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투어에 나선 대전시향이 2012년 12월 한국 오케스트라 최초로 오스트리아의 빈 무지크페라인 골드홀에서 연주하고 있다. 대전시립교향악단 제공
[사람과 풍경] 창단 30돌 맞은 대전시향
창단초기 지휘자도 없이 고군분투
금난새 이후 전기맞아 외국 진출
“정상급 실력…전용홀 갖추면 완벽”
창단초기 지휘자도 없이 고군분투
금난새 이후 전기맞아 외국 진출
“정상급 실력…전용홀 갖추면 완벽”
지난 11일 오전 대전 만년동 대전문화예술의전당 대전시립교향악단 연습실, 현란하고 정열적인 교향곡이 흘렀다. 대전시향 단원들은 오는 27일 막을 올리는 마스터스 시리즈 ‘운명’에서 선보일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 바단조, 작품 36’을 연주했다. 리허설인데도 단원들은 검은색 계통의 정장을 차려입고 음표 하나하나에 집중했다. 타악기 연주자인 인선희(48)씨는 “올 마스터스 시리즈는 대전시향 창단 30년을 기념한다. 시민의 성원에 보답하고, 성장한 시향을 보여드리겠다”고 밝혔다.
대전시향(dpo.artdj.kr)이 서른살 청년으로 성장했다. 대전시향은 1984년 1월13일 창단해, 그해 5월2일 대전시민회관 대강당에서 첫 공연을 했다. 당시 대전은 대중가수의 공연도 손에 꼽을 만큼 문화의 불모지였다. 창단 단원 58명 가운데 정단원은 23명이었고, 나머지는 음대생들이었다. 상임지휘자도 없어 정두영 목원대 교수와 박판길 충남대 교수가 번갈아 지휘했다. 상임지휘자가 임명된 것은 1990년 정두영 교수가 처음이었다. 임지연 시향 홍보담당은 “시민회관 시절 연습하면 시끄럽다고 항의받는 일이 허다했다. 시향은 1998년 금난새씨가 상임지휘를 맡으면서 전기를 맞았다”고 전했다.
이어 함신익, 에드몬 콜로메르, 장윤성, 금노상 예술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 금난새-함신익으로 이어지는 8년 동안 시향은 실력을 높이기 위한 혹독한 담금질이 계속됐다. 일주일마다 열리는 연주 평가에 단원 20명이 떠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은 창단 20년째인 2004년 미국 순회연주회를 시작으로 2005년 일본 연주회, 2012년 유럽 순회연주회를 성공적으로 이뤄내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로 발돋움하는 성과를 거뒀다. 공연마다 전석 매진과 기립 박수가 이어졌다. “브라보 대전 필!” 환호는 카리스마 넘치는 지휘자들의 땀과 모진 연습을 거듭한 단원들의 눈물이 이룬 결과였다. 단원 이세레나(39·바이올린)씨는 “평가 과정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였지만 뉴욕과 빈 공연에서 갈채를 받으며 보상받았다. 떠난 선배들이나 현재 단원 모두가 이룬 성과”라고 말했다.
2005~2013년 말러의 교향곡 1~4번을 모두 연주했다. 김이석 시향 사무국장은 “고 정두영 초대 상임지휘자는 창단 인터뷰에서 ‘대전시향이 말러를 정복하려면 20년 뒤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말러를 연주하면 어떤 곡도 소화할 수 있다는 뜻이므로 이제 대전시향의 수준은 정상급이라고 자신한다”고 설명했다.
올해 시향은 피아니스트 백건우, 세르게이 타라소프(러시아), 박종화와 바이올리니스트 로버트 맥더피, 베를린 필하모닉 하피스트 마리피에르 랑글라메, 첼리스트 정명화 등 세계 정상급 연주자들을 초청해 협연한다.
문옥배 음악평론가는 “대전시향의 30년은 곧 대전 공연문화의 역사이다. 이제 시향은 민간 연주단과 차별화된 시민의 오케스트라로 성장하는 과제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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