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션 관리 허술…주인은 기초의원
전국 2만개 펜션·민박 화재 무방비
전국 2만개 펜션·민박 화재 무방비
사상자 10명이 발생한 전남 담양 ㅎ펜션은 화재에 무방비 상태였던 것으로 16일 드러났다. 불이 난 바비큐장은 무허가로 지은 불법 건축물인데도 9년 넘게 아무런 행정제재를 받지 않았고, ‘일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16개월 동안 소방점검조차 받지 않은 상태였다. 호텔이나 콘도 등에 견줘 규모가 적고 자본이 영세한 펜션과 민박은 관련법상 소방 규제가 미약하고 행정당국의 지도 감독이 허술한 편이다.
ㅎ펜션은 2005년 5월 숙박업 허가를 받아 본관 등 12개 건물을 두고 영업을 해왔다. 하지만 이번에 불탄 부속건물인 바비큐장과 공동취사장은 건축물대장에조차 올라 있지 않은 무허가 불법 건축물이다. 무허가이기 때문에 숯불 등으로 고기를 굽는 장소인데도 너와를 얹은 지붕, 억새발로 장식한 천장, 샌드위치패널로 만든 내벽 등 가연성 물질이 가득해 ‘화약고’나 다름이 없었다.
이강인 전주대 소방안전공학과 교수는 “바비큐장 천장에 불쏘시개 구실을 할 수 있는 억새를 썼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펜션들이 비용을 줄이려고 싼 건축재료를 쓰기 때문에 화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담양군은 9년 넘게 운영해온 이 펜션의 건축물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해왔다. 군 관계자는 사고 이후 “일정 규모 이하의 건축물은 신고를 받아 건축물대장을 만든다. 바비큐장은 건축물 신고를 하지 않고 임시시설물로 쓴 것 같다”고 말했다.
소방시설 설치 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소방안전법)을 보면, 펜션은 손님에게 숙박시설과 취사시설을 제공하는 서비스업이어서 규모에 따라 소화설비와 경보설비 등을 갖춰야 하는 특정소방대상물이다. ㅎ펜션은 대지 1236㎡, 연면적 415㎡, 건축면적 315㎡ 규모로 건축물 대장에 올라 있다. 건축물의 연면적이 1000㎡ 이상이면 종합적인 안전점검을 받아야 하고, 1개 동의 연면적이 400㎡ 이상이면 소화기와 경보기, 감지기 등을 갖춰야만 한다.
하지만 ㅎ펜션은 소규모여서 소화기 10대만 갖추면 되었고, 경보설비와 피난설비 등은 설치할 의무가 없었다. ㅎ펜션은 2012년 8월과 2013년 7월 담양소방서의 소방점검에서 합격 판정을 받았다. 소화기의 압력 눈금과 노즐 부분을 확인하는 간단한 점검이었다. 이런 형식적인 소방점검도 올해는 없었다. 생존자들은 불이 난 바비큐장 안에는 소화기가 없었고, 다른 건물에서 황급하게 들고온 소화기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담양소방서 쪽은 “지난해 12월 점검 계획을 짜면서 점검한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은 ㅎ펜션은 제외했다. 관내에 점검 대상이 3400여개나 되기 때문에 일손이 턱없이 부족하다. 전수조사보다 한해 10% 안팎 표본을 뽑아 정밀하게 점검한다”고 밝혔다.
정기성 원광대 소방행정학과 교수는 “소방관계법이 많은데 대부분 건물의 규모(면적·층수·수용인원 등)에 따라 점검을 한다. 소방 규제 대상을 더 늘려야 안전을 강화할 수 있지만, 지금 정치권과 사회분위기는 규제를 풀자는 쪽”이라고 지적했다.
객실이 17개인 ㅎ펜션은 농어촌정비법 규정에 따라 허가를 받아야 하는 숙박형 펜션으로 분류된다. 객실이 7개 이하면 신고만 하면 되는 농촌형 민박으로 분류된다. 농어민의 소득 증대를 위해 전국에서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농어촌 민박은 숙박형 펜션보다 창업이 쉽다.
농어촌민박은 2012년 2만2334개로 늘어났고, 지역별로는 강원·전남·경남·경기 등지에 많이 있다. 농어촌민박은 숙박시설이 아니어서 공중위생법과 소방안전법의 적용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화재와 사고에 취약하다.
실제로 전국의 펜션과 민박에서 화재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7월5일에는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강촌리의 한 펜션에서 부탄가스가 폭발해 손님 3명이 다쳤다. 지난 1월3일에는 제주시 애월읍 181㎡ 면적의 통나무 펜션에서 불이 나 투숙객 20여명이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해 11월 “각종 규제를 피하기 위해 농어촌 민박으로 신고한 뒤 실제로는 대형 펜션으로 운영하는 숙박시설이 늘고 있다. 농어촌민박사업의 관리를 개선할 방안을 마련하라”고 농림축산식품부, 문화체육관광부, 공정거래위원회 등에 권고한 바 있다. 업소 이름이나 누리집에서는 펜션과 민박이 혼용되어 손님들이 구분하기 어렵다.
이낙연 전남도지사는 이날 현장을 방문해 “유사한 관광숙박시설의 운영 실태를 집중적으로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담양/안관옥 박임근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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