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광양지역 150개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21일 서울대 남부학술림 광양사무소 앞에서 백운산의 국립공원 지정을 촉구하는 목요집회를 열고 있다. 백운산국립공원지정추진위원회 제공
광양시민들 “백운산을 국립공원으로” 서명 운동
자연을 찾는 이들이 늘면서 국립공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광주 무등산이 국립공원이 되자 전남 광양 시민들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백운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달라며 8만여명이 서명을 했다. 이에 호응해 타당성 조사에 나선 환경부는 시간이 갈수록 시들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유를 짚어봤다.
자연을 찾는 이들이 늘면서 국립공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광주 무등산이 국립공원이 되자 전남 광양 시민들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백운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달라며 8만여명이 서명을 했다. 이에 호응해 타당성 조사에 나선 환경부는 시간이 갈수록 시들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유를 짚어봤다.
“서울대가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백운산은 광양 땅….”
21일 오후 6시 전남 광양시 광양읍 서울대 남부학술림 광양사무소 앞. 퇴근길에 삼삼오오 모여든 시민들이 금세 70여명으로 불어났다. 시민들은 대중가요 ‘독도는 우리 땅’의 가사를 바꿔 부르며 백운산을 국립공원으로 반드시 지정하라고 촉구했다.
광양시민들은 지난 6월부터 석달째 서울대 학술림 앞에서 목요집회를 열고 있다. 집회에는 광양의 시민단체와 의회 등 150개 단체가 돌아가며 참여한다. 왜 서울대 학술림이 전남 백운산에 있고, 시민들은 왜 학술림이 서울대 소유로 넘어가는 것을 반대하는 걸까.
해발 1222m인 백운산은 백두산에서 시작된 백두대간이 금강산, 소백산, 지리산을 거쳐 바다로 이어지는 종점에 있다.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지리산과 연결되어 식물 1000여종, 곤충 1500여종이 서식하는 생태자원의 보고이다. 이런 특성에 주목한 일제가 1912년 동경제국대학 학술림을 이곳에 설치했다. 백두산·금강산과 더불어 한반도에 설치한 3곳 중 하나였다. 일제는 산지 주인들한테 세금을 무겁게 물리는 방식으로 사실상 빼앗다시피 해서 학술림을 조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학술림은 해방 뒤 미군정청이 서울대에 80년간(2026년까지) 대부하는 방식으로 교육과 연구 목적에 활용돼왔다. 근거인 대부계약서는 1948년 정부 수립으로 미군정이 해소되면서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상황이다. 다만 학술림의 소유권은 정부 수립 이후 농림부를 거쳐 문교부로 이관됐고, 현재는 교육부에 넘어가 있다.
시민들은 2010년 서울대 법인화법이 통과된 뒤 서울대가 남부학술림 162.1㎢를 학교 재산으로 무상양도해 달라고 교육부에 요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백운산 지키기’에 나섰다. 광양 전체 면적 458㎢의 18%를 차지하는 80㎢(학술림 중 광양 구역)가 국유지에서 법인화된 서울대로 넘어가면 백운산과 광양시의 미래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이 토지의 가치를 10조원으로 추산하지만, 서울대는 공시지가 500억원 정도로 판단하는 등 인식 차이도 크다.
일제때 도쿄제대 학술림 설치
미군정, 서울대에 80년간 대부
법인화 서울대, 무상양도 요구 광양시, 2012년 ‘국립공원’ 건의
서울대 “학술연구가 더 큰 공익” 시민들 석달째 학술림앞 목요집회
환경부, 국립공원 지정에 신중론
“내년 기본계획 마련뒤 살펴볼 것” 김용성(64) 백운산국립공원추진위원장은 “광양 면적 5분의 1이 넘어간다는 위기감이 확산되면서 시민들이 단결했다. 백운산을 광양에 달라는 것이 아니다. 국유지로 남겨 국립공원으로 보존하자는 것이 시민의 바람”이라고 밝혔다. 광양시는 2012년 5월 시민의 바람대로 백운산 일대 116㎢(학술림 107㎢ 포함)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달라고 환경부에 건의했다. 서울대는 국토의 60%가 산지인 나라에서 정책 수립과 인력 양성을 위해 학술림은 반드시 존치되어야 한다는 태도다. 특히 백운산은 지리적으로 다양한 산림생태계와 종 다양성을 보유하고 있어 산림의 천이(같은 장소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는 식물군집의 변화) 환경을 연구하는 데 필수적인 시설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또 학술림이 국립공원 안에 편입되면 교육과 연구에 제한을 받게 된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남부학술림이 백운산에 3분의 2, 지리산에 3분의 1 걸쳐 있는데 국립공원인 지리산 쪽에선 적잖은 제약을 받은 탓이다. 하지만 이경재(49) 백운산국립공원지정추진위 실무위원장은 “국립공원으로 지정해도 얼마든지 서울대 학술림의 기능을 할 수 있다고 본다. 학술 연구 목적의 허가 신청이 반려된 적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서울대는 100년 동안의 산림 연구가 축적된 공간인 만큼 무상양도해 장기적 연구의 기반을 마련해 달라고 교육부를 설득해왔다. 국립공원이 되면 자연적·인위적 교란과 복원 과정의 변화를 관측하기 위한 골라베기와 모두베기, 식생 제거와 인공 산불 등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논리를 내놓고 있다. 표고·지형·수종 등 변수들을 조작하기 위해 충분한 면적을 확보해야 한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박종영 서울대 남부학술림장은 “산림 연구는 서울대보다는 나라와 사회, 국민을 위해 이뤄진다. 서울대는 공적 법인인 만큼 교육용 재산을 임의로 처분·매각할 수 없는 여러 장치들이 있다. 무상양여로 자유로운 학술 연구가 보장되면 더 큰 공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환경부는 2012년 말 광주광역시의 무등산을 21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 20년 만에 신규 지정의 빗장이 풀리면서 전국적으로 국립공원 지정 요구가 잇따랐다. 이전에는 규제를 의식해 국립공원 지정에 반대하던 주민 여론이 국가의 예산과 인력을 지원받아 지역의 생태경관 자원을 보존하자는 쪽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현재 광양 백운산, 대구 팔공산, 부산 금정산, 울산 영남알프스(가지산), 전남 무안·신안갯벌, 인천 강화갯벌 등지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이 가운데 지난해 국립공원 지정을 위한 타당성 조사용역을 진행하다 돌연 절차가 중단된 백운산의 열기가 가장 뜨겁다. 광양시민 15만명 중 8만3000여명이 국립공원 지정 촉구 서명에 참여했을 정도다. 서명부는 국회와 정부에 전달된 상태다.
