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광주박물관 서거 300년 전시
조선후기 서민일상 살펴 볼 기회
조선후기 서민일상 살펴 볼 기회
“전문 화원이 없던 남도에서 어떻게 걸출한 화가들이 나왔을까?”
국립광주박물관이 최근 개막한 공재 윤두서 특별전에 가보면 궁금증을 풀 수 있다. 윤두서(1668~1715)의 서거 300돌을 맞아 열린 전시에는 조선 최고로 꼽히는 그의 <자화상>(국보 240호)이 위엄 있게 관객을 맞이한다. 기품을 돋보이게 하는 구레나룻은 마치 살아 꿈틀대는 듯하다. 육안으로 볼 수 없지만 첨단 장비로 촬영해 살려낸 귀와 옷의 선들도 입체감을 더해준다. 윤두서는 백동 거울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본 ‘자화상’뿐 아니라 ‘나물캐기’와 ‘경전목우도’ 등을 그려 300년 전에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서민의 일상을 화폭에 담았다.
윤선도의 증손이던 윤두서는 사생과 관찰을 중시하는 필법으로 회화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이어 아들 윤덕희는 ‘말을 탄 미인’, 손자 윤용은 ‘강가의 정자에서 달을 감상하다’ 등의 수작을 남겼다. 해남 윤씨 종가인 녹우당을 중심으로 일가를 이룬 이들 3대의 그림은 ‘윤씨가보’(보물 481호)라는 화첩으로 전해졌다.
윤씨 일가의 화맥은 외증손인 다산 정약용을 통해 진도의 소치 허련(1809~1892) 일가로 이어졌다. 강진에 유배됐던 정약용은 해남 일지암의 초의선사와 교유했고, 초의선사는 일찍이 재능을 보인 허련에게 그림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허련은 28살 때 초의선사의 소개로 녹우당의 ‘고씨화보’와 ‘공재화첩’을 빌려 보며 그림에 법이 있음을 깨달았다. 이후 추사 김정희의 문하에 들었던 허련은 진도 운림산방에서 창작에 몰두해 조선 말기의 대표 화가로 우뚝 섰다. 그의 필법은 아들 허형(1862~1938), 손자 허건(1908~1977)과 방손 허백련(1891~1977) 등으로 계승되며 남종화의 산맥을 형성하게 된다.
전시는 내년 1월18일까지 이어진다. 수능시험 이후엔 고3 학생들을 대상으로 ‘윤두서: 자화상의 비밀’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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