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사업비 31조원.
‘단군 이래 최대 프로젝트’로 불린 서울 용산개발사업은 2013년 3월 백지화됐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통합개발을 추진한 지 6년 만이었다. 무리한 개발사업의 직격탄을 맞은 서울 용산구 서부이촌동 주민들의 상처는 곪을 대로 곪았다. 용산구 이촌2동 이촌시범아파트단지 벽에는 ‘서민 재산 강탈하는 개발사업 결사반대’라는 커다란 글귀가 여전히 적혀 있다. 코레일과 민간 출자사들은 1조원대의 손실을 둘러싸고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누구도 ‘해법’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에서 서부이촌동이 다시 술렁이고 있다.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가 ‘단계적 용산 개발’을 공약으로 내걸었기 때문이다. 주민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이명숙(59)씨는 “이곳은 가다가 멈춰버린 동네 같다. 개발을 안 할 수 없다. 미래를 내다보는 큰 프로젝트를 원한다”며 반겼다. 서부이촌동 생존권사수연합의 김재홍 대변인은 “주민들과 한마디 대화도 없이 용산 개발을 재추진하겠다고 이야기하는 정몽준 후보의 모습은 오세훈 전 시장을 닮았다. 재원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 없이 말만 앞세우는 것은 계획이 아니라 소설이다. 더 이상 헛공약으로 주민들을 흔들지 말라”고 말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린 뉴타운 정책이 남긴 상처도 좀처럼 아물지 않고 있다. 2006년 지방선거와 2008년 총선 때 특히 수도권에선 여야를 불문하고 ‘뉴타운 공약’을 내놓지 않은 후보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부동산 거품이 빠지면서 뉴타운 공약은 주민들의 삶을 위협하는 재앙으로 변했다.
“대박 터진다고 이야기하더니 쪽박 차게 생겼다. 뉴타운 하면 돈을 벌게 해준다더니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서울 양천구 신정뉴타운 신정2-1 재개발구역 주민 김순자(68)씨는 울분을 토해냈다.
신정2-1 재개발구역에서는 사업비가 애초 시공사가 제시한 금액(1547억원)보다 3배 가까이(4450억원) 늘었다. 조합원 1인당 분담금도 3년 사이 두 배가 늘어 2억원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참다못한 주민들은 조합 해산에 나섰다. 조합원 40%가량이 조합 해산 동의서에 서명했다. 투자 목적으로 집을 산 55%의 외지인을 빼면 이곳에 살던 주민 열에 아홉이 참여한 셈이다. 재개발조합 내 재산수호정화위원회 이계원(58) 대표는 “조합원 총회가 열릴 때마다 사업비가 1000억원가량씩 늘어났다. 삽질 한번 안 했는데 조합에서 쓴 돈이 100억원에 이른다. 정비 사업을 주도한 삼성물산은 모든 책임을 조합에 떠넘기고 ‘나 몰라라’ 하고, 환상을 부추긴 정치권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망가진 삶터를 회복시킬 수습책을 마련하는 일은 더디고 어렵다. 서울시는 2012년 1월 ‘주민 뜻대로’를 원칙으로 ‘뉴타운 재개발 수습방안’을 내놓았다. 전체 606개 구역 가운데 324개 구역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해 289곳에 대한 조사를 마쳤고, 추진위나 조합 등 추진 주체가 없는 125개 구역과 추진 주체가 있는 44개 구역을 해제했다. 올해 2월에는 도시 주거 재생 청사진도 내놓았다.
그러나 신정2-1 구역처럼 엄청난 매몰 비용이 발생한 뉴타운 구역은 여전히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말 국회에서 시공사가 추진위나 조합에 대한 채권(대여금)을 포기하면 세액을 감면해주는 조세제한특례법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시공사들은 매몰 비용 처리를 외면하고 있다.
2006년 지방선거때 뉴타운 공약
신정2-1 재개발구역 사업비 3배↑
조합원 1인당 분담금도 2배 늘어
오세훈 전 시장때 용산개발은
1조원대 손실 둘러싸고 소송전
경남 김해·경기도 의정부·용인
경전철 적자에 시달려
경기도 사정도 마찬가지다. 2009년 시범사업도 없이 23개 뉴타운을 동시다발적으로 지정한 게 화근이다. 주택 경기가 침체되고 수익성이 악화하자 1년여 만에 뉴타운 출구전략으로 정책 방향을 틀었다. 8개 지구가 해제되고 2개 지구가 효력을 잃었다. 고양(원당, 능곡, 일산), 부천(소사, 원미, 고강), 남양주(덕소, 지금·도농, 퇴계원), 평택(서정·신장), 광명(광명), 김포(김포), 구리(인창·수택) 등 13개 지구는 대부분 표류하고 있다.
오세훈 전 시장이 추진한 서울 노들섬, 세빛둥둥섬 개발 사업은 ‘예산과 자원 낭비의 랜드마크’가 됐다. 노들섬 한강예술섬 사업은 예산 551억원이 투입된 뒤 백지화돼 임시 텃밭으로 운영되고 있다. 서울시는 수익성과 공공성을 함께 갖춘 시민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접근성이 떨어져 뾰족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세빛둥둥섬은 민자 사업으로 알려져 있지만 서울시 산하 공기업인 에스에이치(SH)공사의 돈도 들어갔다. 에스에이치공사는 이곳에 128억원을 출자하고 239억원의 대출 보증까지 섰다. 에스에이치공사가 1조3168억원을 투자한 서울 동남권 유통단지 가든파이브도 아직껏 입점률이 80% 선에 머물고 있다.
수천억원의 공사비를 들여 경전철을 개통한 경남 김해시, 경기도 의정부·용인시는 ‘경전철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뻥튀기 수요 예측’에 기대 무리하게 추진한 사업은 결국 ‘세금 먹는 하마’로 전락했다. 정부 예산 2조6759억원을 삼킨 경인아라뱃길(경인운하)은 개통 첫해 물동량이 수요 예측치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친 것으로 드러난데다 관리비만 매년 수백억원씩 쏟아붓고 있다. 무분별한 대규모 개발 공약이 낳은 ‘참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정태우 기자
windage3@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