주민들의 요구에도 환경부는 백운산의 국립공원 지정 여부에 대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국립공원 지정 요구가 잇따르고 있어 개별적으로 대응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신중론을 펴고 있다. 환경부는 이에 따라 내년 6월까지 국립공원 운영을 위한 기본계획을 짜기로 했다. 여태껏 관리에 치중하다 보니 국토 면적 대비 적정한 공원 면적이 얼마인지, 잠재자원 중 어느 유형에 우선순위가 있는지, 지정을 하는 구체적인 기준이 무엇인지가 정해지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한발 물러선 것이다. 백운산을 두고는 생태자원은 우수하나 문화자원은 부족한 편이고, 토지 소유를 둘러싼 논란이 있어 지정해도 현실적으로 관리가 어렵다는 의견을 내놨다. 최선두 환경부 공원생태과 서기관은 “기본계획이 나온 뒤 개별 요구들을 살피겠다. 하나씩 수용하다 보면 전체 국립공원의 명성과 가치가 낮아질 수 있어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광양/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해발 1218m인 전남 광양 백운산은 해안성 난대림이 발달한 생태자원의 보고이다. 특히 봄에 나는 고로쇠 수액의 품질이 좋기로 이름이 높다. 광양시청 제공
미군정, 서울대에 80년간 대부
법인화 서울대, 무상양도 요구 광양시, 2012년 ‘국립공원’ 건의
서울대 “학술연구가 더 큰 공익” 시민들 석달째 학술림앞 목요집회
환경부, 국립공원 지정에 신중론
“내년 기본계획 마련뒤 살펴볼 것” 김용성(64) 백운산국립공원추진위원장은 “광양 면적 5분의 1이 넘어간다는 위기감이 확산되면서 시민들이 단결했다. 백운산을 광양에 달라는 것이 아니다. 국유지로 남겨 국립공원으로 보존하자는 것이 시민의 바람”이라고 밝혔다. 광양시는 2012년 5월 시민의 바람대로 백운산 일대 116㎢(학술림 107㎢ 포함)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달라고 환경부에 건의했다. 서울대는 국토의 60%가 산지인 나라에서 정책 수립과 인력 양성을 위해 학술림은 반드시 존치되어야 한다는 태도다. 특히 백운산은 지리적으로 다양한 산림생태계와 종 다양성을 보유하고 있어 산림의 천이(같은 장소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는 식물군집의 변화) 환경을 연구하는 데 필수적인 시설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또 학술림이 국립공원 안에 편입되면 교육과 연구에 제한을 받게 된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남부학술림이 백운산에 3분의 2, 지리산에 3분의 1 걸쳐 있는데 국립공원인 지리산 쪽에선 적잖은 제약을 받은 탓이다. 하지만 이경재(49) 백운산국립공원지정추진위 실무위원장은 “국립공원으로 지정해도 얼마든지 서울대 학술림의 기능을 할 수 있다고 본다. 학술 연구 목적의 허가 신청이 반려된 적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서울대는 100년 동안의 산림 연구가 축적된 공간인 만큼 무상양도해 장기적 연구의 기반을 마련해 달라고 교육부를 설득해왔다. 국립공원이 되면 자연적·인위적 교란과 복원 과정의 변화를 관측하기 위한 골라베기와 모두베기, 식생 제거와 인공 산불 등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논리를 내놓고 있다. 표고·지형·수종 등 변수들을 조작하기 위해 충분한 면적을 확보해야 한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박종영 서울대 남부학술림장은 “산림 연구는 서울대보다는 나라와 사회, 국민을 위해 이뤄진다. 서울대는 공적 법인인 만큼 교육용 재산을 임의로 처분·매각할 수 없는 여러 장치들이 있다. 무상양여로 자유로운 학술 연구가 보장되면 더 큰 공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2011년 9월 광양시백운산지키기시민행동이 서울대 앞에서 연 집회에서 시민들이 ‘백운산의 서울대 무상양도 반대’ 등을 주장하고 있다. 광양시민 황상보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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