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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현장에서] 제주도-의회, 협치와 원칙 없는 기싸움

등록 2014-12-30 22:59

정치는 없었다. 내년도 제주도 예산안을 두고 지난달 17일부터 시작된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보여준 제주도와 도의회의 태도는 그야말로 동네 꼬마들이 벌이는 ‘기싸움’이나 마찬가지였다. 원희룡 지사의 ‘협치’도, 제주도의회의 ‘원칙’도 없었다.

도와 도의회 양쪽 모두 예산을 둘러싼 험악한 설전과 기싸움은 볼썽사나웠다. 구성지 의장은 도청의 고위 간부를 겨냥해 “옆에 있었으면 싸대기를 올릴 뻔했다”거나 “의장에게 칼을 들이대?” 등의 발언을 쏟아냈고, 원 지사도 전국 방송된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서 ‘의원 1인당 20억원 요구설’과 “(도의원들이) 자기들끼리 (예산을) 다 짜놓고” 등의 발언으로 도의회를 자극했다.

서로에 대한 불신도 예산을 둘러싼 타협의 여지를 좁혀놓았다. 제주도의회는 집행부의 이른바 ‘언론플레이’에 강한 의구심을 나타냈다. 구 의장은 29일 밤늦게 열린 도의회 임시회에서 “(제주도가) 수차례 기자회견을 통해 의회가 증액한 예산에 대해 선심성 예산, 목적이 없는 외유성 경비, 형평성에 문제가 있는 사업, 과도한 보조금 증액 및 신규사업이라며 부동의하는 등 우리 의회와 의원들을 언론플레이를 통해 폄훼하고 압박했다”고 했다.

원 지사는 최초 도의회의 계수조정 과정에서 409억원을 증액·신규편성한 데 대해 “도의회의 예산안 심사를 인정할 수 없다”며 사업의 타당성을 내놓으라며 도의회를 공개적으로 몰아붙였다. 도청 주요 간부들은 구 의장의 폐회사 발언처럼 계수조정과 관련해 여러 차례 기자회견을 통해 도의회를 거칠게 압박하고, 의회에 가서는 의원들로부터 비판을 받는 일이 자주 나타났다.

이번 도의회의 예산안 의결에 따라 원 지사 입장에서는 의회를 압박했던 ‘증액·신규 편성 예산’에 대한 불만을 해결했으나, 예산의 4.4%(1682억원)가 삭감돼 내년도 재정운영에 큰 부담을 안게 됐다.

의회의 모습도 초라하다. 의회는 최초 계수조정 과정에서 증액·신규 편성 항목에 대해 집행부를 설득시켜야 했는데도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또 갈등이 증폭되자 기존 계수조정의 증액·신규 편성 예산을 백지화시키는 대신 대규모 삭감을 선택한 것은 ‘보복삭감’이라는 비판을 받게 됐다.

허호준 기자
허호준 기자
예산 논쟁은 제주도와 도의회 어느 한쪽이 지고 이기는 ‘게임’이 아니다. 원 지사의 예산 개혁 방향은 맞다.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의회를 자극하는 돌출 발언과 완고한 원칙론은 스스로의 입지를 좁혔다. 도의회 또한 이번 대규모 예산 삭감 사태가 미칠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앞으로 있을 예산심사 과정에서 다른 잣대를 들이대면 비난을 받게 된다.

한 공무원은 “도정과 의회의 민낯이 공개됐다. 그런 면에서 예산 편성과 심의에 대해 공론화해야 하는 타당성을 도민들에게 알린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예산에 대한 의견을 얼마나 잘 설득하고 협의해 나가는가 하는 것이 정치다”라고 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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