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 휠체어에 탄 김지호씨가 지난 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안산 무장애 자락길을 따라 꽃이 만발한 봄 풍경을 만끽하며 산책하고 있다. 나무데크 등으로 완만하게 길을 낸 덕분에 김씨가 홀로 전동 휠체어를 운전해 이동할 수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현장 쏙] 장애인을 위한 무장애 숲길 조성 붐
4월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2005년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이 제정된 뒤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고 저상버스가 도입되는 등 변화의 노력이 이어졌지만, 여전히 장애인들은 교통약자다. 뒷산 나들이도 꿈같은 얘기다. 서울 일부 근교 산에 조성된 ‘무장애 숲길’은 달랐다. 휠체어를 탄 김지호씨와 서대문구 안산 ‘무장애 자락길’을 걸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걷기 위해 낮춰야 하는 장벽은 무엇일까.
4월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2005년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이 제정된 뒤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고 저상버스가 도입되는 등 변화의 노력이 이어졌지만, 여전히 장애인들은 교통약자다. 뒷산 나들이도 꿈같은 얘기다. 서울 일부 근교 산에 조성된 ‘무장애 숲길’은 달랐다. 휠체어를 탄 김지호씨와 서대문구 안산 ‘무장애 자락길’을 걸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걷기 위해 낮춰야 하는 장벽은 무엇일까.
요즘 서울 서대문구 안산 시민공원은 활짝 핀 벚꽃과 개나리, 산수유, 철쭉, 진달래의 향기가 번져가고 있다. 퍼져가는 봄향기에 숲길을 찾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1급 뇌성마비 장애인인 김지호(44)씨도 지난 5일 전동 휠체어를 탄 채 봄색깔이 짙어가는 숲으로 ‘소풍’을 왔다. 지호씨를 태운 휠체어는 성큼성큼 ‘무장애 숲길’을 향해 나아갔다. 예전에는 꿈조차 꿀 수 없는 일이다. 무장애 길(barrier free)은 가파르거나 계단 같은 장벽이 없어 장애인, 어르신, 어린이, 임산부 등 보행 약자들도 편안하고 안전하게 거닐 수 있도록 만든 길이란 뜻이다.
안산 자락을 따라 평탄하게 만들어진 ‘무장애 자락길’이 지난해 11월 생긴 뒤로 지호씨는 일주일에 한차례 정도 숲을 찾는다. 전동 휠체어를 타고 서대문구청 옆길을 따라 자락길까지 올라왔다고 했다. 활동량이 적다 보니 폐활량도 적어져 ‘폐의 운동량’을 키우러 산에 온다. 지호씨는 “숲길에 오면 마음이 탁 트인다. 다른 곳에서는 쳐다보는 눈길이 많아 불편했는데,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쳐다보지 않아서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며 웃었다.
그가 휠체어를 타고 무장애 숲길을 한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3시간가량이다. 비장애인들이 걸어서 한바퀴를 돌 때보다 1시간가량 더 걸린다. 전망대를 향해 올라가던 지호씨가 갑자기 휠체어를 멈춘 채 말했다. “여긴 경사가 장난 아닌데요. 나무데크 옆에 설치한 안전막도 좀더 보강했으면 좋겠어요. 전동 휠체어가 무거워서 나무로 된 보호막을 들이받으면 부러질 수 있고, 그러면 정말 위험한 일이 일어날 수 있거든요.” 서대문구는 자락길을 잇기 위해 설치한 나무데크의 경사를 9도 미만으로 깔았다고 했지만, 몇몇 구간은 한눈에도 가파르게 보였다. 게다가 폭도 좁아서 사람들이 비켜주지 않으면 휠체어를 옆으로 붙여야 하는데, 그러다가 자칫 아래로 추락할 수 있다는 걱정이다.
개나리 산수유 진달래…
전망대 오르면 탁 트인 시야
예전에는 꿈도 못꾸던 일
서울 15곳 중 8곳 공사 마쳐
“나무펜스 보강됐으면” 안산 무장애 숲길에 대한 동네 주민들의 만족도는 높았다. 봄꽃이 핀 뒤로 무장애 자락길을 오르는 유모차도 많아졌다. 지난 1일 위미자(58)씨는 생후 90일밖에 안 된 손주 시윤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숲길을 걸었다. 손주와 함께한 첫 산행이었다. 위씨는 “길이 평탄하게 연결돼 있어서 유모차를 밀고 다니기에 전혀 힘들지 않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 이런 길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아이를 데리고 숲과 꽃을 마음껏 볼 수 있어서 정말 좋다”고 말했다. 날마다 숲길 산책에 나서는 김민곤(52)씨는 “자락길을 걷다 보면 유모차를 종종 만나고 전동 휠체어는 가끔 본다. 자락길이 만들어진 뒤 산을 찾는 시민들이 많이 늘었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도 숲에 오는 것을 보면 왠지 뿌듯하다. 엉뚱한 곳에 세금 낭비하는 것보다 이런 숲길을 만드는 게 백배 낫다”고 말했다. 안산 무장애 자락길은 총길이 7㎞로, 구비와 시비 48억여원이 들어갔다. 2010년부터 3년에 걸쳐 만들어졌다. 마사토와 굵은 모래, 나무데크를 활용해 출발한 곳으로 되돌아오는 순환형 길이다. 휠체어가 교차할 때 부딪히지 않도록 50~100m 간격으로 작은 쉼터를 만들었고, 쉬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숲 속 북카페’도 문을 열었다. 자락길 주변으로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안산 허브공원, 봉원사 등이 있어 함께 둘러볼 수 있다. 지난달 한국관광공사는 ‘이달의 추천길 10곳’ 가운데 하나로 안산 자락길을 선정하며 “낮지만 웅장한 산이 내어준 자락길의 한적한 숲을 지나 독립공원으로 되돌아오는 여행은 발로만 느끼기에는 보고 생각할 일이 너무도 많은 길”이라고 설명했다.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은 안산 무장애 자락길에 대해 “걸을 때 발에 걸리는 게 없으면 땅을 쳐다보지 않고 숲을 보게 된다. 그리고 숲을 보다 보면 저절로 치유가 된다. 장애인들이 숲에 오는 것을 보면서 세금 낸 보람을 느낀다는 시민들이 많다”고 말했다.
