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장흥군에 귀촌한 문충선(왼쪽 넷째)씨 등 마을신문 <마실가자> 편집위원들이 주말인 지난달 23일 장흥읍 덕제리 송산마을에 있는 문씨의 카페 겸 복합문화공간 ‘오래된 숲’ 마당에서 편집회의를 하고 있다. 장흥/정대하 기자
[지역 쏙] 장흥 송산마을 문 이장님의 귀촌이야기
전남 장흥군 장흥읍 송산마을에선 귀향 15년 된 문충선(51)씨가 올해부터 이장을 맡았다. 한옥에 카페를 차리고 민박을 하며, 마을신문에 정성을 쏟아온 그다. 마을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과 문화를 투박하지만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내며 소통을 넓혀가고 있다.
전남 장흥군 장흥읍 송산마을에선 귀향 15년 된 문충선(51)씨가 올해부터 이장을 맡았다. 한옥에 카페를 차리고 민박을 하며, 마을신문에 정성을 쏟아온 그다. 마을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과 문화를 투박하지만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내며 소통을 넓혀가고 있다.
“오늘 혼자 사는 이산떡을 모시고 보건소에 갔다. 기초생활수급자 노인에게 국가에서 무료로 의치(틀니)를 해주는 사업이다. 엄격한 자격 조건 때문에 이산떡만 해당되는 주민복지 사업이다. … 여러 아짐들이 부러워한다. … 보편 복지가 시급하다.”
전남 장흥에 사는 문충선(51)씨가 지난 2월7일 페이스북에 올린 ‘이장 일기’의 한 대목이다. 문씨가 이산댁(70)을 모시고 가면서 나누는 정겨운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전라도에선 아주머니들을 부를 때 친정 마을 이름에 댁(宅)을 붙여 “○○떡”으로 발음하곤 한다.
그가 깃들인 장흥읍 덕제리 송산마을은 30여가구 70여명이 사는 작은 마을이다. 산자락에 자리한 문씨의 ㅁ자형 한옥은 단아한 느낌을 준다. 안채는 민박 손님에게 내준다. 구들장과 너른 마당이 인기라고 했다.
“아이고, 지난주에 불이 나버렸어요. 그나마 카페 처마만 태우고 건물을 다 태우지 않아 다행이지요.” 지난달 23일 오후 문씨는 아내 김남희(50)씨와 카페 내부를 정리하고 있었다.
카페 건물엔 ‘오래된 숲’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과거 머슴들이 살던 행랑채를 개조해 만든” 카페 겸 복합문화공간이다. 이곳은 장흥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회, ‘장흥예산 모임터’, 마을신문 <마실가자> 등의 사무실로도 쓴다고 했다. 한적한데다 장흥읍에서 차로 10분쯤 걸리는 가까운 곳이어서 모이기에 좋기 때문이다. “한옥의 오래된 나무들도 본래 숲에서 베어온 것들이잖아요. 지역의 문화·교육·농업 등 각계 사람들이 나무처럼 어울리는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은 이름이지요.”
문씨는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1988년 광주 전남대 정문 앞에서 사회과학서점 청년글방을 운영하다 99년 고향 장흥으로 귀촌했다. 문씨는 고향인 장흥군 유치면 한치마을에서 6년쯤 살다가 2005년 11월 송산마을로 이사했다. 탐진강에 댐을 건설하는 바람에 수몰될 고향 마을에서, 2002년엔 문화패와 함께 수몰문화제를 여는 등 지역문화운동에 앞장서왔다. “지역에서 문화활동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많이 배웠어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어가며 슬며시 개입하는 방식으로요.”
