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해달라고 기부채납했다가 땅을 빼앗기고 쫓겨날 처지에 놓인 대전 중구 오류동 157번지 주민들이 27일 ‘철거 공고’ 앞에서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대전 오류동 157번지 38명
시 개발사업으로 퇴거 몰려
1959년 땅 매입 ‘시장 조성’ 요구
무산되자 반환청원했으나 패소
심지어 불법점유 과징금까지 내
시, 보상약속도 번복…“주민 만날것”
시 개발사업으로 퇴거 몰려
1959년 땅 매입 ‘시장 조성’ 요구
무산되자 반환청원했으나 패소
심지어 불법점유 과징금까지 내
시, 보상약속도 번복…“주민 만날것”
“우리 땅에서 벌금까지 내고 수십년을 살았는데 개발한다고 나가라네요. 억울합니다.”
27일 대전 서대전네거리의 노른자위 땅인 오류동 157번지 일대 원주민 38명은 분노하고 허탈해했다. 이 땅은 시유지다. 대전시는 이곳 1830㎡에 어려운 이들을 위한 보금자리주택을 지을 예정이다.
시가 시 소유 땅에서 사업을 한다니 주민이 이주하는 것은 타당해 보인다. 그런데 주민들은 “우리 땅인데 시가 쫓아낸다”고 허탈해했다. 사연은 반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9년 풍한산업은 오류동 지금의 삼성아파트 터에 방적공장을 지으면서 거주민들에게 회사 소유의 157번지 일대로 이주를 권했고, 일부 주민들은 이곳에 터를 잡았다. 이들은 생계 수단으로 상설시장 건립을 제안했고, 시장이 선다는 말에 이사온 이들까지 더해 48가구로 불었다. 이들은 그해 12월 풍한산업에 310만원을 주고 157번지 일대 1830㎡를 사들여 대전시에 ‘상설시장을 만들어 달라’는 조건과 함께 기부채납했다. 1960년 서대전공설시장이 문 열었다. 그러나 이 시장은 우시장 설립 등이 무산되면서 활성화되지 못하고 1972년 9월 폐쇄됐다.
김기순 구 서대전공설시장 점유자대책위원회 총무는 “1976년부터 20여년 동안 26차례에 걸쳐 정부 등에 ‘기부채납의 목적이 사라졌으니 토지 등을 반환해 달라’고 청원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고, 소송에서도 졌다”며 누렇게 변한 당시 서류들을 꺼내 보였다.
잊혀져가던 157번지 문제는 2007년 주민들에게 4억6600만원의 과징금이 부과되면서 다시 부각됐다. 양의현(70) 대책위원장은 “대전시가 ‘시유지를 불법점유했으니 법에 따라 5년치 대부금을 내라’고 했다. 안 내면 압류당하고, 내면 5년씩 대부계약을 해준다니 과징금을 낼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결국 주민들은 과징금을 내고 2011년까지 대부계약을 했고, 2011년 말에는 2016년까지 계약을 연장했다.
“나라법이라니 땅 찾을 생각도 못 하고 대부금도 내긴 하지만 이 땅을 우리 땅이 아니라고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어요.” 한아무개(80)씨의 말이다.
157번지 주민들은 지난해 말 ‘구 서대전공설시장 점유자대책위원회’를 꾸리고 펼침막을 내걸었다. 영업비 보상 등 다양한 특혜와 보상을 하겠다던 대전시가 돌변해 일방적으로 대부계약을 해지하고 특혜·보상을 해줄 수 없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는 30일까지 집을 비우라는 경고문까지 골목 벽에 부착했다.
오훈 ‘주거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 정책위원장은 “시유지가 된 과정을 아는 대전시가 법을 앞세워 보상도 않고 가난한 서민을 내쫓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시는 거리에 나앉을 처지인 157번지 주민들을 위해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대전시 도시재생본부 관계자는 “30일까지 나가라는 공고는 행정상 절차일 뿐이다. 주민들의 사정이 어렵고 딱하다는 점은 잘 알고 있다. 주민 이주대책을 마련하는 한편 최선의 방안을 찾기 위해 조만간 주민들과 만날 계획”이라고 해명했다.
글·사진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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