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물단지 된 ‘45년 산단’
공장만 빽빽…차도 좁고 인도는 없어
환경공해·교통체증 등 민원 온상으로
7년간의 시행착오
2009년 국비지원 선정됐지만 준비부족
지난달 법개정으로 절차 줄고 투자 촉진
눈높이를 낮추다
지자체도 ‘현실가능성’ 두고 계획변경
녹지·편의시설 줄이며 입주업종 완화
우려반 기대반
경제성 띄우다 ‘재생’과 거리 멀어져
“입주기업·주민 협의체 꾸려 추진을”
공장만 빽빽…차도 좁고 인도는 없어
환경공해·교통체증 등 민원 온상으로
7년간의 시행착오
2009년 국비지원 선정됐지만 준비부족
지난달 법개정으로 절차 줄고 투자 촉진
눈높이를 낮추다
지자체도 ‘현실가능성’ 두고 계획변경
녹지·편의시설 줄이며 입주업종 완화
우려반 기대반
경제성 띄우다 ‘재생’과 거리 멀어져
“입주기업·주민 협의체 꾸려 추진을”
대전1·2산업단지가 지난달 18일 재생사업의 첫 삽을 떴다. 이곳은 ‘대화리 공단’으로 불린 대전의 첫 산업단지로 1969년 착공해 1979년 12월 준공됐다. 대전산단의 리모델링이 시작된 것은 2009년 국토부의 노후산업단지 재생 시범사업 대상에 지정되면서부터다. 국토부는 최근까지 전국의 18개 산단을 재생사업지구로 선정했다.
산단 재생은 경북 구미공단이 처음이다. 구미공단은 주력 산업이던 섬유·전자 등 노동집약 업체들이 인건비가 저렴한 동남아시아 등으로 생산시설을 이전한 뒤 재생이 진행됐다. 그러나 대전 등 18개 산단의 재생사업은 제조업 위주의 주력 업종을 대부분 유지한 채 쾌적한 노동·작업·주거환경을 가꾸는 것이어서 구미공단 재생사업을 기준으로 삼기는 어렵다.
그동안 산단 재생사업은 특성을 고려하거나 관련 법령을 정비하지 않고 추진하는 바람에 성과를 내지 못하고 복잡한 사업 절차와 낮은 경제성 등 문제점만 드러냈다. 실제 대전산단도 지난 2년 동안 주변 일반공업지역을 편입하는 재생사업을 했으나 민자 유치에 거듭 실패했다.
이에 따라 국토부는 지난달 ‘산업입지 및 개발에 관한 법률’을 개정·공포했다. 개정 법은 소유자 동의 절차를 크게 개선해 재생사업 절차를 간소화하고 민간 투자를 활성화하려고 인센티브를 강화했다. 8월말 현재 개정 법에 따라 재생계획 변경을 추진하는 곳은 대전산단, 대구의 3공단과 서대구산단, 전주1산단 등 4곳이다.
■ 대전산단 재생사업 어떻게 대전시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지난달 18일 대화동 산단협회 앞에서 재생사업 기공식을 열었다. 첫 공사는 산단 안 도로를 정비하는 것으로 재생사업의 마중물에 해당된다. 내년까지 120억원을 들여 동아연필 앞 도로, 삼영기계 1사업장~영일케미컬, 영일케미컬~아모레퍼시픽~공단3거리 등 3개 구간 1747m의 도로를 정비하고 전력선로를 지중화한다.
대전시는 ‘현실적이고 돈 덜 쓰는’ 산단 재생사업계획 변경안도 세우고 있다. 애초 계획은 2020년까지 민자 2731억4500만원 등 4472억1900만원의 예산으로 산단(120만5천㎡)에 주변 일반공업지역(110만1천㎡)을 편입시키고 도로 정비 및 녹지·공원·주차장·주거시설 설치 등을 하는 것이었다. 대전 하소동에 환경유해업체가 이전할 대체산단 150만㎡를 조성하는 계획도 세웠다. 그러나 환경유해업체들은 이전을 거부했고, 대체산단도 예정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추진이 중단됐다. 공기업과 민간사업자 공모는 참여자가 없어 무산됐다. 대전시 관계자는 “민자 유치에 성공했어도 이전 대상 업체들 보상비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었다. 애초 재생계획은 현실성이 부족했다”고 밝혔다.
