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광주시 동구 금남로3가 옛 가톨릭회관 건물에 들어선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 1층 전시실에 1980년 5월 시민들이 계엄군의 총탄을 피해 달아날 때 벗겨진 신발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다. 사진 정대하 기자
총탄이 뚫고 지나간 유리창은 원래 모습 그대로였다. 13일 문을 연 광주시 동구 금남로3가 옛 가톨릭회관 건물에 들어선 5·18 민주화운동 기록관엔 항쟁의 역사가 보존돼 있었다. 1980년 5월 인근 광주은행 옛 본점 건물에 날아든 총탄에 관통됐던 유리창은 1층 들머리에 전시돼 당시 참상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지하 1층, 지상 7층 규모의 옛 가톨릭회관을 재단장한 5·18기록관은 각종 자료 8만여점을 원형대로 보존하면서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기 위한 공간이다. 광주시는 2011년 5·18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지 4년 만에 등재 당시 제출했던 기록과 각종 자료를 한데 모아 기록관을 개관했다. 광주시 쪽은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기록유산인 5·18 주요 기록물 등을 가까이에서 보고 느낄 수 있다”고 밝혔다.
기록관의 가장 중요한 시설인 수장고는 5층에 자리잡았다. 수장고 내부는 공개되지 않고, 창을 통해서만 들여다볼 수 있다. 총 3개의 수장고 중 1수장고에는 수사기록 사본과 5·18 유공자 보상서류 사본 등 종이류 자료들이 보존돼 있다. 2수장고엔 한 시민의 일기장과 성명서, 취재수첩, 피 묻은 태극기 등 세계기록유산 등재 때 제출했던 원본 자료들이 보관돼 있다. 3수장고에는 앞으로 5·18 관련 문화·예술 작품들이 보관될 예정이다. 3수장고 가운데 일부는 흑백사진 필름과 군인들이 쏜 총의 탄피 등 철 성분이 든 자료들을 따로 보관하기 위해 온도가 0도로 유지되는 ‘0점 수장고’로 운영된다.
1~3층은 전시실이다. 1층 전시실에 들어가보니 80년 5·18 당시 계엄군의 만행을 담은 영상과 사진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두꺼운 유리로 덮인 바닥 밑에는 고무신과 운동화, 피 묻은 구두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80년 5월21일 오후 계엄군의 집단 발포 때 주인을 잃은 신발들을 형상화한 것이다. 시민들이 주먹밥을 만들 때 사용했던 양은 함지박이 쭈그러진 모양 그대로 놓여 있었다.
6층엔 5·18 민주화운동 때 참상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윤공희(90) 전 천주교 광주대교구장의 옛 집무실이 복원돼 있다. 윤 대주교가 80년 5월 당시 군인들이 시민들을 마구 때리고 차에 싣고 가는 장면을 목격했던 그 창문엔 ‘진실의 눈’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그 창문 앞에 서서 직사각형 모양의 작은 틈으로 거리를 내려다보니, 80년 5월 속옷 차림으로 공수부대원 앞에 무릎 꿇고 있던 시민들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정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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