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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게 물들인 한지에 마음 적어 눈물 ‘뚝’…평생 짐을 털어놓다

등록 2014-09-04 20:59수정 2014-09-11 16:21

50~70대 노인들로 이뤄진 ‘내 이름이 꽃이 되다’ 회원들이 4일 오후 대전 막걸리집 ‘내집’에서 한지에 쓴 편지 작품을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50~70대 노인들로 이뤄진 ‘내 이름이 꽃이 되다’ 회원들이 4일 오후 대전 막걸리집 ‘내집’에서 한지에 쓴 편지 작품을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대전 대덕구 평생학습원
‘내 이름이…’ 50~80대 수강생들
막걸리집 사랑방에 모여
편지글 읽으며 떠들썩
“배우기보다 공유가 목표”
“평생 의절한 오빠지만 세월이 지나니 혈육이 뭔지 다 용서하고 만나고 싶어.”

편지를 읽던 이은자(57)씨는 가슴이 먹먹하다며 잠시 숨을 골랐다. 이씨는 “재혼한 오빠는 새로 꾸린 가정만 챙겼다. 첫 결혼에서 얻은 아들이 잘못돼 세상을 떠났어도 나타나지 않아 연락을 끊었다”고 한 맺힌 가정사를 털어놓았다. 어릴 적 별명이 ‘부뜰이’였다고 고백하자 함께 자리한 회원들은 서로 어릴 적 기억을 이야기했다. 담담하던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4일 오후 1시. 대전시 중구 대흥동 막걸리집 ‘내집’ 사랑방은 예술과 만난 50~80대 청춘들의 작품 전시장이 됐다. 곱게 물들인 한지에 쓴 편지가 이날의 작품이다. 이들은 대전 대덕구 평생학습원의 창작예술 프로그램 ‘내 이름이 꽃이 되다’를 듣는 50~80대 수강생 12명이다. 지난 3월 개강한 이 프로그램은 박석신(48) 화백의 지도로 그동안 멋진 호를 짓고, 문패도 만들었다. 이은자씨는 어릴 때 별명에서 딴 ‘부들’을 호로 정했다.

모란 김우란(83) 할머니는 최근 외지로 부임한 아들의 건강과 원활한 업무를 바라는 마음을 편지에 담았다. 샛별 한금석(79) 할머니는 시집 안 가는 골드미스 둘째 딸에게 편지를 썼다. “어머, 따님이 39살이에요? 주변에 좋은 신랑감 있는데.” 맞은편에 앉아 있던 뜨락 윤석란(66)씨가 중매를 서겠다고 했다. 여기저기서 “잘됐네”라는 탄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탁심 윤표(67)씨와 청산 유충근(70)씨는 지난해 평생학습원에서 컴맹 탈출의 소원을 이룬 동기생이다. “이름이 꽃이 되는 강의라는데 뭔지 모르지만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수강생이 다 찼다고 해서 ‘빽’ 써서 들어왔어요.” 온유 장금민(56)씨도 “나이 제한에 걸려 뒷문으로 들어왔다”고 고백한다.

다소곳하게 앉아 있던 돌꽃 송석화(52)씨가 편지를 들었다. “딸아. 이제는 엄마 울지 않고 씩씩하게 잘 지낼게….” ‘뚝’ 떨어진 눈물이 한지 편지를 적셨다. 또다시 모임이 숙연해진다. 지난해 12월 갑자기 아들이 세상을 뜨자 엄마는 눈물로 지새웠으며, 딸은 우는 엄마를 걱정해 왔다.

청산 유충근(70)씨는 “편지 한 장이 참 많은 걸 알게 한다. 편지지 물들일 때만 해도 어릴 때 꽃물 들이던 기억을 떠올리며 재미있기만 했는데 회원들이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온 짐들을 털어놓는 것인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12편의 편지는 모두의 가슴에 작품으로 새겨졌다. “이 강좌를 통해 모두가 행복하고, 인연을 맺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가르치고 배운다기보다는 함께 추억을 공유하고 마음을 모아 목표를 이루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박석신 화백의 말이다. 이 강좌는 9월 말에 끝난다.

글·사진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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