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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네 덕에, 구례가 웃는당께

등록 2014-10-19 20:35

전북 남원시 산내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지난 15일 전남 구례자연드림파크 체험방에서 고기를 다져 넣어 만든 소시지를 중간중간 묶어가며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전북 남원시 산내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지난 15일 전남 구례자연드림파크 체험방에서 고기를 다져 넣어 만든 소시지를 중간중간 묶어가며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공장인지 공원인지 ‘구례드림파크’

지난 15일 오전 11시 전남 구례군 용방면 구례자연드림파크. 널찍한 체험실 안에서 전북 남원 송동초등학교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아이들은 점심때 먹을 피자를 만드느라 바쁘게 손을 놀렸다. 재잘대는 동안에도 우리밀 반죽 위에 소스를 바르고, 치즈·고기·버섯 따위 토핑을 얹는 데 정성을 쏟았다. 자그마한 그릇마다 손수 빚은 피자들이 서로 섞이지 않도록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체험용 노란 두건을 두른 김보은(11·송동초등 4)양은 “‘파티시에’(오븐에 굽는 음식이나 페이스트리, 디저트 등을 만드는 요리사)가 되려면 첫 작품을 잘 만들어야 한다. 막 구워낸 피자 맛이 어떨까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며 웃었다. 새우피자를 좋아하는 김홍현(11)군도 “반죽이 참 부드럽다. 만드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막내인 하송현(6)양은 간신히 피자를 만들어 오븐에 넣고서야 손부채를 부치며 홀가분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쿱생협, 버려진 농공단지에
공방·영화관·카페테리아 들어선
호남 체험·생산·물류단지 세워
유치원생부터 서울시 구의원까지
공방 견학하고 피자만들기 체험
구례군 “3만 군민들에 희망 생겨”

청정한 지리산과 섬진강 사이에 자리잡은 구례자연드림파크가 연일 붐비고 있다. 이곳은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하 생협)인 아이쿱(iCOOP)이 조성한 호남 쪽의 친환경 유기식품 생산·물류단지이자 체험형 테마파크다. 2011년부터 조합원 20만명의 출자금 452억원을 투자해 2012년엔 152억원, 지난해엔 247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숲 속에 자리잡은 면적 14만4000㎡(4만5000평)의 단지 안에는 빵·라면·과자·만두·김치 등을 생산하는 공방 19곳이 들어섰다. 경쟁과 이윤보다 상생·협동·대안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직원과 주민이 함께 쓰는 입체(3D) 영화관, 카페테리아, 친환경식당, 게스트하우스, 피트니스센터 등도 지었다.

견학과 체험을 위해 이날도 전북 남원의 산내초등학교 학생 15명과 송동초등학교 학생 52명, 서울 마포에서 구의원 16명, 부산 동래에서 생협 조합원 102명 등 모두 185명이 단지를 찾았다. 이달에만 이미 638명이 다녀갔고, 1796명이 예약한 상황이다.

이날 정오께 도착한 서울 마포구의원들은 생협이 지향하는 사회적 경제 활동들을 담은 영상을 본 뒤 라면 공방을 견학했다. 라면 공방은 단지에서 가장 인기있는 견학 코스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라면 공장은 기술 유출과 생산 차질, 식품 위생 등을 내세워 공개를 꺼려 전체 공정을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곳에선 우리밀로 하는 반죽, 면 제조, 증숙, 유탕, 냉각, 포장 등 라면 만드는 과정을 유리창으로 들여다보며 청결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한일용(51) 서울 마포구의원은 “도시 주부들이 갈수록 먹을거리의 안전에 민감해지고 있다. 청정지역 생산자와 도시지역 소비자를 연결할 고리를 찾아보려 한다”고 말했다.

구례자연드림파크는 조합원한테 주문받은 식품을 수집·가공·생산·배송 등의 방법으로 신속하게 공급하는 것을 1차 목표로 한다. 이 기능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현지에서 농산물을 사들이고,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또 문화공간을 펼치고 산부인과·소아과·피부과 등 의료기관 유치를 지원하는 등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우선 자연과 조화를 이룬 조경과 건축이 눈에 띈다. 분양을 못해 활로를 찾지 못하던 옛 용방농공단지 전체를 분양받아 계획적으로 개발한 덕분에 단지 안은 공원이나 학교 같은 느낌을 준다. 중앙에 자리잡은 잔디구장을 비롯해 분수대와 그늘막이 설치되어 편안함을 준다. 이름도 산단 대신 파크, 공장 대신 공방으로 붙이는 등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을 썼다. 대량으로 생산한다는 선입견을 주는 공장을 대신해 정성껏 소량으로 생산한다는 뜻으로 붙인 공방은 방문자들한테 친근감을 준다. 입주하는 공방마다 작업공간을 밖에서 들여다볼 수 있도록 견학통로를 만드는 데 적지 않은 추가 투자를 해야 했다.