서점 운영하다 귀향후 지역문화운동
마을에 연 카페는 문화공간 역할
주민 일상 담은 마을신문으로 소통
페이스북엔 업무 뒷얘기 일기 올려
소통 통로 넓히며 공동체와 한 몸 송산마을로 옮긴 지 8년여가 된 지난 1월, 문씨는 마을 이장으로 추대됐다. 후배가 이장을 그만두자 마을 어르신들이 문씨를 지명했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직장에 다니는데 저는 집에서 왔다갔다하니까 봉사 좀 하라고 그러셨겠지요.(웃음) 이장을 해봐야 마을 돌아가는 것도 알 것 같고 해서 맡겠다고 했지요.” 평일이면 읍사무소나 농협에서 전화나 문자메시지를 평균 4~5통씩 받는다. 빈집 조사 및 홀몸노인 조사부터 농사 관련 사업 신청 등 이장 업무는 다양하다. 지난달 대보름 땐 20여년 전 끊겼던 지신밟기를 했다. 문씨는 “마을굿을 한 번 하자고 제안했다. 풍물을 칠 사람이 없어 저도 북을 잡았다”고 말했다. 지난달 13일 마을 이장이 된 뒤 처음으로 마이크를 잡고 마을 방송을 했다. “이장입니다. 농협 직원과 좌담회를 여니 오후 1시에 점심 드시고 회관으로 모두 나오세요.” 앞으론 전라도 사투리를 그대로 살려 마을 방송을 할 생각이다. 문씨는 이장 일 말고도 장흥 각 면 지역 사람들이 소통하는 통로를 넓히려 공을 들이고 있다. 그는 마을신문 <마실가자>의 편집인을 맡고 있다. ‘마실’은 마을의 사투리로, 마실 가자는 말은 놀러 가자는 뜻으로 쓴다. 사람들의 일상, 지역의 문화·역사, 현안 등을 다루려 마을 현장으로 찾아간다는 의미를 담았다. 마을신문은 지난해 3월 장흥교육희망연대의 소식지로 출발했다가, 지난 1월 독립했다. 주민 150여명이 5000원에서 5만원씩 보태 마을신문을 지지하는 ‘나무’가 됐다. 다달이 16쪽짜리 신문 1000부를 발행한다. 편집위원은 문씨와 시민단체 활동가, 자영업자, 귀촌한 사람, 직장인 등 하는 일이 다양한 9명이다. 이들은 지난달 23일 오후 오래된 숲 마당에 앉아 2·3월호 합본호(3월3일 발행) 편집회의를 열었다. 설과 대보름 때 마을 풍경, 봄 이야기, 장흥군 장평면 진상마을 어르신 구술 등이 주요 기사 소재로 올랐다. 음료 대리점을 운영하는 틈틈이 사진 취재를 하는 김재진(45)씨는 “옆에서 조금 돕고 있다”며 웃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귀향해 인쇄·디자인 업체를 운영하는 이웅기(45)씨가 신문 편집을 도맡아 봉사한다. 창간호부터 꼼꼼히 모으던 독자에서 편집위원으로 변신한 문덕희(44·아이쿱한울남도생협 이사)씨는 “따뜻한 신문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지역에 숨어 있는 역사나, 나이든 어르신들의 소소한 일상 등을 알려 감동을 준다”고 말했다. 취재는 마을기자들 몫이다. 문씨와 각 면지역 화가·농민 등 5명이 뛴다. 마을기자 김병순(44)씨는 4년 전 귀농해 유기농 농사를 지으면서 초보 농사꾼의 좌충우돌 경험을 담은 ‘샛골농사 이야기’를 쓰고 있다. 그는 “취재하면서 마을과 사람들을 더 이해하게 됐고, 농촌 적응에도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마을신문은 지역 이슈도 파고든다. 지난해 10월엔 오리농장 악취 문제를 제기했다. “바람 불믄 냄새 땜시 살 수가 없당게”라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달했다. 지방사에도 관심을 둔다. 동학농민혁명 당시 장흥 석대들에서 숨진 무명 농민 동학군의 묘 등을 발굴해 보도했다. 장흥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회가 지난해 12월 책 <이야기 장흥동학농민혁명>을 펴낼 때는 편집위원인 박형모·홍석민씨는 물론 김병순씨와 화가 조연희씨, 농사짓는 오순기씨 등 마을기자들도 힘을 보탰다. 무엇보다 마을 사람들의 소소한 삶을 따뜻하게 기록한다. ‘우리동네 사랑방’이란 꼭지에선 대덕읍 장흥이발관, 용산면 만물상회, 회진면 성화식당의 주인들, 장동면 김용석(87)·안봉금(83)씨 부부의 이야기 등을 다뤘다. ‘사람들’ 꼭지에선 30여년 토종씨앗을 찾아 지켜온 이영동(62)씨의 삶도 발굴해 2013년 10월 보도했다. 인문학 강좌, 음악회도 열었고, 동학농민혁명 현장 답사도 다닌다. 문씨는 “거칠지만 따뜻한 숨소리와 가슴의 울렁거림이 있는 글을 싣고 싶다. 젊은 기자 1~2명이라도 채용하고 싶은데 아직은 꿈이다”라고 말했다. 장흥/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마을에 연 카페는 문화공간 역할