서울시와 자치구는 2009년부터 근교 산 자락길 조성에 나서 올해 연말까지 15곳에 무장애 숲길을 놓을 계획이다. 서대문구 안산을 비롯해 성북구 북한산(정릉초등학교 뒤편), 양천구 신정산(장수초등학교 뒤편), 마포구 매봉산, 관악구 관악산, 강동구 고덕산, 종로구 인왕산, 동작구 서달산 등 8곳은 조성을 마쳤다. 동대문구 배봉산 자락길은 이달 말 준공을 목표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강서구 개화산, 구로구 매봉산, 노원구 불암산, 성북구 월곡산, 서대문구 북한산, 중랑구 용마산은 연말까지 개통할 예정이다. 하지만 북한산(성북구, 서대문구), 신정산(양천구), 매봉산(마포구), 배봉산(동대문구) 자락길은 장애인 화장실을 갖추지 않는 등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미흡한 실정이다.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시민연대’의 배융호(48) 사무총장은 “장애인도 갈 수 있는 숲길을 조성한 것은 매우 긍정적이다. 하지만 정작 무장애 숲길까지 가는 길이 어려워선 안 된다”고 꼬집었다. 무장애 숲길뿐만 아니라 일상에서의 이동권도 중요하다는 얘기다. 지난 5일 무장애 숲길을 산책한 지호씨는 전동 휠체어를 탄 채 지하철 3호선 무악재역 부근 집에서 안산 숲길까지 오는 데 1시간가량 걸렸다. 그는 특히 지하철로 이동할 때 불편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이 많아 역무원한테 전화해 휠체어 리프트틀 탈 때마다 식은땀이 난다고 했다.
배융호 사무총장은 “안산 자락길 나무데크에서 휠체어가 추락하는 것을 막으려면 5㎝ 정도의 추락방지턱을 설치하면 된다.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환경을 훼손하지 않아야 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가는 길을 만드는 데도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정태우 기자 windage3@hani.co.kr
등산복을 입은 시민들이 지난 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안산 무장애 자락길을 따라 꽃이 활짝 핀 봄 풍경을 만끽하며 걷고 있다. 이정아 기자
전망대 오르면 탁 트인 시야
예전에는 꿈도 못꾸던 일
서울 15곳 중 8곳 공사 마쳐
“나무펜스 보강됐으면” 안산 무장애 숲길에 대한 동네 주민들의 만족도는 높았다. 봄꽃이 핀 뒤로 무장애 자락길을 오르는 유모차도 많아졌다. 지난 1일 위미자(58)씨는 생후 90일밖에 안 된 손주 시윤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숲길을 걸었다. 손주와 함께한 첫 산행이었다. 위씨는 “길이 평탄하게 연결돼 있어서 유모차를 밀고 다니기에 전혀 힘들지 않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 이런 길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아이를 데리고 숲과 꽃을 마음껏 볼 수 있어서 정말 좋다”고 말했다. 날마다 숲길 산책에 나서는 김민곤(52)씨는 “자락길을 걷다 보면 유모차를 종종 만나고 전동 휠체어는 가끔 본다. 자락길이 만들어진 뒤 산을 찾는 시민들이 많이 늘었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도 숲에 오는 것을 보면 왠지 뿌듯하다. 엉뚱한 곳에 세금 낭비하는 것보다 이런 숲길을 만드는 게 백배 낫다”고 말했다. 안산 무장애 자락길은 총길이 7㎞로, 구비와 시비 48억여원이 들어갔다. 2010년부터 3년에 걸쳐 만들어졌다. 마사토와 굵은 모래, 나무데크를 활용해 출발한 곳으로 되돌아오는 순환형 길이다. 휠체어가 교차할 때 부딪히지 않도록 50~100m 간격으로 작은 쉼터를 만들었고, 쉬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숲 속 북카페’도 문을 열었다. 자락길 주변으로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안산 허브공원, 봉원사 등이 있어 함께 둘러볼 수 있다. 지난달 한국관광공사는 ‘이달의 추천길 10곳’ 가운데 하나로 안산 자락길을 선정하며 “낮지만 웅장한 산이 내어준 자락길의 한적한 숲을 지나 독립공원으로 되돌아오는 여행은 발로만 느끼기에는 보고 생각할 일이 너무도 많은 길”이라고 설명했다.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은 안산 무장애 자락길에 대해 “걸을 때 발에 걸리는 게 없으면 땅을 쳐다보지 않고 숲을 보게 된다. 그리고 숲을 보다 보면 저절로 치유가 된다. 장애인들이 숲에 오는 것을 보면서 세금 낸 보람을 느낀다는 시민들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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