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살 청춘이 인사드립니다.”
28일 오후 4시, 손정자 씨가 대전 충남대 정심화국제문화회관 백마홀 무대에 섰다. 스포트라이트가 빨간 와이셔츠에 흰 넥타이, 푸른 재킷에 분홍색 모자를 쓴 그를 비췄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연 ‘2014 두근두근 늦바람 청춘제’의 마지막 순서로 등장한 그는 연극배우·아코디언 연주가·실버오케스트라 드러머로 인생 3막을 열고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의 연극배우 인생은 67살이던 2008년, 대전시립복지관에서 공연한 연극 <신고려장>의 약장수 역을 맡으면서 시작됐다. “자, 이 약 한번 잡숴봐. 할머니가 이뻐져. 저 할아버지 안색 좋은 걸 보니 어제 효험 보셨구만.” 아직도 대사를 줄줄 왼다. 약장수 소품으로 아코디언을 매야 하는데, 이왕에 하는 거 배우기로 했다. 그는 그때 무대에서 김수희의 ‘남행열차’를 기막히게 연주한 덕에 연극 주인공들을 제치고 일약 대전복지관의 스타로 떠올랐다. 내친 김에 다음해 창단한 대전복지관 실버오케스트라의 단원도 됐다.
“악기는 다 있는데 드럼만 1년이 지나도록 연주자가 없었어요. 내가 배워보자 싶었죠. 딸이 드럼세트를 사줘서 문화센터 등을 전전하며 드럼을 배웠죠.” 그런데 드럼을 치려니 두 팔 두 다리가 동시에 따로 놀아야 하는데 나이 탓인지 실력이 영 늘지 않았다. 팔 힘을 키우려고 아령과 철봉을 하고, 자다 말고 일어나 베개 놓고 두드리고, 식당에 가서는 방석 놓고 젓가락을 휘두른 지 1년 남짓, 거짓말처럼 손과 발의 리듬이 맞기 시작했다. 마침내 실버오케스트라의 드러머로 전직했다. 그는 첫 연습날 남진의 ‘님과 함께’로 데뷔했다.
그는 10여년 전 약사이던 남편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3남매도 모두 가정을 이룬 뒤 혼자 살면서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 복지관을 찾았다. “연극과 연주를 배운 뒤 다른 이들에게 웃음을 나눠 주면서 하루하루가 즐겁습니다. 50곡 외워서 연주해 80살에 텔레비전 프로그램 ‘아침마당’에 출연하는 게 꿈입니다.”
이날 전국 21개 복지관에서 모여든 또래 관객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자 그의 얼굴은 소녀처럼 붉게 물들었다.
대전/글·사진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