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강진북초등학교 학생들이 지난 11일 주옥같은 서정시 80여편이 탄생한 영랑 김윤식 시인의 생가에서 해설사 이을미씨의 설명을 듣고 있다. 강진군청 제공
[호남·제주 쏙] 호남 문학관들의 ‘문학 농사’ 한창
‘남도답사 1번지’라는 전남 강진은 일제강점기 ‘북에는 소월, 남에는 영랑’이란 말이 나왔던 시인 김영랑의 고향이다. 새봄을 맞아 강진 시문학파기념관 등 호남권 문학관들이 학생·주민들에게 문학의 씨앗을 뿌리는 ‘문학농사’에 나섰다.
‘남도답사 1번지’라는 전남 강진은 일제강점기 ‘북에는 소월, 남에는 영랑’이란 말이 나왔던 시인 김영랑의 고향이다. 새봄을 맞아 강진 시문학파기념관 등 호남권 문학관들이 학생·주민들에게 문학의 씨앗을 뿌리는 ‘문학농사’에 나섰다.
지난 11일 오전 전남 강진군 강진읍 남성리 시인 김영랑(1903~50)의 생가. 봄 햇살이 마중 나온 시인의 생가에 도착한 강진북초등학교 아이들이 떠들썩해졌다. 들머리에서 해설사 이을미(58)씨가 아이들 가슴에 귀여운 캐릭터 배지를 달아줬다. 배지에는 모란을 친근하게 디자인한 캐릭터 아래 ‘시몽’(simong·詩夢)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아이들이 배지를 어루만지며 참새떼처럼 즐겁게 조잘댔다.
“영랑은 어디 사람이에요?” “강진 사람.”
“영랑은 이름이 뭡니까?” “김영랑.”
“영랑의 가장 유명한 시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앞뜰에 있는 이 꽃나무는 뭘까요?” “….”
해설사는 스무고개 놀이를 하듯 하나하나 물었고, 아이들은 천진스럽게 대답했다. 답변이 막히면 시선을 엉뚱한 데로 돌리거나 공연히 신발로 바닥을 긁어대며 딴청을 피웠다. 몇차례 이곳을 들렀던 아이들도 앞뜰 꽃나무가 모란이라는 걸 모르는 듯했다.
아이들은 별이 총총 떠 있었다는 우물 안을 들여다보고, 햇발이 속삭이는 돌담 아래를 걸으며 상상의 날개를 폈다. 갓 입학한 이현우(7)군은 “유치원 다닐 때도 한 번 와봤다. 그땐 꽃이 참 예뻤다”며 소곤거렸다. 선생님보다 키가 훌쩍 큰 6학년 주윤기(14)군은 “영랑이 내 나이에 장가갔다니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생가 곳곳의 시비 6기를 돌아본 아이들은 시인이 일제의 창씨개명 요구를 거부했고,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유명하다는 설명에 어깨가 으쓱해진 듯했다. 영랑이 46년 동안 살면서 남도의 운율을 살려 향토성 짙은 서정시 80여편을 써낸 현장이었다는 점을 자랑스러워했다.
2012년 전국 첫 ‘시문학파 기념관’
관내 14개초 문학 특별수업 마련
영랑 생가와 기념관 오가며
시 낭송·꿈 새기기 등 다양한 활동
정부 사업 채택…문화지수 1위 올라 아이들은 길 건너 ‘시문학파기념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전교생 27명과 교직원 7명 등 34명은 기념관에서 열린 ‘영랑 시인 감성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김영랑은 1930년대 시 전문지 <시문학>을 중심으로 순수시 운동을 주도했던 시문학파의 한 사람이었다. 프로그램은 △영랑과 강진 △영랑의 삶과 문학 △시 낭송하기 △청자에 꿈(시) 새기기 등 네 분야로 짜여 있었다. 강진문인협회장 정관웅 시인은 “시는 언어로 인간의 감정을 표현한 노래”라며 “감정을 살려 낭송하면 제맛이 우러난다”고 알기 쉽게 풀이해줬다. 수업 뒤 6학년 이성준(13)군은 “시가 뭔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슬픔과 기쁨, 아쉬움을 표현할 수 있다니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강진의 특산물인 청자 접시 위에 세라믹펜으로 자신의 꿈을 또박또박 적었다. 상냥한 간호사를 꿈꾸는 4학년 엄세희(11)양과 류현진 같은 투수가 되겠다는 3학년 정상민(10)군도 가슴에 담아둔 소망을 꾹꾹 눌러 새겼다. 초벌 상태인 접시들은 불가마에서 어엿한 청자로 구워져 2주일 안에 아이들한테 전해진다. 강진북초교 윤여광(61) 교장은 “아이들한테 즐겁고 유익했을 것 같다. 동시 쓰는 방법을 알려주고 올해 안에 학교 문집도 만들겠다”고 말했다. 영랑 시인 감성학교는 강진군과 강진교육지원청이 14개 초등학교의 정규 교과로 채택한 특별수업이다. 지난 4일 옴천·대구초교부터 오는 10월28일 강진중앙초교까지 화요일마다 영랑 생가(국가중요민속자료 252호)와 시문학파기념관에서 이어진다. 강사로는 김선기 시문학파기념관장, 정관웅 강진문인협회장, 도예작가 이영탄씨, 기념관 해설사 이을미씨 등 지역 인사들이 나선다. 김선기 관장은 “영랑과 모란은 정서적으로 민감한 아이들의 시적 상상력을 일깨워주는 매개체”라며 “창작 공간을 활용해 제2의 영랑을 키워내고 강진의 문화를 풍요롭게 만들겠다”고 말했다.
