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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근대 명창 김창환 ‘방치된 자취’

등록 2015-02-10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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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대명창 김창환 선생이 살았던 광주시 광산구 대산동 양화마을 전경.
조선시대 대명창 김창환 선생이 살았던 광주시 광산구 대산동 양화마을 전경.
광주 광산구 양화마을 집 표지 없고
대야마을의 묘지도 관리 안돼
윤장현 시장, 복원사업 밝혔지만
담당부서는 이런 사실조차 몰라
“저 집이 김창환 선생이 살았던 곳이에요.”

지난 6일 오후 광주시 광산구 대산동 양화마을(사진 1)에서 만난 통장 이기택(50)씨는 조선시대 대명창 김창환(1857~1937) 선생이 살았던 집을 가리켰다. 원래 전남 나주 삼도면에 있었다가 1950년대에 광주로 편입된 양화마을은 여전히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었다. 김창환 명창이 살았다는 집에는 인적은 없고, 개 짖는 소리만 요란했다. 조선 고종 때 임금 앞에서 소리를 했던 이른바 ‘어전광대’가 살았던 집이라는 안내판조차 하나 없었다. 이씨는 “마을 어르신들한테 대명창이 살았던 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광주시 광산구 대산동 대야마을 뒤편 김창환 명창의 묘지. 그의 묘지 앞 비석엔 ‘중추원 의관’이라는 벼슬 명칭이 적혀 있다.
광주시 광산구 대산동 대야마을 뒤편 김창환 명창의 묘지. 그의 묘지 앞 비석엔 ‘중추원 의관’이라는 벼슬 명칭이 적혀 있다.
대대로 전통음악을 해온 ‘세습 예술인’ 집안 출신의 김창환 명창은 한국 판소리사에 큰 획을 그었던 인물이었다. 판소리 5명창 중의 한 명으로 명성을 떨쳤던 그는 판소리 부흥을 위해 노력했던 예술인이었다. 서편제의 대명창 이날치(1820~1892)와는 이종사촌간이고, 임방울(1904~1961) 명창은 그의 조카다. 25살 된 임방울 명창을 서울 무대에 소개해 ‘쑥대머리’로 일약 스타가 되게 한 이가 바로 김창환이다.

김창환 명창의 소리는 부드럽고 섬세한 전형적인 서편제 소리 가운데 ‘나주소리’를 대표했다. 정창업 명창한테서 소리를 전수받아 서편제의 정통맥을 이어받은 그는 특히 발림이 뛰어난 소리꾼으로 극찬을 받았다. 김창환 명창은 1902년 가을 건립된 극장 원각사(오늘의 국립극장)의 실질적인 운영자가 되어 판소리와 창극의 보급에 앞장섰다. 1906년 일제의 압력으로 원각사가 문을 닫자, 소리꾼들과 예술단체인 협률사를 조직해 순회공연을 하며 민족혼을 고취시켰다. 1910년 한일 강제합병 소식을 듣고 낙향해 머물렀던 곳이 바로 대산동 양화마을 집이었다.

조선시대 대명창 김창환 선생이 태어난 광주시 광산구 내산동 쌍내마을 탯자리,
조선시대 대명창 김창환 선생이 태어난 광주시 광산구 내산동 쌍내마을 탯자리,
하지만 김창환 명창은 이미 ‘잊혀진 소리꾼’이었다. 김창환 명창의 묘지는 광산구 대산동 대야마을 뒷산 앞 구유지에 자리하고 있었다.(사진 2) 애초 묘지가 있던 곳에 자동차학원이 생기면서 한때 공동묘지로 옮겨졌다가 1990년대에 지금의 구유지로 옮겨졌다. 두 아들도 소리꾼이었으나, 젊어서 요절했다. 통장 이씨는 “그동안 묘지가 관리도 안 되고 방치돼 있어서 광산구에 연락했더니 지난해 가을 처음으로 벌초를 했다”고 말했다. 국도변 ‘김창환 명창 기념비’ 앞에 별다른 안내판이 없어 그의 묘지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김창환 명창이 태어난 광산구 내산동 쌍내마을 뒷산 자락(사진 3)에도 표지판 하나 볼 수 없었다. 주민 정민성(70)씨는 “내림으로 굿을 하던 집안 출신인 김창환 명창이 ‘임금한테 벼슬을 받은 뒤 마을 사람들과 장갑을 끼고 악수를 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윤장현 광주시장이 당선 이후 낸 ‘6기 민선시장직 수행을 위한 보고서’엔 김창환·임방울 등 지역 대표 예술인의 생가 복원 및 활동장소 표식화라는 사업 추진 항목이 포함돼 있지만, 시 문화관광정책실은 이런 사업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판소리학회 회장인 김석배 금오공대 교수(교양교직과정부)는 “근대 5명창 중 가장 선배로, 행적도 뚜렷한데 광주에서조차 김창환 명창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게 잘 이해가 되질 않는다. 광주에서 김창환 명창을 재조명한다면 임방울 선생과 함께 판소리사적 가치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글·사진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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