과 유형의 공간을 이어주는 다리다. 단 한 사람을 위한 음악회, 그 현장엔 많은 이들의 나눔이 물결쳤다.

‘단 한 사람을 위한 음악회’, 그 주인공은 누구일까? 광주재능기부센터가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음악회를 연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 4일 오전 11시 광주광역시 남구 주월동 다문화가정 지원센터 그루터기를 찾았다. 2층 도서실에 들어서자 떠들썩했다. 떡, 과일, 케이크 등이 놓인 푸짐한 잔칫상 뒤에 ‘그루터기와 함께하는 백수(白壽)잔치’라는 펼침막이 걸렸다.

음악회의 주인공 김연화(99) 할머니는 한복으로 갈아입고 잔칫상 앞에 앉아 있었다. “아이, 고우시다”, “이쁘시네”…. 잔치를 준비한 이들이 박수를 쳤다. 광주지역 케이블방송 진행자 곽귀근(33)씨가 재능기부로 사회를 맡아 흥겨운 분위기를 이끌었다.

빨강 셔츠를 입은 ‘천사의 소리’ 합주단 10여명이 오카리나 연주를 했다. 동호인들이 모인 합주단은 ‘영암아리랑’, ‘연가’ 등 3곡을 선물했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오카리나 연주에 맞춰 박수가 터졌다. 단원 박주연(54)씨는 “할머니가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니 흐뭇하다”고 말했다. 이어 해금 연주 동호회 ‘락 앤 발룬티어스’ 회원 5명도 ‘진도아리랑’ 등 3곡을 연주했다. 장구 연주를 맡았던 조지연(39)씨는 “작은 정성이 모여 큰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참 놀랍다. 아름다운 잔치에 참여하게 돼 도리어 감사하다”고 했다.

“이 나이 묵도록(먹도록) 이런 호강 처음 받아보요. 감사합니다. 오져(좋아) 죽겄오.”

눈물을 훔치는 김 할머니의 거친 손마디와 얼굴 주름에 그간의 고단한 삶이 묻어났다. 문구점을 하다 실패한 외동아들(60)은 아내가 집을 나간 뒤 햇빛을 두려워하며 방 안에서만 지낸다. 손녀 2명은 10여년 전 집을 나간 뒤 소식이 없다. “연락 끊긴 손녀가 두 달 전 결혼해 소득이 잡힌 탓에 할머니가 기초생활수급자에서 탈락했어요.” 할머니가 사는 동네의 통장을 했던 박미경(43)씨의 귀띔이다. 김 할머니는 오래도록 제대로 된 생일상을 받아보질 못했다. 하루하루 폐지를 모아 환갑 나이 아들과 주택 단칸방에서 살고 있다.

김혜정(52) 사랑가족봉사단장은 김 할머니 생일선물로 내의와 이불을 준비했다.
김혜정(52) 사랑가족봉사단장은 김 할머니 생일선물로 내의와 이불을 준비했다.

지난해 세워진 광주재능기부센터
폐지 줍는 할머니 ‘200번째 음악회’
이웃들이 자식처럼 음식 준비하고
오카리나·해금 동호회는 흥 돋워

1500여명 재능기부 약속한 회원들
제3세계 아동에 중고가방 보내고
도서문화운동 펼치며 나눔 넓혀가



“호주머니에서 돈을 내야만 봉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각자 갖고 있는 작은 재능을 어려운 이웃과 나누며 돕고 사는 것이 자원봉사입니다.”

광주재능기부센터의 하상용(53) 공동대표는 “여러분의 재능기부로 큰 잔치를 함께 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이날 김 할머니 백수잔치도 모두 기부로 차렸다. 대성어린이집에서 케이크를, 최은영씨가 쿠키를 준비했고, ‘황금단 한복’에선 한복 대여를, 여동란씨는 할머니 화장을 맡았다. 김혜정(52) 사랑가족봉사단 단장은 속옷과 이불, 떡, 과일을 준비했다. 전남 화순에 사는 결혼이주 여성 다카이 마치요(47)는 덧신을 가져왔다. 음악회 뒤 김 할머니는 박미아(49) 그루터기센터장이 정성껏 마련한 점심상에 참석자 30여명과 함께 둘러앉았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때 고교생으로서 시민군으로 참여했던 김향득(51·사진가)씨도 재능기부로 김 할머니와 참가자들의 웃음과 환호를 카메라에 담았다.

단 한 사람을 위한 음악회는 어려운 이웃에게 보내는 응원이다. 장우철(47) 광주재능기부센터 사무처장은 “여러 사람들이 모여 함께 응원을 보내, 어려움을 겪는 이가 희망을 일궈갈 새로운 용기를 챙길 수 있도록 하자는 잔치”라고 말했다.

이 행사는 광주재능기부센터 온라인 카페(cafe.daum.net/talentgj)나 전화(062-431-0918)로 신청받은 뒤, 공연·음식 등 재능기부자를 찾는 공지를 띄우는 방식으로 꾸린다. 한 달에 4~5차례 단 한 사람을 위한 음악회를 연다. 실직해 술만 마시며 집 안에 있는 남편을 위해 아내가 신청하기도 했다. 공사장에서 떨어져 휠체어에 의지하는 장애인을 찾아가 따뜻하게 손을 내민 적도 있다. 이날 김 할머니를 위한 음악회가 200회째였다.

