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충남 서산 해미읍성을 찾은 순천향대 학생들이 ‘정의사회 구현’이라고 적힌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승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송인걸 기자
충남 서산시가 해미읍성 뒷동산에 역대 대통령들의 장승을 세우면서 전두환 대통령은 ‘정의사회 구현’, 이승만 대통령은 ‘민주주의’라고 표기해 비난을 사고 있다.
서산시는 이들 대통령 장승에 집권 당시 국정지표와 정부의 이름을 표기했다고 밝혔으나, 방문객들은 “말도 안 되는 업적을 써 역사를 왜곡했다”며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19일 해미읍성을 찾은 김아무개(58·인천)씨는 “다른 장승은 그냥 봐줄 만한데 전두환은 내가 처녀 때 대통령이어서 (한 짓을) 잘 안다. 너무 강하게 해서 사람 많이 죽였지. (표기가) 안 맞는다”고 말했다.
문학답사를 왔다는 대학생들은 “방문객들에게 재미를 주려고 일부러 반어법적인 표기를 한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박민혁(21·순천향대 국어국문학과 2)씨는 “전두환은 국민과 나라를 지킬 의무가 있는 국군을 동원해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했고, 민주주의를 요구하던 광주시민들을 무력 진압해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를 해친 인물인데…”라며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윤다혜(21·˝)씨는 “이승만 대통령은 부정선거를 하는 등 독재를 하다 결국 외국으로 망명했는데 이곳 장승을 보면 마치 ‘민주주의’를 쟁취한 대통령처럼 보여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역사를 잘못 알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역사적인 평가와 다르게 표기된 대통령 장승 때문에 호국의 상징인 해미읍성의 위상마저 추락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아무개(65·서산시 읍내동)씨는 “지난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해미읍성 천주교 순교나무를 방문한 뒤부터 어린이와 청소년, 대학생 등으로 꾸려진 문화답사가 크게 늘었다. 작은 표기라도 역사적인 평가를 인용해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고 개선을 촉구했다.
서산시청 문화관광과 관계자는 “대통령 장승을 세우면서 역대 대통령의 국정지표나 상징적인 표어를 적어놓은 것일 뿐 특정 대통령을 미화하거나 역사를 왜곡할 의도는 없었다. 글귀를 수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해명했다.
해미읍성 동헌 뒷동산에 있는 대통령 장승은 이승만(1~3대), 윤보선(4대), 박정희(5~9대), 최규하(10대), 전두환(11·12대), 노태우(13대), 김영삼(14대), 김대중(15대), 노무현(16대), 이명박(17대) 등 모두 10기이다. 2010년 태풍 곤파스에 쓰러진 아름드리 소나무에 역대 대통령의 얼굴 특징을 살려 깎고 조선시대 왕을 상징하는 익선관을 씌웠다. 2013년 10월에 세워졌으며 높이는 약 3m, 둘레는 1.5~2m 안팎이다.
서산/송인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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