시문학파기념관은 2012년 3월 강진 출신 시인인 김영랑(본명 김윤식)과 김현구의 문학적 성과를 이어가기 위해 군이 설립한 문학관이다. 군은 빠듯한 살림에도 건립비 29억원 중 20억원을 군 예산으로 들여 지상 2층, 연면적 600㎡ 규모로 학예실, 전시실, 수장고, 북카페 등을 갖췄다. 두 시인이 시문학파에서 핵심적으로 활동했다는 인연을 들어 문학관의 외연을 <시문학> 동인 전체로 넓혔다. 작가나 지역 대신에 문학유파의 이름을 붙인 문학관이 전국에서 처음으로 탄생한 연유다. 전시의 대상도 1930년대 순수시 운동에 참여했던 박용철·정지용·이하윤·정인보·변영로·신석정·허보 등 9명으로 늘렸다.
기념관 전시 안내를 맡은 서은경(28)씨는 “중고생과 국문학 전공자 등 하루 100여명이 전시관을 찾는다. 전시 내용이 대학의 한 학기 강의 분량에 해당하고, <시문학> 동인지 3권과 현대문학사 연표 등 자료들을 접할 수 있어 오래 머무는 이들도 있다”고 전했다.
기념관은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에 1종 전문박물관으로 등록하고, 한국문학관협회의 호남권 거점 문학관에 선정됐다. 2년 동안 꾸준히 펼쳐온 ‘영랑 생가 시콘서트’, ‘화요일 밤의 초대손님’ 등은 두루 환영을 받았다. 군민 5만여명이 다달이 문화의 향기를 느꼈고, 지역 예술인들은 주민과 소통하며 창작의 열정을 다졌다.
임경태 강진군 문화관광과장은 “주민이 수도권에서 택시를 탔는데 운전기사가 영랑과 다산은 알아도 강진은 모르더라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남도답사 1번지’라고 불릴 정도로 풍부한 문화자원을 활용해 주민들이 시를 즐기며 살아가는 여유로운 동네로 가꾸겠다”고 말했다.
문화재청과 지역균형발전위원회도 힘을 보탰다. 정부의 지역창조사업 공모에서 ‘시가 꽃피는 강진 만들기’가 선정돼 종잣돈 15억원을 지원받게 됐다. 3년 동안 지역에서 문화사업을 벌이는 데 숨통이 트인 것이다. 지역의 문학자원을 활용한 문화사업이 디딤돌이 되면서 강진은 지난해 전국 84개군 가운데 지역문화지수 1위에 올라섰다. 강진/글·사진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초벌구이 청자 접시에 고이 적어놓은 강진북초등학교 학생들의 꿈. 강진군청 제공
관내 14개초 문학 특별수업 마련
영랑 생가와 기념관 오가며
시 낭송·꿈 새기기 등 다양한 활동
정부 사업 채택…문화지수 1위 올라 아이들은 길 건너 ‘시문학파기념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전교생 27명과 교직원 7명 등 34명은 기념관에서 열린 ‘영랑 시인 감성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김영랑은 1930년대 시 전문지 <시문학>을 중심으로 순수시 운동을 주도했던 시문학파의 한 사람이었다. 프로그램은 △영랑과 강진 △영랑의 삶과 문학 △시 낭송하기 △청자에 꿈(시) 새기기 등 네 분야로 짜여 있었다. 강진문인협회장 정관웅 시인은 “시는 언어로 인간의 감정을 표현한 노래”라며 “감정을 살려 낭송하면 제맛이 우러난다”고 알기 쉽게 풀이해줬다. 수업 뒤 6학년 이성준(13)군은 “시가 뭔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슬픔과 기쁨, 아쉬움을 표현할 수 있다니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강진의 특산물인 청자 접시 위에 세라믹펜으로 자신의 꿈을 또박또박 적었다. 상냥한 간호사를 꿈꾸는 4학년 엄세희(11)양과 류현진 같은 투수가 되겠다는 3학년 정상민(10)군도 가슴에 담아둔 소망을 꾹꾹 눌러 새겼다. 초벌 상태인 접시들은 불가마에서 어엿한 청자로 구워져 2주일 안에 아이들한테 전해진다. 강진북초교 윤여광(61) 교장은 “아이들한테 즐겁고 유익했을 것 같다. 동시 쓰는 방법을 알려주고 올해 안에 학교 문집도 만들겠다”고 말했다. 영랑 시인 감성학교는 강진군과 강진교육지원청이 14개 초등학교의 정규 교과로 채택한 특별수업이다. 지난 4일 옴천·대구초교부터 오는 10월28일 강진중앙초교까지 화요일마다 영랑 생가(국가중요민속자료 252호)와 시문학파기념관에서 이어진다. 강사로는 김선기 시문학파기념관장, 정관웅 강진문인협회장, 도예작가 이영탄씨, 기념관 해설사 이을미씨 등 지역 인사들이 나선다. 김선기 관장은 “영랑과 모란은 정서적으로 민감한 아이들의 시적 상상력을 일깨워주는 매개체”라며 “창작 공간을 활용해 제2의 영랑을 키워내고 강진의 문화를 풍요롭게 만들겠다”고 말했다.
강진북초등학교 4학년 1반 엄세희양이 간호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청자에 새기고 있다. 강진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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