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누이’ 박기순(1957~78)
16일 광주 민들레소극장서 추모
문예활동 재현극·노래·시 낭독
문예활동 재현극·노래·시 낭독
‘노동자의 누이’ 박기순(1957~78)씨를 추모하는 행사가 16일 저녁 6시30분 광주시 동구 궁동 민들레 소극장에서 열린다.
들불열사기념사업회(이사장 조진태)가 ‘들불 그 이름, 박기순!’이라는 주제로 여는 이번 행사의 1부는 노래·시·단막극 등으로 꾸며진다. 강숙향·강형원씨가 <상록수>를 추모곡으로 부른다. 이 노래는 고인의 장례식 때 김민기씨가 불렀던 노래로 알려져 있다. 극단 신명과 연극단체 토박이 단원 10여명이 고인의 들불학당 활동을 단막극으로 올린다.
이어 5·18민주화운동 때 시민군 대변인으로 계엄군의 도청 진입 작전에 맞서 싸우다가 죽음을 맞은 윤상원(1950~80)씨가 생전에 쓴 일기가 낭독된다. 윤상원씨는 1978년 12월27일 일기장에 ‘영원한 노동자의 벗 기순이가 죽던 날’이라는 글을 남겼다. 윤씨는 “불꽃처럼 살다 간 누이야/ 왜 말없이 눈을 감았는가?…훨훨 타는 그 불꽃 속에/ 기순의 넋은 한 송이 꽃이 되어/ 우리의 가슴속에서 피어난다”고 고인의 죽음을 슬퍼했다. 2부는 고인의 활동을 조명하는 발표회로 진행된다. 문승훈 전 광주민주화운동동지회 운영위원장이 ‘전남대 학생운동과 박기순’에 대해, 강현아 광주여성재단 정책연구팀장이 ‘들불야학과 노동운동, 그리고 여성노동자 박기순’에 대해 발표한다.
박기순씨는 1976년 역사교육학과에 입학해 78년 3학년 때 시국사건으로 무기정학을 당한 뒤 여대생 최초로 공장에 위장 취업했다. 그해 7월엔 광주시 서구 광천동에 들불야학을 창립해 노동자 야학 운동을 주도하다가 12월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떴다. 들불야학은 학생운동과 노동·주민운동을 연계하는 역할을 했고, 들불야학 출신들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때 시민군으로 참여하는 등 항쟁에 중요한 구실을 했다. 1982년 2월 고 박기순씨와 고 윤상원씨의 영혼결혼식이 열렸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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