주민 일상 담은 마을신문으로 소통
페이스북엔 업무 뒷얘기 일기 올려
소통 통로 넓히며 공동체와 한 몸 송산마을로 옮긴 지 8년여가 된 지난 1월, 문씨는 마을 이장으로 추대됐다. 후배가 이장을 그만두자 마을 어르신들이 문씨를 지명했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직장에 다니는데 저는 집에서 왔다갔다하니까 봉사 좀 하라고 그러셨겠지요.(웃음) 이장을 해봐야 마을 돌아가는 것도 알 것 같고 해서 맡겠다고 했지요.” 평일이면 읍사무소나 농협에서 전화나 문자메시지를 평균 4~5통씩 받는다. 빈집 조사 및 홀몸노인 조사부터 농사 관련 사업 신청 등 이장 업무는 다양하다. 지난달 대보름 땐 20여년 전 끊겼던 지신밟기를 했다. 문씨는 “마을굿을 한 번 하자고 제안했다. 풍물을 칠 사람이 없어 저도 북을 잡았다”고 말했다. 지난달 13일 마을 이장이 된 뒤 처음으로 마이크를 잡고 마을 방송을 했다. “이장입니다. 농협 직원과 좌담회를 여니 오후 1시에 점심 드시고 회관으로 모두 나오세요.” 앞으론 전라도 사투리를 그대로 살려 마을 방송을 할 생각이다. 문씨는 이장 일 말고도 장흥 각 면 지역 사람들이 소통하는 통로를 넓히려 공을 들이고 있다. 그는 마을신문 <마실가자>의 편집인을 맡고 있다. ‘마실’은 마을의 사투리로, 마실 가자는 말은 놀러 가자는 뜻으로 쓴다. 사람들의 일상, 지역의 문화·역사, 현안 등을 다루려 마을 현장으로 찾아간다는 의미를 담았다. 마을신문은 지난해 3월 장흥교육희망연대의 소식지로 출발했다가, 지난 1월 독립했다. 주민 150여명이 5000원에서 5만원씩 보태 마을신문을 지지하는 ‘나무’가 됐다. 다달이 16쪽짜리 신문 1000부를 발행한다. 편집위원은 문씨와 시민단체 활동가, 자영업자, 귀촌한 사람, 직장인 등 하는 일이 다양한 9명이다. 이들은 지난달 23일 오후 오래된 숲 마당에 앉아 2·3월호 합본호(3월3일 발행) 편집회의를 열었다. 설과 대보름 때 마을 풍경, 봄 이야기, 장흥군 장평면 진상마을 어르신 구술 등이 주요 기사 소재로 올랐다. 음료 대리점을 운영하는 틈틈이 사진 취재를 하는 김재진(45)씨는 “옆에서 조금 돕고 있다”며 웃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귀향해 인쇄·디자인 업체를 운영하는 이웅기(45)씨가 신문 편집을 도맡아 봉사한다. 창간호부터 꼼꼼히 모으던 독자에서 편집위원으로 변신한 문덕희(44·아이쿱한울남도생협 이사)씨는 “따뜻한 신문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지역에 숨어 있는 역사나, 나이든 어르신들의 소소한 일상 등을 알려 감동을 준다”고 말했다. 취재는 마을기자들 몫이다. 문씨와 각 면지역 화가·농민 등 5명이 뛴다. 마을기자 김병순(44)씨는 4년 전 귀농해 유기농 농사를 지으면서 초보 농사꾼의 좌충우돌 경험을 담은 ‘샛골농사 이야기’를 쓰고 있다. 그는 “취재하면서 마을과 사람들을 더 이해하게 됐고, 농촌 적응에도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마을신문은 지역 이슈도 파고든다. 지난해 10월엔 오리농장 악취 문제를 제기했다. “바람 불믄 냄새 땜시 살 수가 없당게”라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달했다. 지방사에도 관심을 둔다. 동학농민혁명 당시 장흥 석대들에서 숨진 무명 농민 동학군의 묘 등을 발굴해 보도했다. 장흥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회가 지난해 12월 책 <이야기 장흥동학농민혁명>을 펴낼 때는 편집위원인 박형모·홍석민씨는 물론 김병순씨와 화가 조연희씨, 농사짓는 오순기씨 등 마을기자들도 힘을 보탰다. 무엇보다 마을 사람들의 소소한 삶을 따뜻하게 기록한다. ‘우리동네 사랑방’이란 꼭지에선 대덕읍 장흥이발관, 용산면 만물상회, 회진면 성화식당의 주인들, 장동면 김용석(87)·안봉금(83)씨 부부의 이야기 등을 다뤘다. ‘사람들’ 꼭지에선 30여년 토종씨앗을 찾아 지켜온 이영동(62)씨의 삶도 발굴해 2013년 10월 보도했다. 인문학 강좌, 음악회도 열었고, 동학농민혁명 현장 답사도 다닌다. 문씨는 “거칠지만 따뜻한 숨소리와 가슴의 울렁거림이 있는 글을 싣고 싶다. 젊은 기자 1~2명이라도 채용하고 싶은데 아직은 꿈이다”라고 말했다. 장흥/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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