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산단 노동자, 가스폭발 피해
사측 “사정 어렵다” 부담 중단
피해자 넉달간 9차례 피부이식
“밀린 병원비, 카드빚으로 막아”
사측 “사정 어렵다” 부담 중단
피해자 넉달간 9차례 피부이식
“밀린 병원비, 카드빚으로 막아”
“화마보다 무서운 게 인심이에요.”
25일 부산 베스티안병원 704호실에 입원중인 산재 환자 최재남(38·전남 순천시)씨가 화상으로 흉해진 피부를 내려다보며 한숨지었다. 폭발 사고로 전신 65%에 2~3도 화상을 입은 최씨는 넉달 동안 9차례 피부이식 수술을 받아야 했다. 수술은 한차례에 3~4시간이 족히 걸렸다. 녹초가 된 그는 회복할 만하면 다시 수술을 받는 생활을 반복했다. 수술이 뜸할 때는 참을 수 없는 가려움에 밤낮으로 시달려야 했다. 온몸이 불길에 휩싸이던 끔찍한 순간이 떠올라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사고 충격과 수술 공포에 짓눌린 그는 자꾸 발작을 일으키다 끝내는 정신과 치료까지 받는 처지가 됐다.
여수산단 정비업체인 국토건설의 노동자인 최씨는 지난 7월3일 엘지화학 이피에스(EPS·스티로폼 원재료)공장 안의 배수로 확장 공사에 참여했다. 공장 바닥의 콘크리트를 그라인더로 깨던 중 인근 배관에서 새나온 가스가 폭발하는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동료 김아무개씨가 숨지고, 최씨는 화상 전문병원인 이곳으로 옮겨졌다.
사고 직후 회사는 “책임지고 치료를 해주겠다”고 가족들을 안심시켰다. 최씨는 산재로 인정을 받아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고 있다. 회사는 초기엔 성의를 보였다. 7~8월분 치료비 중 비급여부분(본인부담금)까지 두말없이 부담을 했다. 하지만 10월 초 태도가 달라졌다. 회사 쪽은 “사정이 어렵다”며 “8월26일분까지만 지원하겠다”고 통보했다.
눈앞이 캄캄해진 가족들은 국토건설과 원청인 엘지화학에 여러 차례 지원을 호소했다. 야속하게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답변을 기다리는 동안 본인 부담 병원비는 9월분 793만원과 10월분 356만원이 밀렸다. 치료용품비 509만원을 합치면 당장 필요한 비용이 1659만원에 이르렀다. 하지만 최씨가 다달이 받는 요양비는 170만원이 고작이었다. 다급해진 최씨는 최근 아내의 신용카드로 1000만원을 연리 22.5%에 빌려 병원비를 냈다. 가족들은 “다친 것도 억울한데 제 돈을 내고 치료를 하고 있다. 회사도, 원청도, 나라도 모른다니 이를 어찌 해야 하느냐”고 답답해했다. 가족들은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적어도 내년 7월까지는 입원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카드론으로 막았지만, 11월분부터는 어찌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이강용 국토건설 이사는 “액수가 큰 수술비 등은 대부분 지원했다. 산재 승인이 난 만큼 우선 요양비로 치료하고 나중에 퇴원할 때 민사로 정리하자는 취지로 협상해 왔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이병훈 노무사는 “화상의 경우는 건강보험의 보장이 약한 제도적 허점이 있다. 이로 인해 화상 산재노동자들이 한달에 수백만원씩 본인부담금을 떠안는 등 고통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지검 순천지청은 안전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폭발사고를 일으킨 국토건설과 엘지화학의 임직원들을 업무상 과실치사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 혐의로 수사중이다.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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