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서울 성북구 성북동 정법사에서 바라본 세중 옛돌박물관의 모습. 지난달 녹지공간의 원지형을 회복하라는 서울시 도시공원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옥외시설물을 정비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국가지정 문화재인 북악산 훼손과 특혜 논란 속에 개발계획이 승인된 ‘세중 옛돌박물관’의 공사 과정에서도 위법과 편법, 자연 훼손이 저질러진 것으로 드러났다. 이 박물관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천신일 세중 회장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세중문화재단 소유다.
지난 22일 서울 성북동 330-1, 330-605번지에선 박물관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1만4251㎡ 규모의 박물관 터에 문인석 등 석조물을 전시하는 전시관 건물은 거의 다 지어졌고, 옥외시설을 정비하는 중이다. 이 박물관은 이명박 서울시장 때인 2002년 12월 건립계획이 승인됐으며, 승인 직후 이 일대가 각종 규제가 좀 더 쉽게 풀리는 공원지구로 지정되는 등 특혜 의혹을 받아왔다.(<한겨레> 2009년 5월22일치 15면)
그러나 2008년 11월 착공 뒤 저질러진 위법 행위는 지난해에야 적발됐다. 건축물 무단 증축과 구조물 무단 축조(건축법 위반), 허가 지역 외 2200㎡의 토지 형질변경과 수목 훼손(개발제한구역 특별조치법 위반) 등의 혐의로 시공업자와 감리 책임자가 각각 100만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감리 책임자는 1년 동안의 영업정지 처분도 받았다. 건축주인 천 회장은 처벌을 면했다. 시공업자한테 위법 행위를 하지 말라고 요구한 내용을 공증해 놓았기 때문이다.
‘자연 훼손을 최소화해 박물관을 지으라’는 승인 조건도 지켜지지 않았다. 지난달 19일 서울시 도시공원위원회는 세중 옛돌박물관을 포함한 북악산도시자연공원 조성계획 변경안을 심의했다. 전시관과 관람로 위치 등이 일부 변경됐기 때문이다.
이날 회의록을 보면, 한 위원은 “항공사진을 보면서 기절할 뻔 했다. (허가) 심의를 할 때는 위에는 자연지형을 그대로 두고, 건축물만 도로변에 들어가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지금 항공사진을 보면 그 일대를 거의 다 밀어버리고 나중에 그야말로 조경만 한 수준이다. 왜 기존 지형을 다 뭉개고 공사를 했나”라고 따져 물었다. 또 다른 위원은 “사설 박물관을 내주기 위해 들러리 선 것 같은 형상이 됐다”고 말했다. “지금 (훼손된 자연을) 치유할 수 없는 게 문제”라는 발언은 녹지 원형이 훼손된 정도를 가늠케 한다.
서울시와 성북구는 ‘이제 와서 어쩔 수 없다’는 태도다. 이날 조건부 결정을 내린 서울시는 재단 쪽에 구조물 설치를 지양하고, 계곡을 덮고 있는 복토를 제거해 원상복구할 것과 박물관 운영의 공공성을 높이라고 요구했다. 성북구 관계자는 “이제 매듭을 지을 때”라고 말했다. 성북구는 이곳을 가구박물관, 간송미술관 등과 연계해 역사문화지구로 조성할 계획이다.
공사 과정을 잘 아는 김아무개씨는 “나무를 지나치게 베어내고 개울을 메우는 등 허가와 다르게 공사가 진행된 부분이 많다. 서울시의 조건부 결정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사 과정을 지켜본 한 인근 주민은 “자연을 훼손해가며 이런 시설을 설치하는 건 보통 사람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권력형 박물관 아니냐”고 말했다.
천신일 세중 회장은 “시가 요구한 보완 조처를 이행하고 박물관을 내년 봄 개관해 시민들에게 무료로 개방하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정태우 기자 windage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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