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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면 광산에 폐기물처리장 10년…주민들 날마다 ‘상복 시위’

등록 2014-08-31 20:47수정 2014-09-01 10:34

지난 28일 충남 청양군 비봉면 강정리에 있는 건설페기물 중간처리장을 권오복 주민대책위원장(왼쪽)과 이상선 청양시민연대 대표가 둘러보고 있다.
지난 28일 충남 청양군 비봉면 강정리에 있는 건설페기물 중간처리장을 권오복 주민대책위원장(왼쪽)과 이상선 청양시민연대 대표가 둘러보고 있다.
[지역 쏙] 석면 공포에 떠는 청양 강정리 주민들

제주 바닷가에 강정마을이 있다면, 칠갑산 자락에는 강정리가 있다. 석면광산에 들어선 건설폐기물 처리장이 주민들의 목숨줄을 갉아먹는데도, 충남도·청양군은 문제 해결 의지가 없다. 참다못한 주민들은 날마다 상복을 입는다.
충남 청양군 비봉면 강정리에 사는 김도연(54) 부녀회장은 2007년 시어머니를 잃었다. “시름시름 앓으시고 대꼬챙이처럼 말라가셨어요. 진통제 없이는 하루도 못 버티고 밤마다 피가 나올 정도로 기침이 심했어요.” 병원을 찾아도 정확한 병명을 알 수 없었다. 김씨의 시어머니는 사망 넉달 전에야 서울 원자력병원에서 중피종암 진단을 받았다. ‘보이지 않는 살인자’인 1급 발암물질 석면이 원인이었다. “시어머니께서 석면광산에 들어선 건설폐기물 중간처리장 바로 옆에 있는 밭에서 수십년을 일하셨어요. 어머니 곁에서 같이 일했던 남편이 가래를 뱉을 때면 요즘도 섬뜩섬뜩해요.”

석면광산에 들어선 폐기물처리장
주민들은 10여년간 위험성 몰라
석면질환 앓자 대책 요구했지만
청양군 외면…충남도 사태해결 방관

피해 인정받은 주민 10명중 5명 숨져
폐암 사망자 35명…전국 평균 300배
노인들, 공장 감시·1인 시위 등 계속
“허가취소·폐광조처·정밀검진” 요구

■ 석면광산에 골재 파쇄 공장이? 석면광산에 건설폐기물 중간처리장 같은 비산먼지 유발 시설이 들어선 곳은 전국에서 이곳뿐이다. 2001년 ㅂ환경이 공장을 가동하면서 마을은 서서히 병들어가고 있다. 주민 이기태(80) 할아버지는 2011년 4월 석면폐증 2급 진단을 받았다. 조금만 걸어도 목구멍이 막힐 것처럼 숨이 가쁘다. 오토바이 없이는 마실조차 못 다닌다. 병원 처방전을 갖고 보건소에 가면 약값의 일부를 지원받지만, 그렇게 다니는 게 되레 더 힘들어 그냥 제 돈 주고 약을 살 수밖에 없다. “기침이 너무 심해서 피를 세숫대야 한가득 토하고 119 응급차에 실려간 적도 여러번이여.” 이씨처럼 한국환경공단으로부터 석면 피해 인정을 받은 주민은 10명이고, 5명은 이미 숨졌다.

그러나 주민들이 올해 들어 직접 조사한 석면 피해 상황은 공식 통계를 훌쩍 뛰어넘는다. 강정리 주민들이 인근 녹평1·2리까지 아울러 주민 500여명을 일일이 찾아 확인해보니 폐암으로 숨진 경우가 35명에 이르렀다. 석면 질환을 앓는 환자 수의 전국 평균이 인구 10만명당 2명 안팎인 데 견줘, 이 지역은 300배 이상 높은 수치다. 마을에서 평생을 살아온 노형식(72) 노인회 총무는 걷거나 숨 쉬는 것 자체가 버겁지만 아직도 석면 피해 인정조차 못 받고 있다. 이태연(65) 이장은 “하루하루 사는 게 죽은 목숨이다. 오죽하면 상복을 입고 1인시위를 하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 무책임·면피 행정의 ‘선진 사례’ 공장이 들어선 지 10여년이 지나도록 주민들은 석면이 그렇게 무서운지 몰랐다. 지난 25일 충남도청에서 열린 ‘강정리 석면·폐기물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토론회’에 찾아간 주민 50여명은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의 설명을 듣고서야 자신들이 날마다 들이마신 공기 속에 석면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28일 강정리 마을회관에서 만난 주민들은 “단 한 번도 군청에서 이런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며 가슴을 쳤다.
지난 28일 건설폐기물 중간처리장에 쌓인 폐기물 더미. 폐기물 매립이 금지됐지만 이날도 대형 화물차가 폐기물을 부려놓고 갔다.
지난 28일 건설폐기물 중간처리장에 쌓인 폐기물 더미. 폐기물 매립이 금지됐지만 이날도 대형 화물차가 폐기물을 부려놓고 갔다.

