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공원 지리산 왕시루봉에 있는 외국인 선교사 별장
국립공원 지리산 왕시루봉에 있는 외국인 선교사 별장들이 철거할 것이냐 보존할 것이냐를 결판짓는 갈림길 위에 놓였다.
현재 왕시루봉(1212m) 9부 능선인 전남 구례군 토지면 문수리 산231 일대에는 1962년 외국인 선교사들이 지은 교회 1동, 주택 9동, 창고 2동 등 건물 12동이 폐허로 변해가고 있다. 이 건물 터 541㎡는 국유재산(교육부)이고 서울대에서 학술림의 부속물로 관리 중이다.
지리산기독교선교유적지보존연합은 지난해 4월 미국의 유럽의 건축 양식을 담고 있는 이 건물들을 근대문화재로 등록해 달라고 문화재청에 신청했다. 이 단체 오정희 상임이사는 “국립공원 지정 이전에 지어진 건물들을 환경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허물려 한다. 한번 없애면 근대 역사의 소중한 현장이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같은 해 6월 현장실사를 벌인 뒤 지난 1월 등록안을 근대문화재심의위원회에 상정했다. 이 등록안은 만장일치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통과가 보류됐다. 문화재청은 이른 시일 안에 2차 실사를 벌인다는 방침이다.
이곳은 나물 채취와 건축 허가 등이 일절 금지되는 국립공원 자연보존지구이자 반달가슴곰 등 멸종위기종이 서식하는 특별보호구역이어서 철거해야 한다는 의견이 만만치 않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2002년 이곳이 자연환경지구에서 자연보존지구로 바뀌었는데도 관리가 허술하다는 감사원의 지적을 받자 건축물을 철거할지를 두고 서울대와 협의를 벌였다. 이후 서울대는 2007년 건물이 낡아 유지관리가 어렵다며 철거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이 결정은 선교유적지를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 때문에 여태껏 이행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은 지난 13일 교육부(서울대)의 건물 철거 처분이 이행되도록 해 달라고 행정심판위원회에 요청했다. 지리산권시민사회단체협의회는 지난 15일 이 건물들의 문화재 등록 심의를 보류해 달라고 문화재청에 공문을 보냈다. 환경단체들은 오는 27일 현장을 찾아가 환경생태적 가치가 우월한지, 역사문화적 가치가 우월한지를 따지는 토론회를 열기로 했다.
윤주옥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협동처장은 “이 건물들을 문화재로 지정하면 ‘생태의 보고’인 왕시루봉의 미래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반달가슴곰 서식지 보호와 탐방객 출입제한 유지 등의 정책이 달라질 수도 있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