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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남종화 거장’의 유산 담을 공간 없나요?

등록 2015-11-04 19:57

수묵산수의 대가 아산 조방원 선생
평생 모은 고미술품· 본인 작품 기증
추사·허목 간찰 등 문화유산 상당수
곡성·순천서 미술관 건립 약속 무산
재단 “고인 예술혼 알릴 기회 마련을”
먹그림으론 당대 아산 조방원을 따를 사람이 없었다. 묵 하나만으로 대상을 그려내는 독특한 회화세계를 구축했던 아산 선생은 생전 선현들의 유품을 모으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다. 하지만 고인이 남긴 남도화 200여점과 선현들의 유품을 보관하고 전시할 공간이 없어 아쉽다. 아산미술문화재단 제공
먹그림으론 당대 아산 조방원을 따를 사람이 없었다. 묵 하나만으로 대상을 그려내는 독특한 회화세계를 구축했던 아산 선생은 생전 선현들의 유품을 모으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다. 하지만 고인이 남긴 남도화 200여점과 선현들의 유품을 보관하고 전시할 공간이 없어 아쉽다. 아산미술문화재단 제공
“내가 갖고 있는 고미술품을 기증하고, 뭔가 이 지역 미술에 보탬이 되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행한 일인데, 왜 이리도 색안경을 쓰고 보는 건지.”

‘남종화의 마지막 거장’ 아산 조방원(1926~2014) 선생이 생전 <전남일보>에 연재하던 글(1992년 3월) 중의 한 대목이다.

그는 1987년 4월 전남도에 자신이 모아온 간찰(편지), 서화업류, 성리대전 목판각 등 6393점을 기증하겠다고 밝힌 뒤 미술관 건립을 건의했다. 그런데 곡성군 옥과면에 미술관이 신축되는 것을 두고 이런저런 말이 나오자 마음 아파했다. 그가 기증한 터에 들어선 최초의 도립미술관은 선현들이 남긴 문화유산을 보관·전시하는 공간이 됐다. 그는 “우리 문화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게 하고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산 교육장으로 이용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할 뿐”이라고 했다.

아산은 소치-의제-남농을 거쳐 내려온 남종문인화의 대가이자 수묵산수의 대가로 불린다. 최준호 광주대 교수는 “경치를 보고 가슴속에 담았다가 그리는 사의화(寫意畵) 개념의 중국 남종화의 세계에 충실하면서도, 독특한 시각과 필법으로 아산류의 먹산수를 완성했던 거장이었다”고 말했다.

아산의 글씨. 아산미술문화재단 제공
아산의 글씨. 아산미술문화재단 제공
아산은 30대 후반부터 선현들의 글씨와 그림 등 유묵에 관심을 보였다. “그림만 그리는 화가가 아니라 남도화맥의 맥을 잇고, 조상들의 숨결이 담긴 옛것을 모으고 보존하는 데 각별히 정성을 쏟았던 어른”이었다. 아산 선생의 평전을 썼던 손정연 전 한국언론재단 이사는 “한달에 한두점씩 판 그림값을 아껴 선현들이 남긴 유묵을 모으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아산이 모은 간찰 중엔 추사 김정희를 비롯해 조선 중기 학자 허목, 한말 대학자이자 의병장이었던 기우만, 갑오개혁을 단행한 김홍집의 간찰 등 역사의 숨결이 느껴지는 것이 많다.”

아산은 옥과면 도립미술관에 기증한 유산 외에, 생전 단 한번도 공개하지 않았던 자신의 작품 200여점과 고려 말부터 조선 중기까지 학자들이 가족 등과 주고받았던 간찰 4600여점, 벼루·먹·붓 등 종이를 제외한 옛 문방사우 유품 2000여점 등을 기증할 장소를 물색했다. 곡성군은 2011년 9월 아산의 기증품을 보관·전시할 아산미술관을 건립하겠다고 협약식까지 체결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이후 순천시가 2013년 작품을 기증하면 자연생태관에 아산미술관을 짓겠다고 약속했다. 아산미술문화재단 쪽은 순천시립아산미술관이라는 이름을 순천시립미술관으로 바꾸라는 순천시의회 등의 요구를 고민 끝에 받아들였다. 이에 2016년까지 18억원을 들여 순천시 대대동 순천만 들머리에 있는 자연생태관을 시립미술관으로 리모델링하는 사업이 추진됐다.

<서옥도>. 아산미술문화재단 제공
<서옥도>. 아산미술문화재단 제공
그런데 전남동부지역사회연구소, 순천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 5곳이 “환경보전이 필요한 생태공간 안에 미술관을 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재단 쪽은 “미술관 이름까지 양보했는데, 순천시가 시민단체 설명회 이후 협약식 체결을 미루자고 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아산 선생의 삶과 예술혼을 느낄 수 있는 미술관 건립이 또다시 무산돼 큰 아쉬움을 주고 있다. 아산미술문화재단은 “아산미술관 건립 문제보다 아산 선생님의 유작과 소장품을 잘 보존하면서 고인의 예술혼을 알릴 상설 전시회 등에 치중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순천시와 더는 미술관 건립 문제를 논의할 뜻이 없다고 분명하게 밝힌 셈이다.

일각에선 광주시가 나서 아산 작품과 소장품을 전시할 공간을 마련하자는 제안도 나온다. 남도를 매우 사랑했던 그는 한동안 광주에서 작품 활동을 했고, 광주에 남도국악원을 설립했으며, 80년 5월 광주의 아픔을 목격하고 “세상이 어둡고 답답해져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면서 한동안 붓을 잡지 않는 등 광주와 큰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손정연 전 이사는 “아산 선생이 1957년 목포에서 올라와 1994년 곡성으로 가기 전까지 광주는 선생에게 큰 의미가 있는 공간이다. 서양미술에 밀려 우리의 고유문화가 점차 사라져가는 마당에 우리 시대 최후의 남종화 거장의 작품을 한곳에 보관해두고 전시할 수 있다면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정대하 안관옥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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