“나눔에 참여하고 싶어도 참여 통로를 찾기가 어렵잖아요? 그리고 사람마다 각기 다른 재능들을 소중한 가치로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이웃 친구들과 생일상 점심을 먹고 있는 김연화(99·앉아있는 이들 중 맨 왼쪽) 할머니 옆에 서있던 장우철(47) 광주재능기부센터 사무처장이 “맛있게 드시라”고 인사하고 있다. 해금 연주 동호회 ‘락 앤 발룬티어스’ 회원들이 <진도아리랑> 등 민요를 연주하고 있다.(위쪽 사진부터)
이웃 친구들과 생일상 점심을 먹고 있는 김연화(99·앉아있는 이들 중 맨 왼쪽) 할머니 옆에 서있던 장우철(47) 광주재능기부센터 사무처장이 “맛있게 드시라”고 인사하고 있다. 해금 연주 동호회 ‘락 앤 발룬티어스’ 회원들이 <진도아리랑> 등 민요를 연주하고 있다.(위쪽 사진부터)

‘장애인 부모 연대’ 대표를 지내며 장애인과 다문화가정의 권익 찾기에 힘을 쏟았던 장 사무처장은 “전문직 종사자들도 봉사활동을 나가면 복지단체에서 청소하고 빨래하는 것에서 멈추곤 하는데, 그들의 재능을 다 발휘하는 거라곤 할 수 없다. 그래서 시민들의 재능을 모아보자고 제안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취지에 공감한 300여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해 지난해 4월 창립된 뒤 지금은 1500여명이 재능기부를 약속했다. 의료, 법률, 문화예술, 미디어, 교육 등 전문분야뿐 아니라 스포츠, 번역 같은 갖가지 기능, 별장·노래방 등 공간까지 기부 영역은 무한하다.

광주재능기부센터 지부 6곳의 사무실도 모두 공간 기부로 마련했다. 노래방 사장은 손님 적은 낮시간에 다문화가정을 위해 노래방 공간을 내놓았다. 시골 별장을 함께 사용하자고 내놓은 이도 있다. 41년째 양복을 만들어온 전병원(56·광주 동구 충장로5가)씨는 “교도소 재소자들에게 10여년 양복 기술을 가르치는 봉사를 해왔다. 재능기부센터 회원이 된 뒤 다문화가정을 이룬 신랑에게 결혼 예복을 무료로 지어줬을 때 뿌듯했다”고 말했다.

‘재미있고 신나는 기부문화 활성화’가 광주재능기부센터의 목표다. 센터의 별칭 ‘나눔엔조이(NJOY)’는 나눔과 즐거움이라는 뜻, 그리고 나눔을 즐기자는 의미를 담았다. 센터는 후원 회원 400여명이 다달이 5000원부터 10만원까지 내는 후원금으로 운영된다. 광주시 5개 구로 확대된 6곳의 센터 지부도 공간을 선뜻 내놓은 기부의 힘으로 꾸려졌다. 6곳 지부에선 상근자와 자원활동가 등 모두 20여명이 봉사하고 있다.

‘책 읽는 벤치 인(in) 광주’ 프로그램은 누구나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공공장소 벤치에 책을 놓아두고 관리하는 것이다. 벤치지기를 자원한 이가 바구니, 플라스틱통 같은 재활용품에 책을 놓아두고, 비가 오면 지퍼백에 담아두거나 회수한다. 동네 골목, 광주시청 앞 버스정류장, 전남대 안, 공원 등 광주시내 벤치 105곳에 책들이 놓여 있다. “소소한 재미가 있는 공유공간으로 바꾸자”는 취지에 공감한 시민들의 참여가 늘고 있다.

“사람 자체가 바로 책”이라는 발상으로 ‘사람을 빌려주는 도서관’도 2년째 다달이 연다. 책을 대출하는 것처럼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책’을 대출해 지식과 경험을 나누는 방식이다. 새로운 도서관 문화운동인 ‘리빙 라이브러리’(Living Library) 프로그램을 적절하게 응용했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250명이 기꺼이 사람책이 돼 봉사하고 있다.

홀로 사는 어르신들을 위한 ‘편안한 해우소 프로그램’도 다달이 1건씩 하고 있다. 좌변기형 수세식 화장실과 지지대를 설치해주는 것이다. 노인들이 쪼그려앉아 일을 보다 일어서면서 뇌출혈로 쓰러지거나 미끄러지면서 다치는 경우가 종종 있어 시작한 사업이다. 변기·타일 등 재료 구입을 위한 모금을 하고, 설치 공사는 기능을 가진 이들의 재능기부로 해결한다. 지금까지 홀몸 노인 20명이 이 프로그램의 혜택을 봤다.

아이들이 안 쓰는 가방을 모아 동남아시아·아프리카 등지의 아이들에게 보내는 ‘반갑다 친구야’라는 단체와 손을 잡고, 올해 중고 가방 1500여개를 건네기도 했다.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온 ‘소셜 디자이너’ 하상용 대표는 “재능을 가진 분과 도움이 필요한 분을 적절하게 연결해주는 플랫폼이 바로 광주재능기부센터다. 신선한 아이디어를 모아 재능기부와 사회봉사의 영역을 넓혀갈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글·사진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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