이날 오후 3시께 30대 주부 6명의 자전거 행렬이 눈에 띄었다. 읍내에서 이곳까지 아이를 데리고 소풍을 나온 이들은 안내센터 뒤쪽 그늘막에서 쉬며 한동안 담소를 나눴다. 시집온 지 14년째라는 주민 고선비(36·구례읍 봉동리)씨는 “자전거로 한 시간쯤 걸린다. 가끔 와서 영화도 보고 커피도 마시며 기분 전환을 한다”고 말했다. 김경미(38·구례읍 봉북리)씨는 “외지에서 온 친지들이 숲 속에 카페와 식당, 영화관이 있는 걸 보고 놀라더라”고 전했다.

지난 4월 개관한 영화관은 구례뿐 아니라 남원과 경남 하동 등지에서 관람객을 모으고 있다. 15억원을 들여 지은 영화관은 시설이 도시 못지않다. 전국에서 유일하다는 국산 옥수수로 만드는 팝콘도 자랑거리다. 주말 6회, 주중 5회를 상영하는 70석짜리 2개 관이 한 달 동안 9260명을 동원했다. 영화를 보러 왔다가 이 단지의 존재를 알게 된 이들도 적지 않았다. 견학하러 왔다가 영화관 로비에서 쉬던 산내초등학교 최서연(12)·이여울(12)양도 “명색이 시인 남원보다 군인 구례의 영화관이 훨씬 좋아 부럽다”고 입을 모았다. 민경진(45) 센터장은 “적자를 감수하고 펼친 문화사업이었다. 인근 3개 군에서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어 예상보다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주민 소득에 직결되는 현지 농산물 구매와 주민 일자리 창출도 성과를 내고 있다. 이 단지는 인구 2만7000여명이 대부분 1차 산업에 의지해 사는 구례에서 가장 큰 사업체다. 구례에선 어렵게 농사를 지어도 판로가 없어 고민이 컸다. 이 단지가 들어서면서 친환경으로 재배만 하면 쌀·밀·감자·고사리·취나물·쑥부쟁이 등 농산물을 걱정 없이 팔 수 있게 됐다. 벌써 연간 2억원어치의 원·부자재 20여개 품목을 구매하고 있지만 지역에 친환경 농산물이 없어서 못 사는 상황이다.

현지 주민을 직원으로 우선 채용한다는 원칙도 잘 지켜지고 있다. 이 덕분에 공방 직원 340명 중 90%가 현지 주민이다. 지난해 구례자연과학고 제빵학과 졸업생 81명 중 40명이 취업했는데 그 가운데 20명이 이 단지에서 일하고 있다. 시급을 올해는 6500원, 내년은 7000원으로 책정해 생활급 임금 수준을 보장하고 있다. 정부가 책정한 내년도 최저 시급 5500원보다 27% 높다. 제빵 공방 직원 김혜진(47·광의면 연파리)씨는 “출근하는 데 8분 걸린다. 동네에서 7~8명이 함께 일하러 온다. 근무환경도 좋고, 수입도 괜찮은 편”이라며 웃었다.

생협은 구례 학생들한테 지난해 장학금 3700만원을 전달하고 제빵학과에는 기술 지도를 하는 등 지역 인재를 키우는 데도 정성을 들이고 있다.

연말까지 61억원을 들여 인근 문척면 안지리 터 2만8997㎡에 41가구가 거주할 전원주택 단지를 조성한다. 단지에서 10㎞ 떨어진 이곳에 이주를 희망한 조합원은 벌써 30가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례군은 생협이 친환경 식품 생산뿐 아니라 체험·문화·의료·교육·주거 등으로 분야를 확대하자 반색하고 있다. 애초 구례군은 4년 전 용방농공단지에 생협을 유치하며 7억원을 지원했다. 김영택(57) 군 투자유치계장은 “무엇보다 인구 3만명을 회복하는 데 희망이 생겨 기쁘다. 주민들이 며느리를 잘 얻은 것같이 기분 좋아한다. 군에서도 친환경 농산물의 재배면적을 확대하도록 설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항식(54) 구례자연드림파크 경영이사는 “이 단지가 조합원들한테는 긍지를, 지역민한테는 희망을 주고 있다. 구례에서 뿌리를 잘 내리고 있는 만큼 이곳을 본보기로 영남과 충청에도 사회적 경제를 실천할 둥지를 틀 계획”이라고 밝혔다.

구례/글·사진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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