대전시의 산단 재생계획 변경안은 △서쪽 진입로 선형 조정 △지원시설 축소 △산단 입주 업종 완화 △복합시설용지 개발 등이 뼈대를 이룬다. 예산은 애초 4472억원에 맞췄다. 진입로 공사는 유등천을 가로질러 둔산 방면~대화동을 잇는 교량 건설이 포함돼 있다. 시는 1천억원대이던 진입로 공사 예산을 절반 수준으로 줄이기 위해 선형 개량을 검토하고 있다. 예산이 500억원 이하로 줄어들면 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를 받지 않고 시가 자체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지원시설 공사는 주차장·공원 조성 등인데 애초 6.4%에서 법적 의무비율 수준으로 크게 축소할 것으로 알려졌다. 주거시설도 행복아파트 120가구만 짓는 안이 확정적이다. 입주 업종도 확대할 것으로 보여 섬유제품 제조업과 고무제품·플라스틱 제조업, 물류업체도 산단 입주가 가능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변경안의 산업시설 비율은 애초 67.9%에서 73.3%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복합시설용지 개발사업은 진입로 왼쪽의 구만리 일대 10만여㎡를 상업시설 등 다양한 업종이 입주하는 복합용지로 조성하는 것으로, 엘에이치가 맡는다. 엘에이치 산단재생기획단 이성민 과장은 “대전시와 협의해 복합시설용지 개발에 참여하기로 했다. 약 700억원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돼 조만간 정부에 공기업 예비타당성조사를 신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산단 재생의 필요성 산단 재생사업은 성공해도 생산성이 크게 향상되는 등의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산단 재생사업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초기 산단은 대부분 변두리에 조성됐지만 도시가 확장되면서 도심의 중심에 위치하게 된 점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또 전통적으로 제조업종이 많다 보니 대기환경·작업환경이 열악하고, 주변 지역에 환경유해업체들이 난립하면서 악취·분진, 교통체증 등을 유발해 민원이 끊이지 않는 점도 지적했다.
대전산단도 다르지 않다. 69년 착공 당시에는 대전시 외곽지역인 충남 대덕군 회덕면 대화리였으나 지금은 반경 5㎞ 안에 대규모 새도시가 건설되고 수십만명이 산다. 산단 주변에는 산단에 입주하지 못한 폐기물처리·폐수처리·아스콘·시멘트업체 등이 들어서 환경 공해가 일상이 됐다. 산단 안 도로는 40여년째 설계 당시와 같이 인도 없는 왕복 2차선이어서 큰 트레일러들이 회전하는 장면은 곡예에 가깝다. 시내버스는 2개 노선뿐이다. 인도가 없으니 간이 지붕이 있는 승강장이나 버스운행 정보를 알려주는 흔한 전광판도 없다. 길마다 차량이 꼬리를 물고 주차돼 있다. 김아무개(35·동양철강 근무)씨는 “대중교통 이용이 불편하고 제조업 특성상 야근이 잦다보니 자가용 이용자는 늘어난다. 주차장이 없으니 도로가 좁은 걸 알면서도 불법주차를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중환 대전시 경제산업국장은 “산단 재생사업은 노후 산단의 환경을 개선하고 장기적으로 업종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불가피하다. 산단의 환경이 개선되면 입주기업과 주민, 근로자에게 이익이 돌아갈 것이다. 또 전통업종은 이전하고 첨단업종들이 입주하면서 산단의 업종 변화도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재생사업에 대한 산단 입주업체들의 반응은 적극적이지 않다. 기반시설에 대한 공공부문의 투자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데 따른 것이다. 또 공장을 가동하는 상태에서 사업이 진행되면 불편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대전산단협회 김기성 사무국장은 “입주업체들도 재생사업에 대한 기대가 높지만 계획 등이 미흡하다 보니 의문을 갖는 것이다. 개발이 시작돼 재생사업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면 주변이 추가로 개발돼 산단 전체의 땅값이 오를 것이다. 결국 생산원가가 맞는 업종으로 바뀌는 형태까지 예측 가능한 선순환 개발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산단 재생 전문가들은 산업구조 진단을 실시해 우선 사업 순위를 정한 뒤, 공공부문이 주도하는 재생사업의 특성을 고려해 자치단체가 주체가 되고 입주기업, 노동자, 주민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꾸려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한다. 그러나 재생사업 추진을 목표로 삼아 지원시설 비율을 줄이고 산업시설 비율을 높여 경제성만 강화하면 장기적으로 산단 재생사업의 목적을 상실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국토연구원 장철순 연구위원은 “대전산단은 위치가 정말 좋은데 주변에 대규모 개발사업 같은 시너지효과를 얻을 수 있는 요인이 없는 것이 단점으로 꼽힌다. 산업구조 변경과 관련해, 제조업도 업종을 바꾸지 않고 설비를 자동화·정보기술화하고 근로환경을 개선하면 산업구조를 고도화할 수 있으므로 산단 입주업체들이 스스로 구조를 고도화하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전/글·사진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대전1·2산단 안 좁은 도로에 있는 시내버스 정류장 표지. 40여년 전 설계돼 도로 폭이 좁고 인도가 없어 보행자 사고 위험이 높다. 운행하는 시내버스 노선도 2개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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