청양군의 행태는 주민들 분노에 기름을 붓고 있다.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선거운동 기간 내내 이석화 청양군수는 강정리를 단 한 차례도 찾지 않았다. 1표가 절박한 선거판에서, 강정리 주민 279명은 그의 눈 밖에 있었다. 선거에서 당선된 뒤 읍·면 순방에서도 이 군수는 강정리를 외면했다. 정송 청양군 부군수는 공동토론회 자리에서 “주민들이 힘을 모아주면 중앙정부에 해결을 요구하겠다”고 말해 주민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그는 이전에 군에서 ㅂ환경과 관련된 환경관리 업무 책임자이기도 했다. 그동안 군에서 ㅂ환경에 내린 행정처분은 영업정지 2차례와 과태료 수백만원이 전부다.

안희정 충남지사와 충남도의 방관도 사태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주민·시민단체가 힘을 모아 충남도에 주민감사를 청구했고, 올해 2월 도 감사위원회에서 감사를 벌였다. 그러나 주민들이 업체의 석면·폐기물 불법매립 의혹을 제기한 곳들에 대한 굴착조사도 없이 감사를 끝냈다. 감사기간은 고작 4일이었다. 주민들은 “전국 광역시·도 가운데 처음 독립기관으로 감사위원회를 만들었다는 충남도의 자랑은 헛소리에 불과하다”고 입을 모았다. 부실감사 결과에 분노한 주민들이 안희정 지사한테 청양군이 ㅂ환경에 합당한 지도·점검 및 조처를 하도록 지방자치법에 근거한 직무이행명령을 요청했다. 직무이행명령이 이뤄졌지만, 충남도는 다섯달 넘도록 청양군에 회신 기한을 2차례 연장해주는 데 그쳤을 뿐 지방자치법에 규정된 행정대집행은 손도 안 대고 있다. 김찬배 충남도 행정팀장은 “8월31일까지 군에서 회신을 하게 되면 받아본 뒤 대책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 당장 공장 폐쇄, 안전한 폐광 조처해야 주민들은 7월8일부터 두달 가까이 충남도청과 청양군청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해 봄부터 공장이 내려다보이는 야산에 초소를 마련해 공장의 폐기물 불법매립을 감시한 지도 1년이 훌쩍 넘었다. 권오복(56) 주민대책위원장은 “농사일도 바쁘고 몸도 불편한 어르신들이 조를 정해서 매일 아침 7시30분부터 저녁 5시까지 야산 초소에서 공장을 감시한다”고 말했다.

주민·시민단체는 공장의 즉각 폐쇄와 안전한 폐광 조처, 주민 건강 정밀검진 등을 요구하고 있다. 충남도청 공동토론회에서 최예용 소장 또한 “업체 허가 취소와 안전한 폐광 조처, 주변 환경 복원과 주민 건강 모니터링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주민들과 지역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등 150여명은 지난 29일 충남도청과 청양군청에서 인간띠를 이어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이상선 청양시민연대 대표는 “충남도와 청양군은 주민 생명보다 업자의 이윤 논리에 포섭돼 주민감사청구와 직무이행명령 같은 제도까지 조롱하며 주민을 내팽개쳤다. 행정 혁신을 표방하는 안희정 지사는 언제까지 업체와 행정기관의 유착 의혹을 방관할 것인가”라고 말했다.

청양/글·사진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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