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살 대학생 출신 노동자 박기순(1957~78)씨
‘고 박기순 스승’ 홍승기씨 회고
5·18밑돌 ‘들불야학’ 노동자 위해
과일행상해 경비 벌던 모습 선해
제자 지도하며 느낀 심리적 갈등
78년 ‘우리교육지표’ 서명 계기돼
5·18밑돌 ‘들불야학’ 노동자 위해
과일행상해 경비 벌던 모습 선해
제자 지도하며 느낀 심리적 갈등
78년 ‘우리교육지표’ 서명 계기돼
21살 대학생 출신 노동자 박기순(1957~78·사진)씨가 세상을 뜬 지 35년, 지난 16일 저녁 광주광역시 궁동 민들레소극장에서 들불열사기념사업회가 연 추모행사에 100여명이 모였다. 이날 추모행사에서는 지금까지 영혼결혼식과 ‘임을 위한 행진곡’의 주인공으로만 알려진 박기순의 인간적 모습들이 새롭게 드러났다.
박씨는 전남대 국사교육과에 다니던 78년 7월 노동자 야학인 ‘들불야학’ 창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석달 뒤 광주 광천공단의 업체에 노동자로 취업했다가 그해 12월25일 불의의 사고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최후까지 항쟁하다 숨진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1950~80)씨를 비롯한 들불야학 구성원들은 80년 5·18 민중항쟁에서 중요한 구실을 했다. 82년 2월 박씨와 윤씨의 영혼결혼식이 열린 뒤 그해 5월 이들의 넋을 위로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만들어졌다.
홍승기(68) 전 한양대 교수는 추모집에 쓴 글에서 당시 전남대 국사교육과 지도교수로 박씨를 만났던 기억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그는 78년 ‘4·19’를 앞두고 대학 당국의 지시로 ‘운동권 학생’인 3학년생 박씨를 자신의 집에 데리고 있었다. 그런데 중앙정보부에서 박씨를 강제로 연행해 갔다. 홍 교수는 그 이튿날 중앙정보부 직원을 따라 건물 지하의 어느 방으로 들어갔다. “벽에는 핏자국이 여기저기 묻어 있었다. 희미한 전구 하나가 있을 뿐 어두컴컴하였다. 박기순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불러주는 대로 서약서를 쓰고 박씨를 데리고 나온 홍 교수는 “현행범도 아닌 학생을 잡아다가 지하에 가두고 겁을 준 사람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들인가?”라고 적었다.
박씨는 76년 말쯤부터 전남대 사범대 학생들과 함께 1년가량 청소년 노동자들을 위한 야학에 참여하고 있었다. 홍 교수는 박씨가 야학 경비를 마련하려고 수박 등 과일 행상을 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겨우 20살을 갓 넘긴 여학생이 수건을 목에 걸고 리어카를 끌며 골목으로 들어가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78년 6월 전남대 교수 11명은 유신정권에 반대하는 뜻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우리교육 지표’를 발표했다. 오직 연구 외길을 걷기로 결심했다는 홍 교수는 “전적으로 박기순 등 학생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심리적 갈등을 겪었던” 것이 계기가 돼 ‘우리교육 지표’ 서명에 참여했다. 그때 교육지표 지지 시위에 참여했던 박씨는 강제휴학을 당하고 노동 현장으로 들어갔고, 홍 교수는 해직됐다가 이듬해 복직했다.
“박기순 선생님은 못 배우고 가난한 우리를 따뜻하게 보듬어줬어요. 우리를 사람 취급을 해줬지요.” 들불야학에서 배우면서 가르치는 ‘학강’이었던 나용관(49)씨는 이날 영상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고하기도 했다. 광주여성재단 정책연구팀 강현아 박사는 “70년대 광주에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연결시킨 고리로서 박기순의 삶의 궤적을 깊게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광주/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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